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케이팝 평론가들의 입에서 나오는 공통된 키워드는 ‘위기’다. 케이팝 산업이 내리막에 처했다는 것인데, 흥미롭게도 그런 인식은 주관적 취향의 언어로 표현되곤 한다. 케이팝이 ‘재미’가 없어졌다, 케이팝은 ‘지루’해 졌다… 같은 말이다. 김윤하 음악 평론가는 유튜브 채널 ‘B주류 경제학’에 출연해 케이팝이 상향평준화 되면서 다양성을 찾는 재미가 없어졌다는 요지의 의견을 밝혔다. 김도헌 음악 평론가 역시 한 칼럼을 통해 케이팝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지나치게 표준화 돼 지루해졌다는 견해를 던졌다(‘인간·가치 중심 본질 속으로 전 세계는 다시 열광했다’, 국방일보). 인간의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인상 평들은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 형식적인 논리로는 말이 된다. 하지만, 정말로 아이돌들이 차이가 사라진 채 획일화되었는지 따져 보면 그렇지가 않다. 이들은 취향의 언어를 통해 문화의 위기를 가늠하고 있지만, 그 아래 암묵적으로 깔린 논거는 케이팝에 관한 여러 산업 지표의 후퇴다.
최근 산업적으로 부진한 건 걸그룹 신이다. 특히 '5세대'라 불리는 신인 걸그룹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상태다. 그 그룹들만 해도 아일릿, 베이비 몬스터, 하츠투하츠, 미야오, 이즈나의 노래와 콘셉트가 다 다르다. 멤버 구성과 성장 전략도 차이점이 있다. 아일릿은 특유의 서브컬처 미소녀의 콘셉트를 이어 가고, 하츠투하츠는 현실 속 고교생들의 싱그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즈나는 장신으로 구성된 멤버들의 비주얼이 캐치프라이즈 역할을 하고, 베이비 몬스터는 현란한 랩과 폭발적 가창을 앞세운 퍼포먼스가 메인이다.
기획을 통해 양산되는 건 보이 그룹이다. 이쪽은 오히려 걸그룹 보다 매출 방어가 잘 되고 있고 시장도 훨씬 크다. 올해 걸그룹은 에스파, 아이브 단 두 그룹이 턱걸이로 초동 백만 장을 넘었다. 하지만 보이그룹은 스트레이키즈가 300만 장, 세븐틴이 250만 장을 팔아 치웠다. 그 외에도 다수 그룹이 백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그 많은 보이그룹이 컨베이어 벨트를 거치듯 '찍혀' 나오는 것도 나눌 수 있는 파이가 크기 때문이다. 기획의 획일화에서 산업이 침체된 원인을 찾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차라리 이 대목에서 케이팝의 ‘위기’가 젠더를 매개로 서로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감지해야 한다.
시스템이 고도화되며 인간의 개성이 사라졌다는 건 낭만적이고 피상적인 말이다. 현실에서 시스템과 개인(들)이 분명히 구분되는 것도 아닐뿐더러 시스템을 구성하는 것은 개인(들)이다. 음악 평론가들도 주지하고 있듯이 현 케이팝 아이돌의 정체성과 기원도 바로 그 시스템의 정립에 있다. 케이팝의 세계화가 전면화하고 폭발적 성장세가 이어진 지난 십 년 동안 시스템의 영향력은 한 번도 느슨했던 적이 없다.
케이팝의 역사에서 개인의 인장이 시스템보다 우세했던 시기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15년 전 용감한 형제, 신사동 호랑이, 박진영 같은 스타 작곡가가 가요계 히트곡 대부분을 찍어 내던 때다. 이때 케이팝이 질타받던 레퍼토리는 후크송으로 '획일화'된 가요계였다. 상대적으로 미분화된 가요계가 개인의 크리에이티브에 의존하면서 생긴 부작용이자 과도기 같은 것이었다. 시스템의 공산품과 ‘인간’을 대비하고 그 예외성과 창의성을 웅변하는 건 작가란 개념에 대한 순박한 신앙이다. 무엇보다, 산업의 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인간의 진심과 ‘본연의 가치’는 너무나도 막연한 해법이다.
알다시피, 비평(Criticism)과 위기(Crisis)는 그리스어 krinein이란 같은 어원에서 비롯한 단어다. 이는 비평이 체제의 위기, 텍스트의 내재적 위기와 분리될 수 없다는 뜻이다. 비평은 위기를 목격하고, 감지하며, 그 실체를 사유한다. 위기는 비평이 태어나는 장소다. 그렇기에 비평은 위기를 언도하고 싶은 달콤한 유혹에 이끌린다. 현실을 극단적으로 규정함으로써 읽는 이들의 이목을 끌 수 있고, 그것을 말하는 내가 현실을 예지한다고 자처할 수 있다. 그것은 구체적인 문제의식을 저널리스틱한 과장으로 환원하는 손쉬운 선언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그 많은 ‘위기 담론’이 유행하고 만연하는 이유다.
비평이 지녀야 할 자의식은 위기란 말을 경계하고 아끼는 것이다. 그래야만 진정한 위기와 위기를 가장한 관성과 욕망을 구분할 수 있다. 비평은 위기와 대면하는 것이지, 위기를 양산하는 행위가 아니다. '위기'를 언도하고 그 진원지를 찾기 이전에 그런 수사가 사실에 부합하긴 하는지, 사실이라면 과연 어떤 국면에서 그러한지 돌아보는 게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