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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현 Dec 04. 2020

여성의 고통 없는 삶을 위해, <아주 오래된 유죄>

아주 오래된 유죄

김수정

한겨레출판사

248p

2020.11.11

15,000원


법은 국가권력에 의하여 강제되는 사회규범이고, 법을 둘러싸고 무수한 사람들의 삶과 이해가 교차한다. 나는 법에 대해 잘 모르지만 법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변화를 언제나 비교적 늦게, 보수적으로 받아들인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쉽게 고칠 수 없고, 쉽게 변화되지 않아야 하는 것이 법이고 그래서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가끔은 왜 그래야만 하는지가 의심스러운 상황들이 많기도 하다.


이 책은 20년 이상 여성의 인권에 관한 활동들을 해온 김수정 변호사의 책이다. 남성으로 페미니즘 책을 읽는 일은 언제나 조금은 불편한 지점이 생기게 마련인데, 이 책에 나오는 표현대로 스스로를 갱생해야 하는 주문과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욕망이 부딪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는 도중에는 변명의 여지없이 무력하고 참담한 기분을 느끼게 됐다. 이 공고하고 강압적이며 넓고 깊게 국가와 사회에 심겨있는 폭력들의 증거를 하나하나 제시하는 데에는 더 이상 덧불일 말이 없다.


그리 두꺼운 책이 아님에도 법은 여성의 편인가 라는 프롤로그에 이어 디지털 성범죄, 미투, 직장 내 성희롱, 미성년자 성착취, 가정폭력, 호주제, 이주 여성, 낙태죄, 미혼모, 입양, 난자 채취, 일본군 위안부, 기지촌, 군대 내 성차별, 여성 노동자 등의 이슈를 간결하고 효율적으로 설명한다. 키워드로만 보면 아, 그런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지 정도로 생각할 만한 문제들이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저자의 사례를 들으며 한 겹만 더 깊게 바라보아도 아주 끔찍해진다. 거기에는 물론 법의 문제를 넘어선 남성 중심의 사고체계가 근간이 되어 있다. 이렇게 한 권의 책에 이 모든 이슈를 몰아봄으로써 대한민국을 둘러싼 껍질의 감촉을 온전히 느낀다. 


저자는 이 모든 여성들의 싸움이 계속 돌을 굴려 정상에 가져다 놓는 시지프스의 절망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고 말한다. 매번 비슷한 싸움을 하는 것 같으면서도, 거기에는 한 발의 전진이 있고, 과거의 싸움과 현재의 싸움은 조금 달라져 있다고 말이다. 여성의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 한 남성의 고통도 사라지지 않고, 이런 싸움에 결국은 남성들이 함께해야 한다고. 좋은 페미니즘 책을 읽으면 언제나 나의 배움이 짧게, 혹은 무용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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