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 (최규석, 2013~)
최규석의 '노동 웹툰' <송곳>의 목표는 도덕주의에 기반한 시혜적 연대의 환상을 깨는 것이다. 약자가 순결하고 정의롭기 때문에 연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연민은 약자일수록 비루할 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 연대로 승화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가. 최규석은 마지막 회에서 이수인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저는 사람에게 실망하지 않습니다."
과연 먹먹한 울림을 자아내는 명대사다. 그러나 이 울림은 웹툰의 주제의식의 틈새로 새어 나간다. <송곳>은 이념적 가치에 대한 유아적 낭만 - 가령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 같은 - 을 벗고 가치중립적 시야로 가치를 지향할 것을 권한다. 헌데 그 과정을 체현해가는 이수인에 대한 묘사 만은 사뭇 낭만적이다. 속되고 누추한 군상들 속에서 그를 꼿꼿이 직시하며 자리를 지킬 수 있다면 그는 고결한 인물일 것이다. 사람의 본성에 대한 어떠한 실망도 없이 그 사람의 편에 설 수 있는가? 모니터 밖에서 <송곳>의 세계를 지켜보는 독자들은 그럴 수도 있다. 그런 감상의 경험을 통해 사회적 약자 프레임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리멸렬하고 사분오열하는 조합원과 땀내나는 살갖을 비비며 그런 깨달음을 실천하기란, 보통 사람 대부분에게 불가능할 것이다. 그 불가능한 덕성을 관철하는 이수인의 성장은 그 자체로 한편의 영웅서사다.
<송곳>은 또 다른 초인의 성장서사다. <송곳>을 보는 가장 큰 재미는 유약하고 순진한 엘리트 소시민이 현명하고 노회하면서 냉철하고 굳건한 강철의 인격으로 제련되어 가는 걸 지켜보는 데 있다(섬세하고 우울한 외모의 이수인은 흡사 7,80년대 공장에 투신한 운동권 대학생처럼 보인다). 최규석은 네이버 웹툰이란 지면 성격을 고려하여 대중 취향과 협상하며 통속적 서사 구조를 차용한 것 같다. 문제는 이수인의 비범함이 커질수록 이수인으로 말하려는 '가치'는 후퇴하고 '캐릭터'가 우세해진다는 것이다. <송곳> 네이버 베스트 댓글란을 보면, "이수인 정말 멋지다" "이수인처럼 자기 생각을 정연하게 말하는 능력을 갖고 싶다." 같은 선망의 감탄사가 다수를 차지한다.
서사의 재미와 정치적 메세지의 삼투는 길항 관계에 있다. 1부를 통해 대중적 흥행에 성공한 지금, 2부에서 정교한 방식으로 그 길항을 조율한다면, 노동 만화란 새로운 지평을 연 <송곳>은 더 높은 성취에 다다를 것이다. (2015/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