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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Dec 27. 2015

두 개의 언더 그라운드

CJ E&M 하이라이트 레코즈 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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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힙합 레이블 하이라이트 레코즈가 CJ E&M에 인수되었다. 곧장 힙합 플레야가 발행한 하이라이트 대표 팔로알토의 인터뷰를 읽었다. 좀 멍한 기분이 들었다. 기사 댓글 난에서 사이트 회원들이 벌인 갑론을박도 읽어보았다. 사태의 핵심은 짚어지지 않았다. 


 나는 레이블 인수에 관한 팔로알토의 변을 읽고 불쾌감을 느꼈다. 언더그라운드 정신을 져버리고 자본의 총아 CJ에 투신했기 때문이 아니다. 팔로알토와 하이라이트 멤버들은 음악인이기 이전에 생활인이다. 자신의 재능을 더 나은 삶을 영위하는 데 사용하고 싶다는 욕망은 비난할 수 없다. 음악인으로서 든든한 후원에 의지해 창작에 매진하겠다는 야심도 비난할 수 없다. 내가 문제 삼는 것은 ‘태도’다.


 아래는 팔로알토가 올해 3월에 트위터에 남긴 글이다.     


어리고 젊은 친구들은 자본보다 예술이 더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길 바래요! 제가 그런 움직임에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알다시피 팔로알토, 나아가 하이라이트는 오랫동안 Mnet <쇼미더머니>를 향해 어금니를 드러냈다. <쇼미더머니>와 야합해 돈다발을 핥는 MC들을 공공연히 욕했다. 하이라이트의 단체곡 'My Team'은 이런 애티튜드를 집대성한다.     


"랩 ‘병신’ 찌질이 산이 같이” “Show me the money 치트키 안 써도 한국 대표” “강한 척만 하던 애들이 카메라 앞에선 질질 짜 비겁하지” “난 일 년째 이 바닥에서 간지를 책임지는 돈키호테” “돈다발의 똥꼬를 빠는 비열한 새끼들. 엿 먹어. 감히 누가 누구를 까? 우린 여기에 얼마 없는 진짜배기 label. 차트에선 찾아볼 수 없는 내 이름. I don't give up fuck. 관심 없어” “모두가 뜰려고 발악이네. 그래 인생은 한방이네. 돈 땜에 모두가 쌈마이네. 목말라 여기가 사막이네”     


하이라이트의 명패를 걸고 레이블 멤버가 총출동해 부른 이 곡을 듣고, 나는 그들이 자신들의 색깔을 자유롭게 색칠할 수 있는, 상업 차트와 유리된 언더그라운드를 자랑스러워하며 그 자리를 지키겠다고 외치는 선언으로 이해했다. 한편으론, 그런 자부심에 찬 선언을 훈장으로 대칭의 행보를 걷는 이들을 마음껏 꾸짖었을 것이다. 이 곡은 2014년 9월에 발표됐다. 올 3월에 팔로알토가 남긴 트윗도 이런 애티튜드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팔로알토는 문득 돌발행동을 한다. 올해 6월, <쇼미더머니 4>에 출연한다. “모두가 뜨려고 발악”하고, “찌질이 산이”의 본진이며, “카메라 앞에서 질질 짜는” 비겁한 “치트키” 프로그램에 가세한 것이다. 나는 팔로알토의 <쇼미더머니 4> 출연 소식을 듣고 거의 경악했다. 출연 자체도 의외였지만, 이 극명하게 모순된 행보에 대해 납득할만한 해명을 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일리네어가 챙길 것만 챙기는 것을 보고 우리도 그런 식으로 활용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라는 취지의 말을 한 기억이 있을 따름이다(팔로알토는 “‘Show me the money 치트키 쓰지 않겠다’는 가사는 내가 쓴 게 아니다”라는 식으로 자신이 뿌린 말들의 틈새를 찾아 빠져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팔로알토의 <쇼미더머니> 출연 효과와 의미는 비단 그 개인에게 머물지 않는다. 그는 하이라이트의 수장이다. 방송 제작진은 그런 ‘스펙’을 고려해 그를 프로듀서로 섭외했을 테고, 그가 방송에 출연해 챙기는 이문은 레이블 차원으로도 돌아간다).


 그러면서 <쇼미더머니 4>에 출연 중이던 8월 20일, 또다시 의미심장한 트윗을 남긴다.

     

chief life 때쯤부터는 그때의 내 감정에 충실할 뿐이다. 하늘에서 내게 언제까지 창작을 허락할지는 모르겠지만 난 내가 만족하고 사람들과 함께 즐기고 나눌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을 뿐이다. 나는 힙합 씬을 위한 그 어떤 의무감도 책임감도 느끼지 않는다.     


