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케이팝 업계의 트렌드는 보이그룹이 ‘대중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원래 보이그룹은 팬덤만 알고 팬덤이 아니면 모르는 존재다. 대중성 마케팅이 아니라 팬덤 마케팅에 특화돼 있다. 이제는 케이팝에서 가장 큰 팬덤을 가진 그룹 중 하나인 세븐틴은 물론 라이즈, 투어스 같은 신인 그룹 등 다수의 보이그룹이 그 공식에서 벗어나려 한다.
이들의 대중화 전략은 두 가지 방향으로 수행된다. 음악과 미디어 출연이다. 소위 ‘이지 리스닝’ 계열의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노래는 걸그룹 뿐 아니라 보이그룹 신에서도 대세가 됐다. 보이 그룹 노래들은 특유의 강한 무대 퍼포먼스를 받쳐 주기 위해 박자감이 강하고 편곡이 타이트했지만 흥겹고 감성적인 멜로디에 완만한 편곡으로 바뀌었다. 이지 리스닝은 국내는 물론 해외 차트에서도 선호되는 추세다. 걸그룹과 보이그룹을 막론하고 케이팝 기획사들이 앞 다투어 음악 프로듀싱 노선을 바꾼 것은 이지 리스닝 음원이 국내 대중성과 해외 팬덤 시장을 한 줄로 꿰어 공략하는 창대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한편, 보이그룹들은 숏폼 콘텐츠와 유튜브 영상을 넘어 공중파와 메이저 케이블 채널 등 제도권 미디어에 출연하고 보편적 인지도를 가진 브랜드 제품 광고를 맡기 시작했다. 세븐틴은 나영석 사단과 <나나투어>를 제작했고, 투어스는 밀키스 광고 모델을 맡았다.
SM 엔터의 라이즈는 데뷔 단계에서부터 ‘대중성 있는 보이그룹’이 기획 목표였던 것으로 보인다. 복고 콘셉트 Y2K를 차용하며 다양한 세대를 포섭하려 하고, 아예 00년대 히트곡 ‘응급실’을 샘플링해서 ‘LOVE 119’를 만들었다. 이들은 올해 가장 지명도가 높은 예능 방송에 속하는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했고 최근엔 우리은행 광고 모델 중 하나로 발탁됐다. 라이즈의 행보는 앞서 데뷔해 걸그룹의 아이콘이 된 뉴진스의 기획을 모든 면에서 참고하고 따라간 것처럼 보인다. 현재까지만 보다면 라이즈의 대중화 행군은 고지를 밟아 나가는 것 같다.
하지만 그건 세일즈 결과일 뿐이다. 대중적 세일즈 모델을 추구하고 일부 성과를 거두는 것과 실제로 대중적인 존재란 것은 뜻이 다르다. 후자는 성별연령세대 구분 없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고 있고 이야기하느냐의 문제다. 지금처럼 사회 계층과 미디어의 단절 및 파편화 현상이 심화된 사회라면 둘은 더더욱 다른 문제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중성을 확인하고 측정할 수 있을까. 항간에는 브랜드 평가, 화제성 순위 같은 ‘대중성 지표’가 통용되고 있지만 제대로 된 자료라고 할 수 없다. 조사 기준이 제각각에다 내용에 일관성이 없고 조사 방식과 단체의 공신력도 확보되지 않았다. 오늘날 대중성을 둘러싼 가장 큰 맹점과 역설이 이것이다. 대중성 세일즈는 이뤄지고 있는데 대중성의 실체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제 예전 같은 방식의 대중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상식이 됐다. 다들 미디어의 원룸에 들어 가 유튜브와 숏폼 콘텐츠를 보고 있다. 더 이상 자신이 군중의 일원이 아니라 고립된 개인에 불과하단 사실을 체감한다. 과거에는 매스 미디어가 대중이 모이는 광장 역할을 했다면, 지금은 하나의 콘텐츠나 뉴스가 수백수천만 개의 스마트폰을 휩쓸고 지나가며 그것들을 서로 연결해야 공통의 인지와 감각이 형성된다. 그걸 미디어 내부에서 연결하는 메커니즘이 바로 알고리즘이고 외부에서 연결하는 작업이 바이럴 마케팅이다.
과감하게 말한다면, 지금 시대에 대중성이란 개념은 인터넷 아이디 수십 수백 개가 어떤 인물이나 현상이 흥했다, 망했다를 입을 모아 반복해서 떠들면 정설처럼 통하게 되는 분위기, 그러므로 그 아이디들이 유지하고 관리할 수도 있는 정도의 현상이다. 멜론 차트가 대중성의 척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멜론 자체가 더 이상 대중적 매체가 아니란 사실은 생각하지 못하는 건지 궁금하다. 라이즈, 투어스, 세븐틴, 투바투가 음원 차트에서 선전하는 현상이 실제로 보이그룹이 대중성을 얻는 결과로 이어졌는지는 아직은 말하기 힘들다.
세븐틴은 ‘파이팅 해야지’부터 ‘음악의 신’까지 노래와 챌린지 안무가 잇달아 흥행한 후 TVN 단독 예능 <나나투어>에 출연했지만, 불과 1~2% 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신효정 PD는 방송 이후 위버스를 통해 감독 판을 보려는 신규 팬 층이 유입했다고 성과를 소개하며 그것에 가장 큰 의미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일련의 대중화 행보의 대미를 장식하듯 야심차게 메이저 방송 예능을 제작했지만 대중 시청자가 아닌 또 다른 아이돌 팬덤이 팬 커뮤니티를 통해 유입하는 결과로 이어졌을 뿐이다. 이 아이러니야 말로 오늘날 대중성 마케팅의 허와 실을 비춘다.
대중성이란 개념이 유효하던 끝자락 시절, 2010년대 중후반에는 팬덤 산업의 골짜기에 자진해서 고립된 보이그룹들이 왜 대중성이 화석이 된 지금에 와서야 밝은 세상으로 나오려는 걸까. 앞서 말했듯 대중성 세일즈의 동기는 존재하는데 대중성의 실체는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 아닐까. 대중성의 실체는 불투명하지만 대중성을 참칭 하는 마케팅은 돈이 된다. 실체가 불투명하다는 건 마치 실체가 있는 것처럼 대중성을 임의로 연출하고 활용할 여지가 커졌다는 뜻이다.
지난 2월에는 <나나투어> 시청률 저조 뉴스가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문득 조선비즈에서 ‘세븐틴 ‘나나투어’ 시청률 1위… 하이브, 예능 실험 통했다’라는 기사가 나왔다. 제목부터 <나나투어> 흥행 성패에 관한 사실이 완전히 반대로 서술돼 있었다. 둘 중 어떤 기사가 SNS와 커뮤니티를 더 많이 도배하느냐에 따라 <나나투어>는, 아니 보이그룹의 대중화 전략은 실패한 것이 될 수도 있고 성공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