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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Jul 19. 2024

악플의 둥지가 된 '인싸'의 성지

인스타그램은 왜 악플의 핫 플레이스가 되었나

지금 대한민국에서 악플의 핫 플레이스는 인스타그램이다. 구설수에 오른 유명인들 인스타 계정으로 가보자. 악의에 점거당한 댓글 창이 보일 것이다. 인스타 릴스 영상 역시 악플의 농도가 짙다. 이슈에 따른 단발성 현상에 그치지 않는다. 한 번 여론에 찍힌 유명인의 계정엔 악플러들이 돗자리를 깔고 드러눕는다. 아무 상관도 없는 일상 포스트에 지난 일을 들먹이며 어금니를 박고 물고 늘어지는 댓글이 ‘좋아요’ 수천 개를 얻는다. 최근 사례만 해도 이렇다. 류준열과 한소희, 혜리의 3자 관계가 논란이 됐을 때 메뚜기 떼가 한소희를 휩쓸고 갔고, 뉴진스 민지가 칼국수 발언으로 몽둥이찜질을 당했고, 르세라핌과 아일릿은 코첼라 무대와 하이브 내전 이후 사격 연습 표지판이 된 신세다. 얼마나 심각한 지경이냐면 르세라핌은 멤버들 개인 인스타 댓글 창을 얼려 버린 지 한 달이 넘었다.        


질문을 던져 보자. 악플은 나쁘다. 그건 하나마나한 소리다. 내가 궁금한 건 왜 '인싸'의 성지로 불리는 인스타가 '아싸'들이나 쓰는 악플의 본거지가 됐냐는 거다. 촉이 무딘 사람이 아니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아이러니 아닌가? 인스타는 예쁘고 잘 난 사람들이 번쩍이는 일상의 쇼윈도로 쓰는 SNS로 통한다. 오죽하면 스마트폰 시대에 보통 사람들의 박탈감을 뜻하는 대명사로 쓰일까. 딘이 부른 ‘인스타그램’이란 노래도 있지 않은가. 반면 악플은 일베와 디씨, 네이트 판 같은 인터넷 게토에서 인생이 망한 자들이 행복한 사람을 향해 악다구니를 쓰는 짓거리로 통한다.     


이런 상징체계가 뒤집어진 건 쇼츠 영상의 등장 때문인 것 같다. 인스타는 자랑할 거리가 있는 소수가 포스트를 쓰고 대다수는 ‘인싸’의 삶을 관람하는 비용으로 팔로우와 좋아요를 지불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아싸’들이 마른침을 삼키며 미남미녀들을 구경하는 것과 별개로 자신들이 참여할 수 있는 콘텐츠를 가지게 됐다. 인스타 릴스 영상이다. 인스타는 단순 SNS에서, 틱톡 같은 숏폼 콘텐츠 플랫폼의 성격이 추가 됐다. 쇼츠 영상은 인격과 현상을 파편화한다. 전체 영상 중 자극적인 장면이 수십 초 동안의 찰나로 발라내어진다. 이용자들은 디지털 문해력은 물론 영상을 보는 몇 분의 시간을 버텨내는 인내심조차 발휘할 필요가 없다. 수동적이고 말초적인 자세로 손가락을 아래위로 놀려 그 짧은 영상조차 마구 넘겨 버린다.      


릴스 영상에 댓글을 쓰면 다른 이용자들이 반응하며 '알림'이 울리고, 악성 댓글을 쓸수록 더 많은 '알림'이 울린다. 스마트 폰이 쉬지 않고 보채며 소리를 낸다. 원래는 인스타에서 활동할 콘텐츠가 없는 사람들이 '인싸'가 된 기분에 취할 수 있다. 포털 사이트와 커뮤니티, 유튜브와 트위터도 아닌 인스타그램이다. 내가 범접할 수 없던 그들만의 런웨이에 서 보며 관객의 시선을 받는 기분은 짜릿하다.    

  

알고리즘은 사태를 악화한다. 악플을 달면 사용자 성향이 구성돼서 같은 종류의 영상이 계속 릴스 창에 뜬다. 원래는 악플을 다는 것도 정력이 필요한 행위였다. 뉴스 창이든, 남의 SNS 계정이든, 커뮤니티 베스트 게시판이든 어딘가를 찾아다녀야 하고, 이슈를 훑고 게시물 제목이라도 읽는 성의가 있어야 말을 얹을 수 있다. 릴스 창에선 손가락만 놀리면 온갖 영상이 뜬다. 맥락을 읽을 필요도 없는 콘텐츠의 파편들이다. 많은 사람이 악플을 달아서 조회수와 좋아요, 댓글 수가 늘어날수록 유통성이 강화돼 더 많은 사람에게 악플이 퍼진다. 예전엔 악플러를 들쥐 떼에 비유하는 수사가 일반적이었지만, 그런 비유는 더는 적절하지 않다. 그들은 이슈를 쫓아 몰려다니는 레밍이 아니다. 악어처럼 입을 벌리고 가만히 누워 있으면 먹잇감이 하늘에서 굴러 떨어진다.      


