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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by 박상환

평균 나이 30.5세의 걸그룹. 데뷔한 지 10년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 히트곡 하나 없던 이 그룹의 멤버들은 각자 마음을 정리하고 있었다. 2011년 데뷔한 그룹은 2016년 한 번의 멤버 교체 후에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 그룹의 마지막 남은 멤버들은 결국 해체를 준비 중에 있었다. 2명의 멤버는 이미 숙소에서 짐까지 뺀 상태였다. 그러나 바로 그다음 날, 기적 같은 대역전극이 펼쳐졌다. 4년 전 발표한 노래가 역주행의 열차에 탑승한 것이다. 그야말로 이젠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모든 게 다시 시작된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로 쓰면 억지스럽다고 오히려 욕먹을 이야기. 그런데 그게 실제로 일어났다.


가요계에서 역주행은 종종 있는 일이다. 하지만 브레이브걸스의 역주행은 속도나 규모면에서 이전 것 과는 사뭇 다르다. 대체 이 역주행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앞다투어 응원하는 이 그룹의 매력은 무엇일까.


유튜버 '비디터' 님의 댓글 모음 영상

시작은 유튜브였다. 유튜버 '비디터' 님의 댓글 모음 영상이 알고리즘의 수혜를 받으며 사람들에게 노출되기 시작했다. 댓글 모음 영상에도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주로 군대에서 브레이브걸스의 무대를 직접 경험한 현역&예비역 들의 간증(?)이었다. 역주행의 불을 댕겼던 이 영상은 현재 100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영상에서는 20대 청년들의 피 끓는 에너지와 덩달아 신나서 열정적으로 공연하는 브레이브걸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영상에서 느껴지는 '현장감'은 당시에 군생활을 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됐다. 댓글들을 통해 이 그룹이 그동안 수십 차례의 위문공연을 했으며, 심지어 백령도까지 섭렵했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이런 사실들이 진심으로 무대를 즐기는 그녀들의 모습과 어울려 그룹의 호감도를 상승시키는 역할을 했다. 군장병들의 응원을 넘어 성별과 나이를 막론한 지지층이 생겼다. 결국 '롤린(Rollin')'은 4년 만에 차트 정상에 올랐으며, 해체 직전의 걸그룹은 데뷔 10년 만에 빛을 보게 된다.


데뷔한 지 10년이나 되었지만 이들의 이름을 몰랐던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름은 알아도 이들의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 군생활을 했던 사람들에겐 이미 유명할 대로 유명했던 모양이다. 브레이브 걸스는 수십 차례의 위문공연을 통해 이미 군통령이라는 타이틀을 얻고 있었다. 대부분의 군부대는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데 그 먼 길을 차를 타고 배를 타고 간 것이다. 그리고 흙먼지가 날리는 무대에서도 웃으며 노래를 했던 그녀들이었다.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진 않더라도 어디선가 누군가 찾으면 달려갔던 것이다. 많은 가수들이 습관처럼 얘기하는 "단 한 명의 팬이라도 있다면 어디가 되었든 무대에 서겠어요"라는 말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작은 기회도 소홀히 하지 않고 감사함과 진심으로 열정을 다한 것이다. 이러한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서 오늘의 브레이브 걸스가 있다고 생각한다. 연예인들의 인성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길은 없지만 이들을 향한 사람들의 지지는 분명 어떤 무형의 가치에 기인한다. 최근에 수많은 학폭 논란 속에서 이들의 존재가 더욱 특별히 여겨지는 이유다.


진심을 다해 버텼던 인고의 시간들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다 라는, 단순하고도 명백한 진리가 브레이브 걸스의 극적인 스토리 안에 있다. 슬픔도 그렇듯 기쁨도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게 인생인가 보다.


tvN 유퀴즈 98회 방영분 (2021.3.17 방송)


지난 수요일 브레이브 걸스는 토크쇼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을 했다. 이 날 프로그램의 주제는 '끝까지 간다' 참 주제와 걸맞은 섭외가 아닌가 싶다. 인터뷰 막바지에 멤버들의 입에서 나온 말 '존버는 승리한다' 원래 비속어가 포함된 단어지만, 제작진은 이 말을 '존중하며 버티기'라는 말로 바꾸어서 자막으로 내보냈다. 누구의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참 멋진 말 같다. 존버라는 말을 '존중하며 버티기'라고 표현할 수도 있구나.


나는 이 존중을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으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사실 버티는 과정에서 가장 힘든 건 자기 자신이다.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낮아지는 자존감, 끝없는 자기 비하, 패배의식과 열등감들은 곧잘 우리를 넘어뜨리곤 한다. 그럴 때마다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힘으로 버텨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그것을 알기에 끝내 승리한 사람들을 보며 우리는 힘을 얻는 것이다.


브레이브 걸스 멤버들은 서른을 넘었거나 이제 곧 서른을 앞두고 있는 나이다. 걸그룹으로서는 은퇴를 얘기할 만한 나이고, 그냥 가수의 범위로 확장해도 분명 많은 나이다. 취업준비를 하던 멤버들의 선택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끝이라고 생각한 순간에 기적은 찾아왔다. 아, 인생이란 얼마나 예측 불가능한 여행이란 말인가.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 모양의 끝에 다다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아니 그보다는 끝일지 아닐지 모르는 상황에서 지레짐작 끝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모든 것을 덮어두고 미리 포기하려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끝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우리가 미리 그 끝을 정할 필요는 없다. 그동안의 과정이 진심이었다면, 한 번쯤은 존중하고 버티며 기다려봄직하다. 끝을 알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두려움보다는 기대감 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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