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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Oct 18. 2017

보이지 않는 혐오

일베가 매개한 한국 사회 극우화

일베는 ‘사라지는 매개자’였다. 한국 사회 곳곳에서 분칠 돼있던 극우 이념을 까발리는 임무를 수행하고 실종된 방화범. 일베가 출현해 논란이 된 2013년 전후로 한국 사회의 표준성이 변화했다. 이 변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2013-14년경에 일베는 눈에 보이는 논란거리였다. 인터넷 커뮤니티 어디에서나 일베 유저의 분탕질이 골칫거리였고, 일베 유저들이 단식 투쟁 현장에 나와 '폭식 투쟁'을 했고, 공중파 TV에서 일베를 나타내는 수신호가 출몰했다. 이제 이런 일은 없다. 그래서 상황이 나아졌는가? 일베 출신 BJ가 퍼트린 '앙 기모띠'라는 말이 초등학생들의 유행어가 됐고, 세월호 유족들을 향한 무임승차 혐오는 다양한 버전으로 대학생 사회에 자리 잡았다. ‘편입충’ 같은 말과 제2 캠퍼스를 향한 괄시가 대표적이다. 이명박 정권 때까지 최소한의 품위를 의식하던 정통 보수정당은 호남 혐오를 대놓고 선동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실제로 일베는 젊은이들에게 해방감과 호소력을 줬을 것이다. 일베는 거대한 커뮤니티였다. 한 달 방문자 수가 1900만 명에 달했고, 동시 접속자는 2만 5천 명이었다. 이런 규모와 활력은 국정원이 일베를 기획했다는 사실 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갑갑한 윤리와 규범이 추방된, 그것을 마음껏 비웃을 수 있는 야만의 자치구에 집결했다. 일베는 오프라인에 존재하던 결핍과 사고방식을 흡수한 후 다시금 오프라인에 재생산했을 것이다. 그렇게 일베란 낙인을 찍어 댔는데도 말이다. 아니, 일베에 찍던 낙인은 쓸모가 없거나 오히려 좋지 않았다. 노무현에 대한 망자 모욕, ‘홍어’와 ‘삼일한’ 같은 쓰레기에 이른 말들, 의미를 알 수 없는 암구호 같은 일베어를 표식 삼은 낙인이었기에 그 아래 깔린 '사상'은 뭉텅이로 새어 나갔다.


진보적 시민사회가 수면 위 부상한 일베에 전율하기 바쁠 때 수면 아래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내가 보기에 13-14년 경부터 페이스 북과 유튜브, 아프리카, 카카오톡에서 일베적 콘텐츠가 무시무시하게 퍼져나갔다. 일베라는 라벨이 붙어있지 않았을 뿐 일베가 증폭한 극우 정신을 담은 콘텐츠들. 일베의 끔찍한 점은 그 모든 혐오를 '유희'의 형식으로 가공했다는 사실이다. 이 점이 일베적 콘텐츠가 이미지의 형식과 만나 각종 SNS에서 무한 증식하는 비결이다. 초등학생들이 왜 유튜브를 보겠는가? 재밌으니까 보는 거다. 상남자 만화와 ‘김치녀’ 페이지, BJ 철구와 지코가 진행하는 아프리카 방송이 그런 사례다. 그 많은 ‘단톡방’ 성폭력 사건도 그렇지 않은가? 지인의 사진을 게시판에 올려 댓글로 능욕하는 일베의 행태가 일상의 폐쇄적 그룹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5060 단톡방에서도 가짜 뉴스가 나돈다. 이휘호와 문재인을 욕하고 세월호와 광주 유족을 비방하는 글은 어르신들 지인 그룹에서 공유되는 소식들이다. 물밑에서 일베를 키우고 선전 작업을 한 이명박과 박근혜를 용서할 수 없다.


사회는 "일베가 왜 문제인가"라는 질문을 공유하지 못했다. 여성혐오와 소수자 혐오, 호남 혐오 같은 약자 혐오와 무임승차 혐오가 문제의 근원임을 짚지 못했다. 인의 도덕 같은 헐거운 필터를 쓰고 노무현 조롱 같은 가장 말초적인 부분에 공분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혐오와 차별, 능력주의는 한국사회의 보편 이데올로기니까. '우리 안의 일베'였으니까. 오히려 패륜아 일베는 '우리'를 도덕적으로 정당화해주는 아군이었다. 여성혐오를 판단하는 지표를 '삼일한' 같은 패륜으로 상향할 수 있었으니까.