올 3월에 남긴 트윗과 비교해 보라. “어리고 젊은 친구들은 (…) 제가 그런 움직임에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와 “나는 힙합 씬을 위한 그 어떤 의무감도 책임감도 느끼지 않는다” 사이 까마득한 간극.


 사실, 이번 인수 소식만 보면 팔로알토 말대로 급작스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이라이트가 신뢰할만한 걸음을 걸어왔다는 뜻은 될 수 없다. 오히려 느닷없이 큰 커브를 틀며 노선을 철회한 전례가 있기에, 그 변화의 종착지가 어디일지 쉽게 예감할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이 변호해주듯 “하이라이트의 최근 행보를 보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일입니다” 같은 말은 변명이 될 수 없다. 팔로알토는 “우리는 비상업적인 레이블을 추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라며 ‘변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글쎄, 상업성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아이덴티티를 걸고 음악을 하는 사람/집단으로서, 세상을 향해 공언한 포부를 이면지처럼 찢어버린 건 아닐까.


 하이라이트는 상업적 움직임에 저항하고, 지금-여기를 지키겠다는 태도로 ‘언더그라운드의 자존심’으로 대접받았다. 까놓고 말해서, <쇼미더머니>의 수혜자는 거기 출연한 MC들만이 아니다. <쇼미더머니>가 뭇매를 얻어맞을 때마다, 그와 선을 그은 MC들도 ‘반사이익’을 얻었다. 사람은 누구나 변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고, 인간은 그때그때의 상황 논리에 지배당한다. 랩하는 MC라고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정직하게 변화를 인정하고 변하게 된 이유를 해명하면 된다. 그들의 행보를 믿어주고 지지하던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책임이다. 내가 실망한 것은 정확히 이 부분이다. 팔로알토는 별다른 해명도 없이 인수 소식에 이견을 표하는 이들을 미숙하다는 듯 몰고 간다.


 “주로 어린 친구들이 부정적인 견해나 걱정을 하는 걸로 느껴지는데”라며 어린 장르 팬들의 식견이 모자란다는 뉘앙스를 흘린다. “매니아라고 자청하는 사람들에게 ‘대중음악’이라는 단어가 거부감이 큰 것 같다”라며 자신들의 선택에 대한 반발을 ‘매니아부심’으로 치부한다. 급기야, “하여튼 진짜 팬들은 믿어줄 거라고 믿는다”라며 ‘진짜 팬과 가짜 팬의 이분법’을 동원한다. 이거 다 버벌진트가 브랜뉴 뮤직에 둥지를 틀면서 써먹었던 레파토리다.


 나는 과거 오버클래스가 ‘힙합 지진아’ 운운으로 불특정 다수 장르 팬을 깔보며 노이즈 마케팅을 펼 때도 굉장히 언짢았다. 창작자와 향유자는 평등한 관계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순전히 자신들의 어긋난 행적으로 제기된 의구심에 저런 식으로 대응하는 건 잘못이다. 중고생 팬들, 장르 팬들은 근 10년 동안,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언더 힙합을 떠받쳐 온 후원자다. ‘어린 친구들’과 ‘매니아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팔로알토는 과연 <쇼미더머니>에 출연할 간판을 달 수 있었을까? 이것은 신의와 존중의 문제다. 


 자신이 외친 선언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는다. 합리적 해명 대신 장르 팬들을 묘하게 갈라놓고 ‘오해’의 책임을 떠넘긴다. “우리가 그렇게 좌지우지될 사람들로 보이는가?”란 호언이 민망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신뢰란, 그 사람이 과거에 남긴 언행의 일치로써 집적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2     


사실, 팔로알토의 코멘트에도 진실은 있다. “우리의 음악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장담이 그렇다. “대기업에 투항하였으니 음악도 변할 것이다”라는 우려는 섣부르다. 그런 비난은 실제로 음악이 변질된 후에 하는 것이 공정하며, 한편으론 정세를 잘못 파악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인수의 쟁점은 하이라이트의 음악이 변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오히려 이건 부차적 쟁점에 불과하다. 정말로 파고들어야 할 건 이번 사건이 차후 언더 신 전체에 미칠 영향이다.


