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공인? 유명인.
문화부 기자들이 쇄신할 관행을 한 가지만 제안하자면 ‘공인’ 대신 ‘유명인’이란 표현을 쓰는 것이다. 한국에선 연예인을 공인이라 부른다. 꼭 연예인이 아니라도 이름이 알려졌다면 운동선수 같은 사람들까지 공인이라 부르곤 한다. 공인公人은 공적公的 사무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나라의 녹을 먹는 정치인과 공무원이다. 흔히 공인을 영어로 public figure라 번역하고는 하는데, 미국의 theory of public figure에서는 pubilc figure를 public office와 구분한다. 후자가 공인公人의 사전적 정의에 부합하고, 전자는 신문지상과 방송 전파 등을 통해 공공연히 알려진 사람에 가깝다. 한국에서 공인이란 낱말이 사회적 합의 없이 회자되다 보니, 언중의 관습상 public figure까지 아우르게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공인이란 말속엔 그만큼 저 두 의미가 두서없이 뒤섞여 있으며 편의적으로 혼용되고 있다. 무엇보다, 연예인을 칭하기에 더 정확한 개념이 따로 있는데, 굳이 공인이라 부를 이유가 없을 것 같다. 사적 영리 활동에 종사하는 유명한 사람, 바로 유명인이다. 어느새 일상어가 된 외국어로 부르자면 셀러브리티다.
공인과 유명인을 구분하는 게 왜 중요할까. 우선은 공인이란 호명의 폭력성 때문이고, 다음은 미디어 사회의 보폭을 따라잡기 위해서다. 한국에서 연예인이, 그러니까 유명인이 공인이라 불리는 맥락은 대개 이렇다. 사회적 책무를 무겁게 지우거나, 도덕적 평가를 늘어놓고, 사생활을 몰수하는 맥락이다. 이 중 대부분이 public office와 public figure를 혼동한 요구다. 외교부 장관이 공식석상에 욱일승천기 문양을 가슴팍에 부착하고 참석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는 한 나라의 역사적, 대외적 입장을 어느 정도 대표하는 존재기 때문이다. 하지만 걸그룹 멤버가 인스타그램에 욱일승천기 스티커가 붙은 사진을 올렸다면, 그것이 실수였다고 즉각 해명하고 삭제한 다음에야, 더 이상 추궁할 명분은 흩어진다. 이런 구분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자리를 정확하게 찾아주기 위해서라도 중요하다. 가령 공인이라 해도 넘볼 수 없는 사생활은 있다.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은 스무 살 많은 영부인과의 ‘불륜’ 논란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공과 사를 합리적으로 분별한다면 공동체 운영에 직결돼있는 정말로 공적인 사안에 집중할 수 있다. 정치인을 성토하듯 연예인을 심판해봤자, 정치를 바로 세우고 있다는 환상에 열정을 허비할 따름이다.
이것이 유명인에게 사회적 책임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그 나름의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따져 묻자는 말이다. 유명세는 영향력이다. 그는 다중 앞에 목소리와 이미지를 전파하고 그것으로 활동을 이어간다. 사실을 말하자면, 유명인의 활동이 공동체의 가치관과 감수성에 포자를 퍼트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는 자신의 말과 행동이 본보기가 되거나 다수의 눈과 귀에 가닿는 폭력이 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런 기준에서, 유명인이 전파와 매체를 통해 다중 앞에 드러내지 않은 사적 문제 혹은 시민적 가치와 무관한 ‘인성’ 따위는 캐물을 실익이 없다. 하지만 그가 공동체 구성원 누군가의 시민권을 부정하거나 위축시킬 수 있는 언행을 한다면 공인이 아니란 잣대로 용납받을 수 없는 것이다. 미디어와 시민의식이 발달한 서구에서 여성과 성소수자, 소수인종을 향한 혐오표현을 뱉은 셀러브리티가 예외 없이 곤장을 얻어맞는 이유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의식은 사회의 밑바탕 관념으로 다수화해 있으므로 어떤 큰 목소리가 어깨를 두들겨준다면 기고만장해진다.
최근 한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유아인 씨가 군중의 폭거에 맞서고 있다 말했다. 연예인 악플 사냥은 물론 정치인을 향한 ‘문자 폭탄’이 쏟아지는 세상이니 그렇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theory of public figure에서는 공적 이슈에 자발적으로 발 디딘 public figure는 그에 따른 다중의 평판을 감당할 책임이 있다고 풀이된다. 그들에겐 사람들의 평가를 반박하고 입장을 알릴 발언권도 넉넉하다. 미국 법원이 public figure가 명예훼손을 제소할 명분을 좁게 인정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유아인 씨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커다란 유명세를 지닌 사람 중 하나임을 잊어선 안 된다.
이처럼 연예인을 유명인으로 바꿔 발음해보면 그들의 힘과 책임이 무엇에서 비롯하는지 뚜렷해진다. 그리고 1인 미디어와 소셜 네트워크의 만화경이 유명세를 민주화한 오늘날, 그 힘과 책임이 꼭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에게 전가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공동체 구성원 저마다가 자신이 public 하게 뱉는 말의 나비효과를 예견하고, 자기 몫의 말의 윤리를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