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글이 좋은 글일까?
얕게 아는 사람이 허세를 부린다. 정말로 잘 아는 사람은 어려운 말을 쓰지 않는다. 쉬운 글이 잘 쓴 글이다.
'쉬운 글이 제일이다'는 깊고 넓게 퍼진 생각이다. 잘 모르는 사람이 어려운 말로 중언부언할 수는 있겠다. 자신도 자기 말의 요점을 모르고 아는 것보다 많이 아는 척 뽐내고 싶은 거다. 그러면 제대로 아는 사람의 글은 쉽고 간결할까? 잘 모르는 사람을 상대로 핵심만 얘기할 땐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덜 알아도 그런 작업을 더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소위 대중교양서 작가다. 진중권과 유시민이 그런 타입이다. 유시민만큼 지적 내용을 반듯하게 말과 글로 풀어내는 사람은 드물다. 언젠가 그가 철도 민영화 문제를 설명한 글은 인터넷 각지에서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그렇다고 유시민이 경제학 전문가 축에 끼진 못한다. 글을 쉽게 쓰는 재능과 많이 알고 있는 상태는 척 생각해도 다르다. 비슷한 예를 다른 분야에서 수없이 찾을 수 있다. 영화 평론계에선 정성일 보다 이동진이 훨씬 쉬운 글을 쓴다. 정성일이 영화를 더 모르기 때문일까? 공부는 많이 했지만 글솜씨는 좋지 않은 사람도 있다. 법원 판결문은 예전부터 은근한 악문으로 이름이 났다.
쉬운 글이 최고라는 건 미신이다. 글의 본질은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이고, 정확한 표현이 좋은 표현이다. 어려운 내용을 쉽게 쓰면 부정확해진다. "아무리 어려운 내용도 쉽게 풀 수 있다"는 건 사실이 아니라 믿음이다. 어휘와 표현엔 개별성과 고유성이 있다. 어떤 개념이 낯설고 복잡하다면, 그것을 설명하는 문장도 낯설고 복잡한 것이 내용에 맞다. 이것을 익숙하고 단순하게 바꾼다면 개념의 내용이 깎여 나간다. 글을 쉽게 써야 한다는 요구는 글쓰기의 본질이 아니라 독자의 문해력에 따라 타협할 수 있는 요소다. 어려운 글을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그 부차적 요소의 중요성이 큰 거다. 하지만 그런 요구를 넘어 어려운 글을 배격하는 태도는 돌아봐야 한다. 글과 독자가 소통하는 방식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어려운 글을 독자의 수준에 맞추는 것이고, 하나는 독자의 수준을 글에 맞춰 끌어올리는 것이다. 전자가 후자보다 현실적이지만, 한 사회가 그 저변까지 깊고 정밀한 토론을 공유하는 데 어떤 방식이 보탬이 될지 자명하다. 쉽게 읽힌다는 상태는 노력을 덜 하며 읽는다는 상태와 통한다. 독자 보다 한 걸음, 반 걸음이라도 앞서 과제를 제시하는 '어려운 글'은 그 점에서도 쓸모가 있다.
어떤 지식인들은 "대중을 상대로 쓰는 글은 쉬워야 한다"라고 꾸짖는다. 이들은 대중의 친구가 아니라 대중을 업신 여기는 귀족이다. 대중의 능력으론 어려운 글을 이해할 수 없다고, 변할 수 없는 사실처럼 믿고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