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논란' 이후 르세라핌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할까
하이브가 제작한 첫 걸그룹 르세라핌은 지난달 2일 데뷔해 활동을 마무리하고 있다. 최근 데뷔한 걸그룹 중 드물게 음원 차트에서 선전하고 있고, 초동 음판 30만 장을 기록하며 역대 걸그룹 데뷔 신기록을 썼다.
성공적인 출발이지만 고초도 겪었다. 멤버 김가람의 학교 폭력 논란이다. 하이브는 홍역을 치른 후에 르세라핌을 “당분간” 5인 체제로 운영할 것이라 고지했고 그렇게 하고 있다. 해당 논란은 기사와 여론으로 무수하게 언급되었고 숱한 비난이 쏟아졌다. 여기서는 뒤늦게 도덕적 판단을 내리기보다, 하이브가 논란에 대응해 온 방식을 검토하려 한다. 나아가서 ‘김가람 논란 이후의 르세라핌’이 어떤 길로 나아가는 것이 합리적 일지 짚어 보자.
잘라 말해서, 하이브의 대응 방식에 큰 문제가 있었다는 건 명확하다. 시총 10조 규모의 국내 1위 엔터 기업이란 간판이 당혹스러울 만큼 그들의 위기관리는 둔하고 느리고 엉성했다.
김가람이 학교 폭력을 저질렀다는 폭로는 김가람이 멤버로 공개된 4월 5일 자정 이후 당일 오후에 제기되었다. 하이브의 입장문은 다음 날 6일에 게시되었으니 시기상 초동 대응이 늦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하루 사이에 폭로는 무시무시한 기세로 퍼져 나갔다. 김가람이 아이브 데뷔조였다 퇴출을 당했다는 주장과 하이브의 연습생 평가 보고서처럼 보이는 문서가 유포되는 등 기본적인 정황 상 거짓임이 확실해 보이는 루머가 함께 유포됐다(김가람은 최소 1년 이상 쏘스뮤직 연습생이었던 걸로 추정돼 시기 상 아이브 데뷔조였을 수가 없다).
하이브는 6일에 발표한 입장문에서 법적 대응을 천명했다. 어조는 강경했지만, 내용은 짧고 설명이 부족했다. 김가람이 학교 폭력 가해자가 아니라 오히려 피해자였다고, 논란의 소지가 큰 주장을 했지만 그걸 뒷받침할 설명은 보이지 않았다. 여타 루머에 관해서도 사실이 아니라는 단언뿐이었다. 하이브가 차후에 나온 폭로자 측 공식 입장을 반박한 주장, “김가람은 오히려 피해자였다”는 주장을 이때부터 한 것을 볼 때, 하이브는 이 시점에서 폭로자가 누구인지와 해당 사안이 학폭위까지 열린 사안임을 파악하고 있었다. 게다가 폭로자를 대리하는 법무법인 대륜이 4월 21일 하이브 측에 내용 증명 우편을 보냈음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즉, ‘학폭’ 논란에 실체가 있음에도, 자신들이 언급한 대로 “법적” 공방을 염두에 두고 그룹 활동을 강행한 것으로 추측된다.
하이브의 의도가 무엇이었건 저 최초 입장문은 더 신중하거나 상세했어야 한다. 작년 ‘학폭 미투’가 이어진 후로 ‘학폭’은 아이돌 그룹 활동에 직격탄을 꽂는 가장 리스크 높은 이슈가 됐다. 사안의 민감성과 여론 정서를 고려한다면 좀 더 차분한 어조로 자신들이 파악한 결과 무엇이 사실이고 아닌지 설명했어야 한다. 폭로와 함께 유포된 루머에 대해서도 날조임을 상세하게 지적했다면, 르세라핌에 가해진 무분별한 말들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하이브는 6일 입장문을 낸 후에 아무런 후속 조치를 하지 않았다. 논란에 관해 비난과 추측이 사그라들지 않던 와중, 5월 19일 폭로자 측이 공식 입장을 발표하며 폭탄이 터졌다. 하이브는 그제야 장문으로 구구절절 반론을 제시했는데, 폭로자 측이 절절한 표현으로 여론에 호소한 직후라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최소한 저런 자세한 입장이 폭로자 측 입장이 발표되기 전에 나왔어야 실효가 있었을 것이다. 만약 폭로에 실체가 없었다면 강경 대응이 올바른 선택이었겠지만, 김가람이 학폭위에서 가해자로 처벌 받은 것이 밝혀진 상황을 돌아보면, 하이브의 대응은 무대책으로 보일 만큼 이해하기 힘들다.
