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킹덤>의 전장
만화 <킹덤>을 본다. 진시황이 육국六國을 일소한 중원의 전장에는 장군의 호령소리 드리운다. 만화는 인간의 역사를 상연하지 않는다. 그것은 역사의 장엄함을 가장한 스펙타클의 장엄함이다. 전장의 스펙타클은 죽음을 징병한다. 장군의 무위를 전시하기 위해, 언월도가 움직일 때 마다, 졸개들은 초개가 되어 쓸려나간다. 더 많은 피와 더 많은 불구와 더 많은 죽음. 전장의 스펙타클은 이토록 장쾌하게 울려 퍼진다.
전쟁은 인간의 역사가 될 수 없다. 전쟁은 ‘죽음’의 역사, 죽음의 스펙타클이다. 피비린내가 몸부림치는 졸개들의 전장에는, 언제나 장군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하나의 생과 하나의 생이, 서로의 죽음으로만 영예로운 전장의 동심원엔, 장군의 대성 호령이 똬리 틀고 있다. 전투와 돌격을 앞둔 사자후는 아군의 육신을 울림통삼아 죽음의 파장을 공명해낸다. 죽음에는 윤리와 가치가 없다. 죽음에는 명예도 치욕도 없다. 다시는 ‘오늘’을 어제삼아 안도할 수도 후회할 수도 없는 말소된 ‘내일’. 죽음은 질량과 부피가 없다. 죽음은 다만 내일이 ‘없는’ 무엇이다. 죽음은 끝없이 두렵고, 두렵고, 두려운 소멸이다. 전장은‘없는’ 것의 두려운 감각이 사지四肢를 배회하고 오장육부를 들쑤시는 생멸의 지옥이다.
장군의 호령소리는 죽음의 감각을 단절한다. 패배와 몰살의 그림자에 졸개들이 주춤거리는 <킹덤>의 전장에는 어김없이 장군의 호령소리 쩌렁거린다. 나라를 위해 왕을 위해, 그대들의 손으로 깃발을 움켜잡으라. 영광을 위해 승리를 위해! 그대의 발을 내딛고 진군 하여라! 웅혼한 연설의 벼락이 내리 치고,졸개들은 멎은 듯이 감전되어 갑작스레 드세고 굳은 사물로 환생한다. 충만한 사기는 죽음을 향한 사고를 강제로 종료시킨다. 용맹한 병사는 두려움을 알지 못한다. 용맹한 병사는 죽음을 사유하지 않는다. 두려움이 완전하게 소거될 때, 졸개들은 죽음을 향해 감격스레 돌진한다. 어떠한 죽음도 존재하지 않는 전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떠한 승리도 생이 아닌 죽음에 의해서만 관철된다. 전쟁은 더 많은 두려움의 마취제를 주사한 시체들이 살아남는 들큼한 마비의 내림굿이다. 주사바늘 구멍 흉흉히 뚫린 전장의 벌판에는 죽음의 악창이 고름을 쏟아내고 있다.
다시 만화 <킹덤>을 본다. 진왕 정의 일성一聲이 지상에 강림하사, 최의 주민들은 결연히 떨쳐 일어선다. 성은에 감복한 졸개들이 울고, 두려움을 모르는 죽음의 함성들이 상공을 뒤흔든다. <킹덤>의 전장에는 장군의 호령소리 오늘도 높이 드리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