쇼츠는 인스타뿐 아니라 페이스북, 유튜브, 틱톡에서도 제공된다. 인스타의 차별 점은 유명인들의 본진이라는 사실이다. 여타 SNS 스타들이 크리에이터나 저명인사요, 그들이 제공하는 콘텐츠가 소비 대상이라면, 인스타에선 유명인의 가공된 존재 자체가 소비된다. 유명인 계정에서 올라온 쇼츠 영상이 릴스에 뜨고, 거기 표시된 이름을 찍으면 인스타 계정으로 단 번에 건너갈 수 있다. 쇼츠에 달았던 악플을 포스트에도 단다. 사람을 직접 매질하는 손 맛을 찰지게 맛볼 수 있다. 몇 년 전 포털 사이트 연예 뉴스 댓글 창이 폐쇄 됐을 때부터 악플이 유명인들 인스타 계정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유명인의 숫자가 대폭 늘어나고, 인스타의 사용 회로가 구조 조정 되면서 사태는 썩어 문드러졌다. 한 번 사람들에게 찍히면 비난의 연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슈와 알고리즘의 흐름에 따라 악플의 대상은 끝없이 연쇄된다.      


오직 인스타가 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각각의 사이트는 각각의 양상으로 악성 게시물의 생태계를 품고 있고 그것들을 아우르는 공통된 성격이 있다. 그냥 요즘엔 사람들이 이렇다 할 증오심도 없이 유명인을 파블로프의 개처럼 물어뜯는다는 인상이 든다. 포털 사이트 시대엔 네티즌의 공분을 일으키는 사건이 터지면 특정 인물을 향해 거국적 돌팔매질이 쏟아졌고, SNS가 나타난 초기에는 정치적·이념적 목적을 위해 악플이 동원되고 합리화됐다. 지금은 어떤 차원의 사회심리학적 분석조차 필요가 없을 만큼 악플을 쓰는 것이 의미 값없는 반복 행위가 된 것 같다.

눈을 뜨면 스마트 폰을 찾고 무표정한 얼굴로 쇼츠를 넘기며 댓글을 쓰고 남의 댓글에 좋아요를 찍는다. 잠들기 전까지 틈만 나면 그런다. 악플의 일상화도 아니고 악플의 일상적 루틴화라 부를 만한 현상이 자리 잡았다고 할까. 이 현상을 유발하고 대표하는 환경이 유명인+숏폼+알고리즘이 조합된 인스타라는 얘기다. 인스타 악플을 살펴보면 유독 밑도 끝도 없다는 인상이 든다. 유튜브 댓글이 콘텐츠 성격에 반응하며 서로 재치를 뽐내는 성격이 있고, 커뮤니티에선 베스트 댓글을 먹기 위한 목적의식이 느껴진다면, 인스타엔 아귀도 맞지 않고 큰 내용도 없이 악의를 게시하는 댓글이 늘어서 있다. 이런 맥락 없음과 기계적 성격이 악플 쓰기의 루틴화를 나타내는 증상으로 보인다.        


알고리즘이 잘못된 방향으로 강화돼 버리면 오염된 이미지를 씻어내는 것이 정말로 힘들어졌다. 유명인을 추종하는 팬덤 문화가 강한 분야일수록 이 경향은 예사롭지 않다. 과열된 팬덤 경쟁 속에, 적대하는 유명인이 악재의 구덩이에 빠지길 물 떠놓고 빌고, 하늘이 액운을 점지해 주면 삽을 들고 흙을 퍼서 냉큼 묻어 버린다. 케이팝 팬들은 말한다. “인스타 댓글을 보면 요즘엔 ‘머글’(일반인)들이 더 독하게 팬다”. 스스로 알고 있겠지만, 그건 일반인 같은 것이 아니다. 그 말을 하는 자신들이 정력을 발휘해 인터넷 각지에 이슈를 퍼트리고 판을 깔면 비아이돌 팬덤의 릴스 창에 관련 이슈가 뜬다. 거기엔 ‘이 바닥에 관심 없는 대중(머글)들조차 탄식하게 만드는 심각한 잘못’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싸'란 단어로 상징되는 정상성의 이미지를 품은 인스타그램이 그런 식으로 여론전을 하기에 최적의 무대일지라도 말이다. 욕구의 결핍과 충족을 쫓는 자기 폐쇄적 루틴에 갇혀 알림을 먹고 악플을 배설하는 도파민 시대의 동물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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