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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Nov 24. 2018

아이즈원에게 씌워진 누명

지난달 29일 데뷔한 걸그룹 아이즈원은 음악 채널 Mnet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듀스 48’을 통해 선발된 신인 아이돌 그룹이다. ‘프로듀스 48’은 지난 시즌들과 달리, 일본 아이돌 그룹 AKB 48과의 합작으로 진행됐고, 한국인과 일본인 멤버를 아우르는 글로벌 걸그룹이 탄생했다. 이들은 데뷔 후 작은 해프닝에 휘말렸다.     


지난 11월 8일 일본 아사히 TV는 과거 한 멤버가 입은 티셔츠에 새겨진 원자 폭탄 이미지를 명분으로 방탄 소년단의 음악 방송 ‘엠스테이션’ 출연을 취소했다. 바로 다음날, KBS 청원 게시판에 한국 공영방송도 일본 기획사와의 합작으로 탄생한 아이즈원을 퇴출시키라는 청원이 등장했다. KBS는 23일, “심의기구를 통해 출연 자제 또는 규제에 대한 지침이 전달된 바 없으며” “명확한 규제 근거와 지침이 없는 상태에서 제작진이 임의로 판단하여 특정 출연자의 출연을 규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라고 청원을 기각했다.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이다. 세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첫째, 연예인의 과거 행적을 들어 그가 속한 그룹 전체의 방송 출연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건 방송 권력의 자의적 행사다. 그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는 입장에서, ‘우리’도 똑같은 잘못을 하며 갚아주자는 건 옳고 그름을 따진 판단이 아니라 피장파장의 분풀이에 불과하다. 그래서는 아사히 TV의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규탄할 자격도 없어진다. 한 사회에 전파를 송출할 권한과 책임이 있는 방송 채널이라면, 그것도 한 국가의 격식을 반영하는 공영 방송사라면, 이런 식으로 출연 규제를 남용해서는 안 된다.


둘째, 아이즈원을 출연 규제하는 것은 ‘피장파장’의 목적조차 달성할 수 없는 자가당착이다. ‘프로듀스 48’은 AKB 48이 참가했을 뿐 한국 케이블 방송사 Mnet이 제작한 프로그램이다. 마찬가지로 아이즈원 또한 AKB48 일부 멤버가 영입됐고 일본 기획사 AKS가 비즈니스 파트너로 참여할 뿐, 어디까지나 CJ E&M 산하 레이블 오프더레코드 소속 그룹이다. 한국 방송을 거쳐 선발된 데다, 한국 기획사가 한국 자본으로 운영하고 멤버 열두 명 중 아홉 명이 한국인이다. 일본 방송이 한국 그룹을 퇴출했으니 한국도 한국 그룹을 퇴출하자는 걸까? 청원을 제기한 사람들의 사고 상태를 짐작할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아이즈원은 ‘우익 그룹’이 아니다. 여기서 우익은 문맥상 친일/반민족 사상을 뜻하는 것 같다. 같은 취지의 청원이 아이즈원의 공중파 출연을 앞두고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도 나타난 적 있는데, 이 주장들은 날조와 비약, 엉성한 서술에 찬 허위 주장이다.     


누군가의 사상적 성향을 정의하려면 그 사상을 지향하는 명시적이고 능동적인 행적이 있어야 한다. 사상이란 세상에 관한 생각과 가치관을 뜻하는데, 그런 내면을 밖으로 꺼내 보인 콘텐츠가 있어야 판단할 근거가 있다. 마찬가지로 “아이즈원은 우익 그룹이다”처럼 그룹 전체 성격을 '규정'하려면 그룹 멤버들이 우익으로 표상되는 사상을 공유하고, 그룹 차원에서 표현하고 실천하는 수준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룹 멤버 열두 명 중 한국인이 아홉 명인 데다 그중 한 명은 방송에 위안부 피해자에 연대하는 배지를 달고 출연한 그룹이 어떻게 우익인가. 아이즈원은 이제 막 데뷔해 첫 앨범을 냈고 아무런 공적 발언도 하지 않은 상태다. "아이즈원은 우익 그룹"은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가 없다.     


