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nghai park Feb 25. 2022

<지금 우리 학교는>

학교 안에서 해결했어야 할 문제

"또 좀비야?" 맨 처음 <지금 우리 학교는>의 트레일러를 보고 든 생각이었다. 사실 더 이상 신선할 것이 없는 이 장르는 <부산행>과 <킹덤>을 거치며 'k-콘텐츠'의 간판이 되었고, 더군다나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에서는 유독 비슷한 시리즈물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예고편을 보자마자 피로감이 드는 게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리즈는 넷플릭스에 공개되자마자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연일 화제가 되었다. 공개된 날부터 <지. 우. 학.>에 대한 혹평과 호평, 후기와 리뷰들이 인터넷과 sns을 달구었다. 참 대단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다. 어떻게 그 긴 시리즈를 하루 만에 다 보고 그사이에 리뷰까지 쓸 생각을 했을까. 좀비 바이러스 전파속도보다 더 빠른 듯싶다.


뒤늦게나마 꾸역꾸역 챙겨본 나의 생각은 이렇다.

'굳이 12부까지 필요했을까'



*스포일러 있습니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 이 시리즈는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좀비물이다. 바이러스의 최초 발원지도 학교이며, 주인공들은 학생들이다. 10명 남짓한 학생들이 서로 힘을 모아 좀비의 위협에서 탈출하는 것이 주된 이야기다. 물론 그 와중에는 서로 간의 불신과 작은 다툼들도 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잘 아는 스토리다. 이런 장르의 영화나 드라마라면 늘 차용하는 이야기 구조다.


<지. 우. 학>은 이런 장르의 전형성에 나름의 각색을 더하고 있다. 학교에서 일어날법한, 청소년들이 겪을법한, 그러나 결국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는 일들을 과감하게 배치하고 있다. 학교폭력과 왕따 문제, n번방 사건이 연상되는 성착취 동영상 촬영, 청소년의 임신과 출산 등 다소 파격적인 소재들을 시리즈 초반에 전진 배치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패기 넘치는 전략은 오래가지 못한다. 파격적인 소재와 연출은 초반에 주목을 아주 잠깐 끌뿐이다. 시리즈 후반으로 갈수록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부분이 되어 결국 시리즈 자체에 대해 불필요한 논쟁만 만들게 되었다. 자극적인 소재들을 시리즈 내내 유의미하게 다루지 못하고, 그저 나열하여 전시하는 꼴이다.


<지. 우. 학>이 다루고자 했던 청소년 문제들은 이 시리즈에선 그저 눈요기용으로 다뤄질 뿐이다. 무거운 주제들을 겉핥기만 하고 있을 뿐이다. 과욕이 부른 안이한 연출이다. 그리고 매우 심각한 사안들을 너무나도 쉽고 편리하게 극의 재미를 위해 소비하고 있다. 일부 극단적인 사람들의 극단적인 비판들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지. 우. 학>이 청소년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비판의 여지가 충분하다. 불필요한 장면들을 더함으로써 불필요한 논쟁과 비판에 휩싸인 것은 어찌 보면 자업자득이다.



심지어 <지. 우. 학>의 과욕은 학교를 벗어나기까지 한다. 이 시리즈는 학교 안에서, 청소년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뿐만 아니라 내심 사회고발 드라마의 모습까지 취하려 한다. 자기 안위만 챙기는 높으신 분들이 여지없이 등장하며 분노 유발의 캐릭터를 담당한다. 스테레오 타입으로 일관된 이 캐릭터들과 이들의 이야기 역시 불필요한 느낌이다.


시리즈를 보다 보면 이러한 설정은 온조(박지후 배우)의 아버지(전배수 배우)가 목숨을 걸고 효산고로 가기 위한, 그러니까 부성애를 강조하기 위한 설정이었음이 드러난다. 결국 그 부성애를 강조하기 위해 시리즈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무리한 전개를 하게 된다.


이 시리즈는 시시때때로 인간성을 강요하듯 늘어놓는다. 온조의 아버지는 <테이큰>의 리암 니슨을 빙의한 듯하다가 딸이 보는 앞에서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청산(윤찬영 배우)의 어머니(이지현 배우) 또한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행동을 하다가 마찬가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마지막 회에 사령관(김종태 배우)의 전화통화와 죽음은 시리즈의 욕심 그 절정을 보여준다. 강박적으로 표현된 부성애와 모성애는 이 시리즈가 얼마나 욕심이 많은지 보여준다.


그 와중에 학생들은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사이에도 뜻밖의 로맨스를 연출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인간미 넘치는 드라마란 말인가. 청산이 죽기 전에 외치던 "오늘은 내가(짜파게티 요리사)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놈이다!"라는 말이 오글거리는 동시에 드라마의 무리수가 이해되는 말이기도 하다. 이 모든 걸 사랑과 우정으로 퉁치려는 시리즈의 방향성이라고나 할까.



그래도 장점이 아예 없진 않다. 우선 이 좀비라는 크리쳐의 표현과 연출이 매우 뛰어나다. 분장의 디테일과 연기자들의 몸짓, 각종 시각효과는 몇 년간 쌓아온 우리나라 좀비물의 기술력 그 발전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몇몇 배우 빼고는 거의 생경한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는데, 몇몇 배우들에게는 '발견'과 '기대'를 갖게 하니 그나마 이 시리즈의 볼만한 점이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익숙한 장르에 나름의 각색과 변주를 통해 차별화를 두려고 한 점이 역력하다. 하지만 이야기의 곁가지가 너무 많고 죄다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다. 좀비물에서 느껴야 할 긴장감이나 서스펜스 대신에 어울리지 않는 휴먼 드라마를 설파하고 있으니 길고 지루하게 느껴질 뿐이다. 학교라는 공간의 특수성을 살려 좀 더 장르의 본질에 충실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