일베가 가진 저 자신 만의 문제와 사회와 공유하는 문제를 성찰하지 않고, 일베를 절대악의 표상으로 쓸 때 이런 문제도 생긴다. 일베란 낙인을 아무 곳에나 갖다 붙이며 반대자를 배제하는 것이다. "메갈은 여자 일베"가 남초 집단의 '상식'이 되지 않았는가? 일베에 대해 가장 예민한 반응, 편집증에 달한 증오를 퍼붓던 게 엠팍 같은 진보-남초 사이트였다. 이제 저들의 게시판에서 일베는 별로 거론되지도 않는다. 저들은 메갈리아를 '일베 같은 집단'으로 매장하는 데 골몰할 따름이다. 심지어 페미니즘에 대해 일베와 암묵적 연합전선을 펴고 있다. 아니, 일베가 부상하던 시기 남성연대 성재기가 악명을 떨쳤지만, 이제 성재기가 사라진 자리에서 박가분과 전우용, 남초 커뮤니티가 남성연대와 비슷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일베 대 진보 커뮤니티라는 사회의 새로운 대결 구도는 메갈리아 대 남초 집단으로 대체되었다. 최근 일이 년 사이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급격한 우경화가 일어난 건 그 반대쪽에서 메갈리아로 표상되는 페미니즘이 급속히 성장한 것에 대한 백래쉬이기도 하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일으킨 반란에 직면했고, 여성혐오의 가해자로 지목당하며 도덕적 정당성의 분열에 처했다. 반 메갈리아라는 반동적 흐름은 이런 헤게모니의 위기에 직면해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탄로 난 ‘실체’이자, 세대론으로 획득한 진보의 적자라는 도덕적 지위를 수복하기 위한 ‘남성 연대’다. 여성이 사회적 약자임을 부정하고 ‘메퇘지’라는 여성혐오를 뱉으면서, 여성혐오는 일베나 하는 짓이라고 안도감을 얻는다. 그런 한편 페미니스트들을 ‘여자 일베’로 규정하며 도덕적 우위에 서려는 것이다.


남초-진보 집단은 일베에 대한 타자화와 자기 정당화만 한 것이 아니다. '유희를 통한 혐오'라는 일베 콘텐츠의 핵심을 흡수하고 따라 하고 있다. 얼마 전 루리웹에서 베스트 게시물에 오른 '택시 운전사 만화' 같은 여혐 콘텐츠가 딱 그 거다. 남초 사이트에서 일상어가 된 '메오후' '쿵쾅이' '메퇘지'가 '노알라' '홍어' '유족충'과 무엇이 다른가? 혐오를 공유하고 유희하는 집단적 방언이란 점에서 다르지 않다. 한편으론 워마드라는 반퀴어 페미니스트 그룹이 일베의 콘텐츠를 미러링 하는 것을 넘어 일베어와 동성애 혐오 표현을 항구적 관습으로 채택했다. 이렇게 보면 일베가 구석진 도처에서 얼마나 깊은 존재감으로 사회와 공명했는지 알 수 있다.


내가 최근 청원된 일베 폐쇄 요구를 무익하다고 보는 이유가 그렇다. 일베는 커뮤니티로서 세력이 위축됐다. 국정원이 후원한 사실이 알려지며 커뮤니티의 자생성이 부정당했고 사회적 존재감이 가라앉았다. 지금 와서 폐쇄할 실익이 없고, "일베가 사라졌으니 사회는 깨끗하다"라는 도덕적 알리바이만 부추길 수 있다. 유럽과 일본, 미국에서 극우세력이 대두하고 있지만, 일베가 특이한 점도 이런 것이다. 프랑스 국민전선과 독일의 NPD는 극우 세력의 본진으로 그 나머지 세력에게 마지노선을 제공해준다. 일베는 온라인 네트워크가 비대한 한국에서 세계적 흐름을 따라 나타난 신흥 극우집단이지만 사회적 갈등의 전선에서 투명화 되어 간다. 대신 짧은 기간 동안 사회에 잠재된 극우성을 가시화하며 표준적 시민의식을 하락시켰다. 말 그대로 사라지는 매개자. 한국 사회는 보이지 않는 혐오의 전선으로 종군해야 하는 난제에 처했다.


일베가 이 모든 일을 해냈다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일베는 98년 이후 본격화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00년대 이후 시민사회의 온라인 네트워크화와 인터넷 혐오 콘텐츠 축적 등이 한 점에서 만난 계기다. 혹은 그 압도적 흐름을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일 뿐이다. ‘반사회적 사이트 일베’를 고유명사로 취급하는 건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역겹고 추악한 일베의 행적이, 아무런 조명 효과와 보정 기능도 없이 한국 사회 턱 밑에서 앙각으로 찍힌 셀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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