 CJ E&M의 하이라이트 인수는 두 개의 컨텍스트를 깔고 훑어야 한다. 하나는 이번 일이 CJ E&M의 일관된 정책 노선 위에서 이뤄진 사건이란 점이다. CJ E&M은 작년 3월 18일, 소위 ‘서브 레이블’ ‘멀티 레이블’ 체제를 선언한다. 회사 산하에 다수 레이블을 거느리며 운영하는 시스템이다. 레이블들은 자신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음반 제작에 집중하고, CJ는 배급과 투자, 마케팅을 지원사격한다. 해외에는 익히 보급된 시스템이고, 국내에도 SM과 로엔이 운영하고 있다. CJ E&M은 다양성 확보를 통한 ‘가요계 체질 개선’과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해 이런 체제를 도입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왜 하필 하이라이트였을까. 글로벌 시장 공략이란 이정표와 ‘잊지 마’란 노래의 비디오 클립으로 유튜브에서 유명세를 탄 하이라이트 소속 MC 키스에이프가 맞아 떨어진다. 하지만 “요즘 힙합이 돈이 되니까” 같은 말은 대답이 될 수 없다. 일각에서 의아해하듯, 멜론 차트에서 하이라이트의 음악은 파퓰러한 힙합이 아니다. 인지도와 상업성에서 하이라이트를 앞서는 레이블은 많다. 일리네어도 있고, 브랜뉴 뮤직도 있고, AOMG도 있다. 아니, <쇼미더머니>와 <언프리티 랩스타> 출연진 가운데도 하이라이트 뮤지션들보다 유명한 이들이 꽤 있다. CJ E&M은 하이라이트가 지닌 ‘언더그라운드’에 대한 대표성, 브랜드 파워에 배팅한 것이다.


 여기서 또 다른 컨텍스트를 읽어야 한다. 이번 합병은 여러모로 CJ E&M의 독립영화 진출정책을 떠올리게 한다. 근래 대중문화 시장의 큰 특징은 취향이 획일화하는 동시에 세분화한다는 점이다. 역대 흥행 신기록을 갈아치운 1,800만 관객 <명량>과 역시 독립영화 흥행 기록을 압도적으로 갱신한 480만 관객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공존하는 것이 단적인 예다. 자본은, 취향의 통합에 저항해 자신을 차별화하려는 작은 취향들에 주목한다. 문화적 취향 차별화의 자의식에 물든 관객들을 잡으려 한다.


 CGV는 ‘무비 꼴라주’를 개편해 ‘아트 하우스’라는 다양성 영화 상영관을 개장했다. 독립영화 제작에 투자하는 한편, 배급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제작-배급-상영의 수직 계열화가 소위 ‘인디 문화’에도 엄습했다. ‘인디’ ‘예술성’이라는 간판에서 상업적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주류 문화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CJ E&M은 아직 상업적 수요를 개척하지 않은 틈새시장을 찾았다. 한편으론, 독과점 자본 CGV가 스크린 독과점뿐 아니라 문화 다양성에도 이바지한다는 프로파간다를 구성한다. 다양성 확보를 통해 음악 시장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CJ E&M 멀티 레이블의 대의명분이 떠오르지 않는가.


 음악판도 그리 다를 것 같진 않다는 말이다. 현재 가요 차트에서 가장 트렌디하면서 여전히 소수자의 음악이라는 이미지를 지닌 장르는 단연 힙합이다. <쇼미더머니>가 크게 성공하며 힙합 청취 수요도 그만큼 늘었다. ‘발라드 힙합’과 조금 다른, 제대로 된 힙합을 듣고 싶다는 수요도 충분히 있을 것이다. CJ E&M은 하이라이트에게 상업적 음악을 주문할 이유가 없다. CJ E&M 서브 레이블은 7개 정도인데, 면면을 보면 제법 다양하게 역할을 분담한다. 남자 솔로 가수로 구성된 레이블, 여자 솔로 가수로 구성된 레이블, 김동률·성시경·박효신 같은 싱어송라이터·보컬리스트가 소속된 젤리피쉬도 포진해 있다. 라이브 공연을 타겟으로 활동하는 1877이란 레이블도 있다. 작년 9월에는 10여 년간 ‘인디 신’에서 활동한 ‘라이너스의 담요’와 전속 계약을 체결했다.


