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데스노트> (오바 츠쿠미/오바타 타케시, 2003~2006)
오바 츠쿠미와 오바타 타케시의 만화 <데스노트>는 살인 노트를 쥔 키라와 명탐정 L, 그리고 그 후예들의 대결을 다룬다. 키라, 그러니까 주인공 라이토는, 범죄자들을 노트에 기입하며 자신의 손으로 세계를 정화하겠다는 야심을 꿈꾼다. 그러나 이것은 플롯을 궤도에 올리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 만화는 죄의 경중에 따라 악을 구축하기 위해 고심하는 키라의 모습 같은 것을 그리지 않는다. 세계의 범죄율이 70% 축소되고, 키라의 세계관에 시민들이 승복하는 상황은 플롯의 결과가 아니라 플롯의 배경으로 어느 순간 제시될 따름이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자신을 쫓는 호적수를 패퇴시키려 라이토가 치밀하게 악행을 설계하는 장면으로 채워져 있다. 수단과 방법을 불문하는 첨예한 지능전과 심리전이 바로 <데스노트>의 묘미다.
그렇다면 라이토는 어떤 인물인가. 그는 도덕적 사명감이 아닌 팽팽한 에고에 불타는 인물이고, 사상적 면모가 아닌 비범한 역량으로 독자를 매혹하는 인물이다. 라이토는 거의 완벽하다. 우연히 얻게 된 살인노트의 중압감에 짓눌리지 않고, 신세계의 신으로 군림하겠다는 창대한 구상을 단번에 세우는 정신력을 갖고 있다. 전국 1등 수험생의 위엄에다, 어떠한 난관에 봉착해도 불과 몇 초 사이 무수한 경우의 수를 연산하는 초인적 두뇌를 자랑한다. 그렇게 얻은 정답을 정확하게 구현하는 실행력과 본심을 숨기고 자유자재로 사람들을 조종하는 경이로운 소셜 스킬의 보유자다. 그는 외모마저 완벽하고, 여자들의 마음을 호리는 건 팔다리의 박자를 맞춰서 걷는 것만큼 쉬운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라이토가 지닌 유일한 단점은 죄의식과 이타심, 도덕감정의 부재다. 라이토는 거의 모든 인간적 퀄리티가 극치에 이르고 그 빼어남으로 매혹적이다. 키라의 세계관에 따라 라이토를 신세계의 신으로 호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신학적 차원의 신이 아니라 미학적 차원의 신일 것이다.
<데스노트>의 엔딩에서 라이토는 몰락한다. 키라로서 니아에게 패배하고 죽음을 맞는 결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라이토는 이야기가 클라이막스에 달할수록 사악하고 비열해진다. 급기야, 정체가 폭로되는 라스트 창고 신에서는 영민한 지혜도 냉철한 판단력도 오간 데 없다. 아무렇게나 악을 쓰며 발악하고, 억지를 쓰며 허둥대고, 정신착란 상태에서 콘크리트 바닥을 기어 다닌다. 도도한 프라이드도 부서진 채 사신 류크에게 사태를 해결해달라며 애걸한다. 오바타 타케시는 이 장면에서 핸섬하고 댄디한 라이토의 작화를 흉하고 투박한 몰골로 연출한다. 이것은 정확히 미학적 차원의 징벌이다. 윤리적 검열에 노출된 소년만화의 특성상, 아무리 주인공이라도 무수한 살생을 일삼은 악인에게 승리의 결말을 안겨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바 츠쿠미와 오바타 타케시는 라이토에게 가장 가혹한 징벌을 내렸다. 캐릭터의 목숨을 이루던 비범한 아우라와 자부심을 일거에 짓밟고 구겨트렸다. 이것은 곧 라이토에게 내릴 수 있는 최대한의 도덕적 징벌이기도 하다.
에필로그에서, 만화의 최종 컷은 이름 모를 소녀의 미디움 클로즈업 숏이다. 그녀는 키라교 신도다. 투명한 눈빛으로 하늘을 우러르며 키라의 이름을 되뇌는 그녀의 얼굴은, 아름답고 아련하며 숭고하고 순결하다. 작가들은 이 소녀의 이미지로 타락한 라이토의 이미지를 정화한다. 그것은 라이토를 사랑한 팬들에 대한 보상일 것이며, 자신이 창조하고 파멸시킨 캐릭터를 향한 애도일 것이다.
작가들은 이 세계에서 이루어져선 안 되는 라이토의 숙원을 뒤늦게 풀어주며 그의 원혼을 해원한다. 키라는 자신이 꿈 꾸던 대로 신이 되었다. 모든 꿈이 부서지고 무너진 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