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도 사과하지 말아야 한다

by MC 워너비

내가 아는 그는 내가 아는 그녀에게 항상 사과를 한다. 그만큼 다정하고 너그러운 사람인걸까. 그런데 그는 그녀에게 항상 잘못을 저지른다. 어젯밤 죄를 짓고 오늘 밤 참회한다. 예비동작을 취하듯 그렇게 사과를 '저지른다'.

사과가 습관이 되고 뉘우침이 만성이 되는 것은 두 가지 이유다. 잘못을 해서 사과하는 것이 아니거나, 사과가 면죄부로 전락한 것이다. 득달 같은 후회와 잘못을 범했다는 낭패감, 관계를 망가뜨렸다는 자책과 휘발적인 연민,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불안함. 새하얀 셔츠 깃의 땟국물처럼 얼룩진 자의식을 견디기가 싫은 것이다. 그 모든 불편하고 불결한 죄의식으로부터 도망치고 싶고 선량한 자의식을 건사하고 싶다. 거기엔 잘못에 대한 진지한 자각도, 진득한 성찰도, 관계에 대한 책임도, 진정한 의미의 후회도 없다. 어서 빨리 벗어던지고 싶고 그래서 후련해지고 싶다. 과거에 대한 반성이 없으므로 다음에 대한 보장도 없다. 반성을 가장한 자학과 자괴감이 밀려오면 그녀를 고해성사의 사제석에 앉히고 죄사함을 요구한다. 잘못은 반복될 것이다.

사과는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소비되어선 안된다. 내 죄에 대한 나의 죄의식은 온전히 나의 어깨에 걸머지고 그 무게를 곱씹어야 한다. 나의 죄의식마저 그/그녀에게 떠넘길 때, 사과는 폭력이다. 그것은 너를 위한 사과가 아닌 나를 위한 사과다. 미안해도 사과하지 말아야 한다.

MC 워너비 미디어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팔로워 806
작가의 이전글공인이라는 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