 이 말은, 과포화한 가요시장에서 각각의 틈새시장을 공략해 수익 루트를 다각화하겠단 뜻이다. 그리고 독과점 자본 안에 ‘문화적 다양성’을 전시하며 어떤 헤게모니를 구축하는 것이다. 산하 레이블 아티스트들에게 상업성이란 획일적 잣대를 요구할 이유가 없다. 그러려면 더 파퓰러한 레이블과 손을 잡았을 것이다. 그저 하이라이트는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하면 된다. 그것이 하이라이트의 경쟁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길일뿐더러, 언더 힙합 팬들과 언더 힙합에 흥미를 느끼는 가요 팬들을 잡을 수 있다. “우리가 아닌 것을 하면 그들에게도 메리트가 없다”라는 팔로알토의 말은 이런 행간을 집약한다. 정확히 표현하면, CJ E&M이 원하는 것은 하이라이트의 음악적 재능에 머물지 않는다. 그들이 품은 ‘언더 힙합 신’의 현행적·잠재적 수요다.


 문제는, 이런 시도가 자본에 대한 독립 문화의 종속을 심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CGV 아트 하우스가 출범한 이래 독립 영화계 근황을 보면 알 수 있다. 막강한 자본력과 배급력을 앞세워 독립영화를 하나의 플랫폼에 흡수하려 하는데, 독립영화 생태계엔 지각변동으로 작용할 것이다. 아트하우스의 등장과 함께 해외 예술영화 배급사들이 타격을 입었다는 증언이 있다. 개별 작품들 상업적 흥망을 아트 하우스의 간택이 좌우한다. 그런데도 CGV는 <무뢰한> <차이나타운> 같은 20억짜리 ‘저예산 영화’(‘아트-버스터’란 신조어가 생긴)에 아트하우스 상영관을 배정하며 관객을 긁어모았다. 다른 배급사 영화들이 아트하우스에서 상영될 기회는 그만큼 줄어든다. 독립영화가 설 자리는 여전히 비좁다. 독립영화의 (잠재적)관객 수요는 아트하우스가 흡입한다. 이제 두 개의 독립 영화계가 생겼다. 아트 하우스 안의 독립영화와 아트 하우스 밖의 독립영화.


 이 점을 CJ E&M의 하이라이트 인수에 비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하이라이트는 (인수 보도 자료에 소개 문구로 인용되었듯)‘언더그라운드 발전에 힘쓴 레이블’, ‘정통 힙합 레이블’로 포지셔닝할 것이다. 대중이 찾기 쉬운 곳에 하이라이트라는 ‘언더그라운드의 표상’이 걸린다면, <쇼미더머니> 이후 말라가는 언더그라운드 신으로 유입하는 수요도 차단·흡입될 수 있다. 하이라이트가 성공을 거둔다면 나머지 언더 MC들도 자본의 은총을 갈구할 것이다. 원한다고 다 받아 줄 리는 없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언더 힙합은 하이라이트로 표상되는 언더와 실재하는 언더, CJ가 관할하는 언더와 그 바깥의 언더로 분할될지 모른다. 둘은, 잠재적 수요를 공유하기에 경쟁 관계에 놓일 것이다. 과연 승자는 누가 될까?


 CJ E&M이 <쇼미더머니>를 만든 Mnet의 모회사라는 점을 떠올리면 더욱 흥미로운 결론이 그려진다. 힙합의 대중화를 지지하는 이들이 <쇼미더머니>에 찬성하며 치켜든 것은 힙합이 매체에서 성공해야 낙수효과로 언더 신의 파이도 커진다, 라는 논리였다. <쇼미더머니>는 분명 힙합 시장을 키웠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 파이는 언더 신으로 환원되는 게 아니라, CJ E&M이 하이라이트 영입을 통해 회수하려 하는 형국이다.   

  

하이라이트의 상업적 결단이 나쁘다고만 할 순 없다. 공정하게 평가하면, 하이라이트는 자존심을 팔고 <쇼미더머니>에 나와 재주를 넘던 MC들과 달리, 나름의 자긍심을 지키는 모양새로 자본과 악수했다. 산이·버벌진트의 ‘발라드 힙합’과 결이 다른 음악을 선보인다면, 장르의 본령에 충실한 힙합이 대중 취향과 만날 수 있다. 좋은 일이다.


 다만, 그 대가로 잃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자는 거다. <쇼미더머니>의 가장 나쁜 점은, 대중에게 힙합을 오도한다는 것도 있겠지만, 언더 MC들에게 차트 성공의 단맛을 보여준 후 자발적 투항을 끌어내며 언더 신을 형해화하는 것이다. CJ E&M의 하이라이트 인수도 같은 종점에 도착할 수 있다. 지금 언더그라운드라는 생태계는 어떤 의미에서건 파괴와 재편의 격류 속에 있다. 이번 인수는 주목할 가치가 분명한, 언더그라운드의 미래를 예견하는 상징적 사건이다. (201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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