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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Apr 19. 2024

코첼라에서 맞이 한 성장

미야와키 사쿠라

미야와키 사쿠라를 수식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성장’이다. 사쿠라는 일본 아이돌 HKT48 출신이다. 케이팝에 대비되는 48그룹의 이미지는 백지장처럼 데뷔해 팬들이 보는 앞에서 자라나는 ‘성장형 아이돌’이다. 한편으론 케이팝에 비해 부족하다고 평가받는 그들의 춤과 노래 때문에 ‘성장형 아이돌’은 준비가 되지 않은 채 활동하는 것을 합리화하는 말이라고 비판당하기도 한다.  

    

사쿠라와 성장을 연결 짓는 이야기들은 좋은 경우 사쿠라가 어제보다 나아지기 위해 노력을 한다는 호평일 수도 있지만, 나쁜 경우엔 노력과 상관없이 그가 이미 지니고 있는 역량을 간과하게 한다. 아이돌의 정체성을 가수라고 본다면 사쿠라는 실력이 부족하다. 하지만 아이돌의 실력은 다양하다. 그들은 무대 위 퍼포머이고 팬들의 우상이다. 춤과 노래를 부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춤과 노래를 통해 자신을 연출하는 것이 목적이다. 무대와 방송, 행사와 화보에서 현장의 공기와 카메라를 통해 사람들을 사로잡는 존재감, 흔히들 ‘스타성’이라 부르는 자질이 아이돌의 달란트다. 이 점이 춤과 노래를 훨씬 잘하는 댄서와 보컬리스트에 대해 아이돌이 가질 수 있는 존재 가치다. 사쿠라는 많은 경험을 통해 이 능력치가 단련된 아이돌이며 자기 연출의 센스를 타고났다는 인상을 준다. 댄스 역시 큰 폭으로 향상 됐는데, 카메라와 군중의 속성을 이해한 채 춤과 표정 연기를 보여 주고 매혹을 자아내는 일에 능숙하다. 그러니까, 사쿠라는 그냥 '무대'를 잘한다.

    

성장 혹은 노력이라는 단어는 사쿠라에 관한 또 다른 이미지 ‘경력직’과 만나서 부정적 프레임이 된다. 데뷔를 언제 했는데 아직도 노력만 하냐는 투의 말들이다. 사쿠라의 노래 솜씨를 두고 데뷔 13년 차라면서 그것밖에 안 되냐고 힐난하는 이들이 있다. 노래는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 소리를 내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몸속 구조와 근육, 공기를 이용하는 추상적이고 본능적인 작업이라 타고 난 음감과 발성 기관에 좌우된다. 춤은 연습한 만큼 늘어도 노래는 한계가 있다. 역대 케이팝 아이돌을 봐도 노래를 못하던 이가 잘하게 된 경우는 찾기 힘들다. 그래서 케이팝은 보컬 담당과 댄스 담당, 비주얼 담당 등 각자 장기가 다른 멤버들의 분업 체계로 발전해 왔다.


사쿠라의 13년 중 7년은 HKT48에서 활동한 시간이다. 48그룹 아이돌은 트레이닝 시스템이 없다. <프로듀스 48>에 출연한 뒤 곧장 아이즈원으로 데뷔해 3년을 보냈다. 연습생 신분으로 트레이닝 시스템 안에 소속된 건 2년 반 전 하이브에 들어 갔을 때가 처음이다. 데뷔 준비 기간이 짧아 트레이닝만 받을 수도 없었다. ‘13년 차 아이돌’ 같은 말은 손쉽게 찍는 낙인이 되지만, 사쿠라는 일반적인 케이팝 아이돌과 전혀 다른 이력을 거쳐 왔다는 걸 생각해야 한다.