사실,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따지는 것 자체가 공허하게 느껴진다. 정상적인 검증 시스템이 작동하는 회사라면, 학폭위까지 회부된 전력이 있는 인원은 애당초 연습생이나 데뷔조 발탁 과정에서 당연히 제외됐어야 한다. 그것이 미성년자인 해당 인원 입장에서도 여론에 과거가 오르내리며 겪을 비극을 미연에 방지하는 길이다. 결국, 김가람을 둘러싼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모든 상황이 하이브 시스템의 어떤 부분들이 작동 결함 상태임을 가리킨다.
그동안 르세라핌의 데뷔 과정을 지켜보며 몇 가지 인상을 받았다. 너무나 좋은 재료가 갖추어져 있지만 그룹 수뇌부들이 제대로 활용을 못(안) 하고 있다. 예컨대, 르세라핌은 일본 시장을 타깃으로 만든 그룹이고, 숱한 뉴스를 뿌리며 일본 시장에 대해 가장 개인 파워가 큰 여자 아이돌 사쿠라를 영입했다. 하지만 사쿠라가 그룹 간판인 듯 홍보되었지만 눈속임을 하듯 역할이 주변화 돼 있는 것이 보인다. 뜯어보면 이렇게 미심쩍고 뒤숭숭한 구석이 한 둘이 아니다.
나아가서 회사 측 준비 상태에 혼돈이 드리워져 있고 미비된 점이 너무나 많다. 데뷔 전부터 공식 계정 콘텐츠 업로드 실수가 며칠에 한 번 꼴로 터지더니 급기야 콘셉트 트레일러 공개가 5분 전에 연기되는 진귀한 사태가 벌어졌다. 아마도 이런 어처구니 없는 실수는 기존에 준비 중이던 ‘민희진 걸그룹’과 별개로 또 하나의 걸그룹을 기획하고 순서를 앞질러 데뷔시키면서 내부 인력과 자원 배분, 준비 기간에 문제가 생기며 빚어진 결과라 짐작된다. 김가람 사태 역시 이렇게 어수선한 배경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르세라핌은 데뷔 전부터 공전의 관심과 화제를 부른 한편, 데뷔 전부터 일반적인 경우라면 겪지 않을 잡음을 겪었다. 살펴본 바와 같이, 이것이 백 퍼센트 회사 측 과실과 판단 오류 때문이란 건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르세라핌은 데뷔 활동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있고 다음 스텝은 일본 현지 데뷔일 것이다. 당분간 일종의 휴지기에 들어가는 셈이다. 성공적인 데뷔 기록과 그룹의 잠재력을 살려가기 위해선 이 기간을 그룹 정비기간으로 활용해야 한다.
하이브에겐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고지된 입장대로 “당분간” 5인 체제로 활동한 후 김가람을 복귀시키는 것이다. 만에 하나 하이브 주장대로 김가람이 정말로 피해자이거나 물밑에서 폭로자 측과 합의가 된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 학교 폭력 폭로를 겪은 후 폭로자를 고소하고 활동 중인 JYP 그룹 있지 같은 유사한 선례도 있다. 현재 하이브는 물론 폭로자 측도 추가 입장을 내놓지 않고 조용한 상태다.
하지만 그걸로 여론이 납득을 하거나 비난이 해소될지는 알 수 없다. 무엇보다 팬덤 내부에서 5인 체제를 지지하는 여론이 강하단 것이 넘기 힘든 걸림돌이다. 이런 종류의 논란을 돌파하려면 그룹과 멤버를 수호하는 팬들의 지지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르세라핌은 데뷔한 지 오래돼 그룹 전체가 운명 공동체의 성격이 있는 있지와 케이스가 다르다. 아이즈원 멤버로 활동했던 사쿠라, 김채원과 신인 멤버들이 조합된 팀인데 그룹 팬 대다수가 사쿠라, 김채원의 팬이다. 이들은 하이브 입장을 믿고 비난을 버텨 오다 학폭 통보서가 공인되는 날벼락을 맞았다. 논란에 지친 상태로 자신의 멤버와 그룹 전체가 입을 피해를 걱정하고 있다. 6인 체제로 복귀한다면 논란의 꼬리표를 달고 가는 사태가 장기화될 테니 그룹의 확장성이 닫히고 생명력이 소모된다. 김가람 역시 외부 여론과 팬덤 모두에게 외면 받으며 활동에 적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르세라핌이 5인 체제로 전환된 후로 SNS와 커뮤니티에선 르세라핌을 비난하는 여론이 눈에 띄게 사라졌다. 5인 무대에 대한 호평도 자주 보인다. 어떤 길을 택하는 것이 외부 여론과 팬덤의 요구, 회사 이익, 그룹의 장래성, 멤버들의 활동에 도움이 될지 투명하다. 한 가지 불투명한 것이 있다면, 앞서 길게 서술한 대로 지금 이 사태를 부른 하이브 측이 내릴 판단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