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실과 괴리된 케이팝
얼마 전 일본에서 케이팝에 관한 트윗 하나가 화제가 되었다. 최근 케이팝에서 사랑 노래가 정말로 많이 줄어든 것을 보면 한국의 저출생이 심각하다는 사실이 실감 난다는 이야기였다. 특히 여성 아이돌 노래는 걸 크러시 풍의 자기 과시 가사 일색이라는 지적이다. 이 트윗은 ‘좋아요’ 10만 개가 찍혔다. 한국인들의 타임 라인에도 흘러들어와 보게 되었다. 아닌 게 아니라, 언제부턴가 케이팝에서 사랑 노래가 매연에 덮인 밤하늘의 별처럼 가물거리는 건 사실이다. 분명 생각해 볼만한 대목이지만, 이 일본인의 짐작처럼 단순하거나 거대한 이유는 아니다.
한 사회의 문화적 텍스트에는 특색이 있다. 그리고 그 사회 바깥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그를 해석하려 할 때 쉽게 빠지는 함정은 해당 지역의 잘 알려진 거시적 쟁점으로 텍스트를 환원하는 것이다. 일본 서브컬처를 보며 어떤 징후만 보여도 군국주의의 무의식이라고 진단하거나 과거 홍콩 영화의 정서를 무엇이든 중국으로의 영토 반환과 연관 짓는 식이다. 한국 문화 역시 예외가 아닐 것이다. 현재 케이컬처는 말 그대로 글로벌 문화가 되었으므로 그런 해석학적 관성에 소환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크다. 외부에 유명한 사회 현실 중 하나가 하락한 출생률이 되었다는 사실이 씁쓸하지만 말이다.
먼저 사실 관계를 좀 더 면밀히 확인해 보자. 케이팝에서 사랑 노래가 줄어든 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걸그룹의 경우 확실히 그런 경향이 관측되지만, 보이그룹은 꼭 그렇지는 않다. 2024년과 2025년 멜론 연간 차트 100곡을 확인하면, 여성 아이돌은 각각 30곡 정도가 차트인 했다. 그중 사랑 노래는 각각 10곡 정도다(10년 전 2016년에는 여성 아이돌 노래가 17곡 차트인 했는데 놀랍게도 16곡의 가사 주제가 사랑이다).
남성 아이돌의 경우 2024년엔 11곡, 2025년엔 5곡이 차트인 했는데(밴드 그룹에 가까운 데이식스는 제외), 사랑 노래는 7곡과 4곡이다. 표본이 많지는 않지만 일정 수준 이상으로 히트한 노래 중 사랑 노래 비중이 더 크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날까. 팬덤의 성비 때문이다. 현재 케이팝 그룹의 팬덤은 여성이 많다. 대표적인 인기 걸그룹 에스파, 아이브의 최근 컴백 곡 멜론 스트리밍 성비는 각각 여성 54%, 남성 46%다. 알라딘을 통해 확인되는 이들의 앨범 구매자 역시 20대에서 40대 여성이 가장 많다.
해외에선 이 경향이 훨씬 짙다. 여러 조사에 따르면 케이팝 팬덤 중 70~80%가 여성이다. 즉, 보이그룹을 여성들이 응원하는 건 당연하고 걸그룹도 여성들이 응원한다. 보이그룹은 이성 간의 연애 감정을 투사할 수 있는 사랑 노래가 더 쉽게 관측되고, 걸그룹은 여성들이 자아를 동일시할 수 있는 당당함과 자신감을 노래하는 것이다. 걸그룹 산업의 메인스트림이 '걸 크러시'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사랑 노래가 줄어든 건 출산율 같은 간접적인 요인보다는 팬덤 산업의 역학과 긴밀하게 관련돼 있다.
한편 케이팝 산업의 타깃은 국내 시장을 넘어 해외 시장이 되었다. 주요 기획사 중 가장 몸집이 큰 하이브는 2023년 기준 수출 매출 비중이 전체 매출액 대비 63%에 이르렀다. JYP 역시 같은 해 처음으로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을 앞질러 55%에 달했다. YG 엔터도 내수와 수출 비중이 비슷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 이상 이 산업은 한국인만을 대상으로 콘텐츠를 만들지 않는다. 그보다는 여러 나라 소비자들의 정서와 취향을 아우를 수 있는 방향으로 기획이 재편됐다.
걸 크러시가 표상하는 주체적 여성상은 서구 문화 산업의 메인스트림이고 그만큼 해외에서 선호되기 때문에 유행한 것이다. 창작의 배경이 출산율 같은 자국적 요인과 인과 관계가 묶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케이 컬처의 특수성을 지역적이고 민속적인 차원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이제 과녁에 명중하지 않고 미끄러지기 마련이다.
사랑 노래가 소실돼 가는 현실에서 파고들 사회적 의제가 있다면 차라리 이 산업이 점점 더 국내의 사회적 현실에서 풀려 난 채 괴리되고 있다는 사실 아닐까. 한국에서 발표되는 노래의 가사도 영어가 한국어 보다 많아진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케이팝은 언제부턴가 아이돌의 전통적 소비자인 젊은 세대 사이에서도 트렌드를 리딩하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대내적으로는 문화 산업에서 대중성이 거세된 결과이며, 대외적으로는 케이컬처에서 ‘K’라는 지역적 맥락이 탈각되어 가는 과정과 연결돼 있다. 케이팝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로 호명되지만, 한국 사회를 반영하는 실질적 대표의 기능은 약화된 채 표상으로 작동하고 있다. ‘사랑 노래’라는 다정한 온도의 테마 아래에는, 이토록 딱딱한 표정의 풍경이 드리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