저런 프레임이 생긴 건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 르세라핌 데뷔와 함께 사쿠라는 세 번의 데뷔, ‘경력직 아이돌’ 같은 캐릭터로 반복해서 소개됐다. 그것 말고는 다른 캐릭터가 주어지지 않았다. 데뷔 준비 과정을 담은 르세라핌 다큐에선 부족한 노래 실력이 부각되었다. 사쿠라의 가창력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의아한 연출이다. 소속 가수의 단점을 굳이 스스로 밝힐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가 나를 대하는 대로 나를 대한다. 최근엔 김세정이 어느 오디션 프로에서 한 말, ‘아이돌이 실력이 좋을 필요는 없지만, 실력이 부족한 걸 들켜서는 안 된다’가 인용되며 호응을 얻고 있다. 생각을 구체적으로 해 보자. 아이돌 본인이 무대 현장에서 실력을 감출 방법 같은 건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저 말은 소속사의 프로듀싱과 매니지먼트 차원에서 실천되는 수밖에 없다. 각자 실력에 맞는 정도의 파트를 주고 실력이 없어도 드러 내지 않거나 역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을 만큼 대부분의 기획사가 그렇게 하고 있다. 하지만, 사쿠라의 경우 “들키지 않아야”하는 약점이 세상에 공표되고 밑 줄이 그인 채 다시 데뷔했다. 그 결과 ‘13년째 성장하지 않는 아이돌’이란 주홍 글씨가 써졌다.      


사실, 저 주홍 글씨는 상황에 따라 유용하다. 멤버 하나가 ‘탱커’ 역할, 천만 영화 <파묘>처럼 말하자면 대살 굿의 제물이 되어 그룹에 관한 부정적 이미지를 대신 받아 낼 수 있으니 말이다. 르세라핌은 사쿠라 외에도 ‘경력직’ 멤버가 있고 전체적으로 나이가 많은 그룹이지만, 그것들이 사쿠라 혼자 만의 고유 특성처럼 치환됐다. 노래 실력 역시, 사쿠라가 눈에 잘 보이는 비판의 과녁이 되며 다른 멤버들의 실력에 대한 의문의 시선을 차단해 주었다. 르세라핌이 겪은 앵콜 사태와 최근 코첼라 라이브 논란은 ‘사쿠라 대 나머지’의 문제 분리 전략으로도 숨기지 못한, 혹은 그 구도가 더 이상 유효하게 작동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나온 결과다.     


사쿠라는 확실히 논란이 된 몇 번의 앵콜에서 노래를 잘 부르지 못했다. 사실만 놓고 보면 혹평하는 사람들이 틀렸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코첼라 무대에선 이전보다 나아진 모습으로 돌아온 것도 사실이다. 목소리에 힘이 붙었고, 대부분의 파트에서 음정과 발성이 흔들리지 않았다. 실제로, 해외 트위터에선 코첼라 공연의 주된 후기 중 하나가 사쿠라의 보컬이 향상 됐다는 칭찬이었다. “sakura was lowkey the 3rd best singer tonight”이란 트윗에 만 개 가량의 ‘좋아요’가 찍혔다. 이 정황들은 사쿠라가 비난을 받은 이후 기울인 노력을 암시한다. 그럼에도 이전과 똑같은 레퍼토리로 비하하는 말이 많은 건 한번 고착된 프레임, 편견의 완강한 관성을 알려준다. 그가 코첼라 논란에 관해 소감을 올렸다가 비난에 집중 포격 당한 일은 그래서 안타깝다. 사쿠라가 그룹 앞에 서서 모든 화살을 받아 내는 구도가 다시 한 번 재연되고 말았다. 그의 심경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이돌로서 많은 일을 겪은 사쿠라가 그런 결과가 나올 걸 몰랐을 것 같지는 않다.


사쿠라는 여전히 노래가 장점인 아이돌이 아니다. 그 정도 나아진 것으론 부족하거나 나아진 것을 모르겠다고 말할 사람들도 있을 거다. 하지만,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주목하고 인정하는 목소리도 들려야 한다. 르세라핌 멤버들은 도덕적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니다. 무언가를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로 비난받는 상황인데, 그렇다면 애정 어린 비판과 작은 발전도 발전이라고 인정하는 격려도 나와야 한다. 그것이 공정하고 건강한 평가라고 생각한다.      


아이돌의 정체성이 노래를 넘어선 다양한 부분에 있다는 명제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노래를 부르는 사람인 이상 가창력이 요구된다는 명제도 설득력이 있다. 이 두 가지 명제의 종합으로 나오는 결론은 “모든 아이돌이 노래를 잘할 필요는 없지만, 자기가 맡은 파트는 무리 없이 부를 수 있어야 한다”이다. 코첼라는 아이돌 미야와키 사쿠라가 그 명제를 충족해 낸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그걸 '성장'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일요일에는 르세라핌의 두 번째 코첼라 무대가 있다. 이번엔 어떤 무대를 치를지, 또 어떤 말이 나올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사쿠라의 첫 번째 코첼라를 이렇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그가 알게 되고 기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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