청원인 들은 아이즈원이 '프로듀스 48'로 탄생한 그룹임을 거론하고, “AKB48이 우익활동에 적극적인 그룹”이라고 주장한다. 이건 아이즈원의 활동이 아닌 일부 구성원들의 과거로 향하는 주장이다. 이걸 바탕으로 청원인 등이 취할 수 있는 입장의 최대치는 아이즈원이란 그룹에 관해 한일 양국 역사와 국민정서상 논란의 소지가 잠재해있다는 정도다. 헌데 이걸로는 공중파 출연 금지 같은 극단적 주장이 정당화될 수 없으니 “아이즈원 자체가 우익 그룹”이라는 비약으로 낙인을 씌우는 것이다.     


AKB48이 우익활동에 적극적인 그룹이란 주장 역시 허위다.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 아이돌 또한 정치적 색채가 있는 활동을 피한다. AKB48은 그룹 차원에서 한일 양국 역사에 극우적 입장을 피력한 바가 없다. 이런 주장을 하려면 뒷받침하는 근거를 말해야 한다. 청원 게시물에는 막연한 단정만 남발될 뿐 근거 역할을 제대로 하는 문장이 없다.      


일각에서 AKB48이 연 '우익 콘서트'라고 떠도는 자료는 2015년 발표된 AKB48의 40번째 싱글 '僕たちは戦わない(우리는 싸우지 않아)‘ 공연 장면을 캡처한 것인데, 오히려 이 노래 가사는 전형적인 반전(反戰) 메세지다. "우리는 싸우지 않아, 사랑을 믿어, 치켜든 그 주먹, 누구라도 내리게 할 날이 올 거야. (...) 만약 누군가 마음 깊이 분노를 담고 있다면 전부 들어주겠어요." 이것이 전쟁을 일으킨 국가의 반성으로 부족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평화를 지향하는 노래가 평화헌법 개정을 통해 재무장을 꿈꾸는 일본 우익 세력의 노래라고 주장한다면 완전히 틀린 사실 조작이다. 저 공연장에 소품으로 등장한 탱크와 일제 전투기는 당연히 그것이 재연되어선 안 된다는 반성의 의미에서 배치된 것인데, "탱크와 전투기가 등장했으니 우익"이라고 왜곡하는 주장이 퍼 날라진 것이다. 또한 해당 자료에는 서로 다른 장소에서 연행한 공연들이 마치 같은 공연인 것처럼 짜집기되어 있다. 청원인들이 인용하는 주장의 근거가 전부 다 이런 식이다.      


이번 청원과 같은 논란은 ‘프로듀스 48’이 방영될 때에도 나타났다 수그러든 바 있다. Mnet 김기웅 본부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서로 간에 정치적 이슈가 될 만한 것은 어떤 것이든 조심하자고 했다. 양쪽 모두 리스트를 미리 만들어서 이런 부분은 민감하다고 서로에게 알려줬다. 그런데도 프로그램 초반에 그런 이슈(AKB48의 우익 논란 등)가 불거지는 바람에 한국과 일본 모두 상당히 당황스러웠다”라고 말했다. 역사적 이슈가 한일 양국의 상업 활동에 미칠 수 있는 악영향은 공인돼 있는 데다, ‘프로듀스 48’은 2년 전부터 준비된 기획이다. 저만한 자본금이 투입된 거대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국내 최대 엔터 회사 CJ E&M이 관련해 사전 조사를 하지 않았을 개연성은 낮고, 문제가 명백한 데도 실행했을 개연성도 낮다.     


