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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Jul 29. 2017

포토제닉의 권위주의

문재인과 탁현민, 탈권위주의

탁현민은 퇴진하지 않고 있다. 앞으로도 자리에서 물러날 일은 없을 것 같다. 공식 출판물과 언론 지면을 통해 수차례 여성혐오를 발화한 인물이 청와대 요직을 맡고 있다는 사실도 문제지만, 그가 정부의 행사와 홍보, 그러니까 국정 소통을 맡은 기획자라는 사실이 더 큰 문제다. 이런 인물이 정부의 소통을 연출한다는 건 그가 품은 병든 정신이 국정 차원에서 발현될 수 있음을 뜻한다. 탁현민은 문재인 정부가 집권하기 이전부터 캠프의 행사 기획 지휘자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재인 캠프가 사전 투표 독려를 위해 마련한 프리허그 행사에서, 여성 유권자를 상대로 민망한 모양새를 노출한 것이 그 점과 무관할까? 무엇보다 어폐가 큰 건 이 정부의 소통 기조가 “탈권위주의”이며 그것이 국민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는 사실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며 탈권위주의가 사회의 트렌드가 되었다. 이 개념은 그만큼 오독되고 있다. 권위주의냐 탈권위주의냐는 지도자의 성품과 인격적 소통 방식으로 가늠되지 않는다. 정치체제로서의 권위주의는 통치자가 권력을 배타적으로 점유하고, 국민의 참정권이 작동되지 않는 상태다. 비교 정치학계의 석학 후안 린츠는 권위주의 체제를 전체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에 있는 정치체제로 정의했고, 그 특징을 ‘자유’와 ‘전면적 억압’의 중간 상태 ‘제한된 자유’와 ‘제한된 다원주의’라 설명했다. 풀어 말해, 탈권위주의는 의회와 법원, 검경 같은 국가기구의 자율성, 언론과 국민이 누리는 비판의 자유로 결정된다. 내가 노무현을 탈권위주의자로 인정하는 건 소탈한 인간성 때문이 아니라, 그가 저런 계통의 사회적 자율성을 확보하려 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서민적 면모를 선전하는 건 탈권위주의와 무관하다. 아니, 그것이야말로 권위주의의 본성이다. 제 아무리 억압적인 권력이라 해도 지도자의 인간적 면모를 강조하기 마련이고, 그런 연출을 통해 억압적 체제에 모자이크를 씌운다. 오히려 지도자의 소탈함이 강조되는 사회일수록 통치 상태가 경직돼 있다고 봐도 된다. 유신독재 권위주의의 화신 박정희도 논바닥에 퍼질러 앉아 촌부들과 막걸리를 마시는 지도자였다. 적어도 그렇게 알려져 왔다. 조선일보 같은 극우 언론은 박정희 사후에도 이 점을 조명하며 역사 속 독재자를 인간화하려 했다. 독재자의 '탈권위주의'는 '막걸리'라는 도상과 함께 우상화되어 박정희 기념관에서 그의 ‘소탈한 한 때’를 재현하고 있다. 북조선 인민공화국에 왜 그리도 많은 '따뜻한 수령님'의 초상화가 걸려 있겠는가. 권위주의는 지도자의 격의 없는 모습으로 신민들의 복종을 끌어내고 권위를 강화한다. 나는 문재인 정부가 이미지 정치의 위력을 자각하고 적극 구사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문재인의 인기가 동원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만은 않는다. 국민들은 지난 십 년 동안 권위주의에 질려있었고, 실제로 그 이명박근혜와 다른 노선으로 정치를 해온 측면이 있다. 그건 통치에 대한 견해가 다르다는 뜻이지, 성품이 다르다는 뜻은 아니다.


그래서 탈권위주의란 개념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하다. 문재인 지지자들이 '우리 이니'의 인간미를 숭앙하는 나머지 그런 지도자가 국민에게 과분하다고 믿고, 대통령 비판하는 언론을 '조지고' 다닌다면, 탈권위주의에 대한 무지를 넘은 악용이다. 탁현민이 해로운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그가 연출하는 노타이 미팅, 스티브 잡스식 국정 프레젠테이션 같은 탈권위주의가 권위주의적 통치를 감추고 정당화하는 눈가리개로 쓰일 수 있다. 다르게는 탁현민이란 이미지 기획자의 존재에 문재인이 품은 권위주의가 결집해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문재인은 얼마 전 탁현민이 준비한 국정 프레젠테이션을 마친 뒤 “내용은 물론 형식도 산뜻했다”며 격찬했는데, 앞으로도 그를 데리고 가겠다는 메시지다. 탁현민의 여성혐오 필화로 야당은 물론 여당과 시민사회에서 해임요구가 넘쳐나는데도 그를 묵살하는 권위주의로 질주하며, ‘소통’과 ‘파격’의 '탈권위주의'에 대한 기여도를 변명거리 삼은 것이다. 사회적 논란의 복판에서 버틴 채 갈등을 증폭하는 인물이 사회통합을 위한 노타이 미팅을 기획하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미지 없이 소통할 수 없는 시대에 이미지 정치를 막을 도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실 있게 준비한 국정을 소개하고 추진하는 수단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과 정부에 관한 이미지를 연출하는 데 사활을 걸고, 그것으로 지지율 확보를 갈음한다는 인상마저 든다. 어쩌면 탁현민이 문재인에게 매달려 있는 형세가 아니라 그 반대일지도 모르겠다. 몇 장의 포토제닉한 이미지는 그 자체로 아무런 의미도 내용도 없다. 문재인의 노타이 맥주 미팅이 박정희의 논바닥에서 막걸리 마시기보다 탈권위주의에 기여하는 바가 클까. 전자는 전문직 엘리트 취향이지만 후자는 밑바닥 촌부들 취향이란 점에서, 차라리 후자가 화끈하기라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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