한국과 일본은 사회문화적 배경이 다르며 한 시기의 근대사를 상반된 입장에서 공유하고 있다. 때문에 일본 국민들 사이 보편화된 기호와 관습이 한국인이 보기엔 낯설고 불합리할 수 있고, 어떤 맥락에서 어떤 모습이 불려와 강조되느냐에 따라 그에 대한 감정과 인식이 달라질 수도 있다. 앞서 말했듯 한 개인의 정체성이 우익이란 식으로 규정하려면, 보편적으로 사회화된 일본 국민의 수준을 넘어 우익적 가치를 지향하는 발언과 행동이 있어야 한다. 침략 역사를 부정하든가, 평화 헌법 개정을 지지하든가, 독도는 일본 영토라 주장하든가. 단편적 정황을 일반화할 것이 아니라, 행적을 아울러 종합적 평가를 내려야 한다는 말이다. 아이즈원 일본인 멤버들은 그런 발언과 행동을 한 적이 전혀 없다. 오히려 멤버 중 한 명 미야와키 사쿠라는 대략 이년 전 일본 저널리스트 타하라 소이치로와의 대담에서, 총선을 앞둔 평화 헌법 개정 이슈에 비판적 취지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청원인 들은 아이즈원과 일본인 멤버들의 과거에 저토록 관심이 많으면서, 왜 검색만 하면 나오는 찾기 쉬운 사실 만은 몰랐을까?     


일본 우익 세력의 또 다른 특징은 혐한과 배외주의다. 그들은 한국인을 향해 인종적 차별의식을 토하고, 한류 연예인의 일본 진출을 혐오한다. 가령 7년 전 2CH에서 주도한 대표적 반한 시위 ‘8.21 후지 TV 항의 시위’에서 등장한 구호는 “한류 따위 보고 싶지 않다” “케이팝 따위 듣고 싶지 않다”였다. 상황이 이러한데, “일본 아이돌이 고교 야구라면 한국 아이돌은 프로 야구”라며 한국 음악 채널과 협업을 추진한 사업가와 케이팝 아이돌을 동경해 일본에서의 생활을 버리고 동해를 건너온 젊은 여성들이 우익일 수 있는가. 오히려 이들이 일본 넷우익 사이에선 일본을 등진 친한파라 비난을 사기도 한다는 점을 떠올리면 아이러니할 따름이다.


한국 사회에서 식민지 과거사는 민감한 역사이고, ‘우익’이라는 규정 또한 뜨거운 휘발성을 품고 있다. 때문에 가십에 오르내리는 당사자들 입장에선 그 프레임을 스스로 거론하며 해명하는 것 자체가 불리하고 피하고 싶은 일이다. 아마도 청원인들이 샌드백으로 노린 것 또한 아이즈원 측의 그런 속사정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누군가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이야기일수록 정확한 근거를 갖춰 신중하게 판단해야 하는데, 저토록 허술하게 내키는 대로 뱉을 수는 없는 법이다.     


국가는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동어반복의 우상이 아니라 그 안에 사는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다. 따라서 국적에 앞서 국적이 다른 개인의 존엄을 존중하는 인본주의적 가치가 필요하다. 구체적 사실로부터 사안을 더듬으며 그 성격에 맞물리는 평가를 내리는 노력을 투기한 채, 사안과 연관성이 적은 정황을 한 개인, 개인이 소속된 그룹으로 확대해 전면적 규정을 가하며 그들의 장래를 훼손하려는 사람들은 과연 애국자일까? 그들이 과연 국가와 민족이 무엇을 위해, 왜 존재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있을까?     

 

이 나라 과거사가 가볍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역사가 너무도 무겁고 귀중하기 때문에 전하는 호소다. 역사를 되새기고 교훈을 얻기 위해선 그에 얽힌 진정한 쟁점을 가려내는 주의력이 필요하다. 케이팝의 일본 가요 시장 진출이 일상화된 지금, 그 교류 속에 역사적 가치가 침범 받지 않도록 경계해야 하지만, 아이즈원의 과거와 현재를 두고 ‘우익 그룹’ 명명을 씌우는 건 어느 모로 봐도 사리에 맞지 않는다. 치기 어린 가십거리가 역사의 이름으로 포장돼 유포된다면 그건 곧 역사의 무거움을 낭비하는 행동이다. 한편으로 일본 내 혐한/우익세력과 확고하게 전선을 긋기 위해서라도, 한국에 호감을 가진 일본인들을 수용하여 우익 세력을 소수파로 만들어야 한다. 근거도 없이 아무에게나 우익이란 규정을 가한다면 오히려 우익 세력의 숫자를 불려주는 오판이 아닐까?     


‘프로듀스 48’은 방영 전부터 가십을 불렀다. 일본 여성 연예인의 한국 진출에 대한 반감과 '프로듀스' 시리즈 팬덤 세력의 이해관계, 전체 아이돌 팬덤 시장 내부의 견제 심리가 얽혀 연예 사이트를 중심으로 안티 여론이 대두했다. 아이즈원의 공중파 출연을 앞두고 모 연예 포털 사이트에서 아이즈원의 뮤직뱅크 출연을 반대하자는 게시물 링크가 올라온 정황 등이 남아있다. 청원 제도의 취지는 세상의 외진 목소리를 듣고 공익에 직결된 사항에 귀를 열자는 뜻일 것 같다. 사실관계와 논리적 정합성을 결여한 연예가 가십은 오히려 공익과 정 반대 자리에 있다. 이런 소음들이 특정 이슈에 과몰입하는 이들의 ‘화력 동원’을 타고 사회적 안건으로 증폭된다면, 그건 청원을 위해 마련된 공공 자원의 허비다. 무가치한 논란을 언론이 보도하고 공영방송이 응답하는 동안 정말로 공익적인 안건이 뒷전으로 묻힐 수 있다.     


이번 해프닝은 공론장의 규격이 인터넷 랜선과 와이파이 보급 지역과 일치하는 이슈 과잉 사회의 단면을 투사한다. 조회수와 트래픽, 네티즌의 이슈 몰입 수준에 따라 사회적 논란이 형성되고 빗발치듯 교체되는 동안 그것이 논할 가치가 있는 사안인지는 망각된다. 네티즌 저마다가 인터넷 댓글창과 커뮤니티 게시판이라는 ‘개인 지면’, SNS 1인 미디어를 보유한 공론장의 주인으로 떠오른 시대다. 이들이 더 이상 익명의 댓글 작성자가 아니라 사회적 논의를 좌우하는 주체로서 자신이 생산하는 활자 바이트의 무게감을 자각하여야 할 필요가 절실하다. 또한 깊은 반성이 돌아가야 할 건 언론 기자들이다. 어떤 연예 언론들은 아이즈원에 관한 해당 이슈를 보도하며, 사실관계 검증을 건너뛴 채 "논란이 있다"라는 게으르고 속 보이는 문장으로 논란을 재생산하는 공범을 자청했다. 한 기자는 허위 사실에 이른 낭설을 기정사실처럼 받아 적었고, 또 다른 기자는 '한국 아이돌은 일본 방송에서 퇴출 당했는데 아이즈원은 한국에서 자유롭게 활동한다'며 노골적으로 이지메를 선동했다. 어느 포털 사이트 메인에 노출된 기사에는 기사 페이지에 붙은 제목과 다른 선정적 표제가 달려 있기도 했다. 

더 이상 언론이 독점적 발언권을 행사할 수 없다면 네티즌들과 공론장의 주체로 공존하고 그들을 인도하는 것이 변화한 환경 속의 소임일 것이다. 양질의 사실관계를 제공하고 발화 윤리의 가이드라인을 선보여야 할 기자들은 조회 수의 사료를 받아먹으며 권한과 책무를 스스로 포기했다. 한국 사회 공론장의 어떤 현주소다. 이것이 이 무가치한 해프닝이 주는 유일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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