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광화문 공연, 스펙터클이 무너질 때
BTS가 처한 상황은 좋지 않다. 광화문 공연은 26만 명이란 예상치를 한참 밑도는 4만 명(서울시 추산)의 인파가 모였다. ‘BTS 노믹스’라는 명명의 무색함을 빈정대는 여론이 떠돈다. 정부 인력 수천 명이 투입되며 현장을 통제하고 언론들이 공연의 경제 효과를 웅장하게 예측한 것에 비해 실체가 초라했다는 비난이다. 한 기사에 따르면, 공연 당일 광화문 상권 매출은 한 달 중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공연과 함께 발매한 정규 앨범 ‘ARIRANG’ 역시 호평도 많지만 혹평이 섞여 있다. 온라인에선 세 편의 비판적 비평이 공유되었다(국내 음악 웹진 이즘, 제너레이트와 해외 웹진 피치포크). 이 글들은 앨범에 담긴 음악이 진부하거나 밋밋하다고 평가한다. 한편으론 세 글 모두 BTS의 사회적 위치를 가늠한 후 그를 콘텍스트 삼아 앨범에 대한 비판을 개진하는데, 일곱 명의 아이돌이 한국이란 나라를 위해 에밀레종 설화처럼 제 몸을 던져 희생해 왔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BTS와 희생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예외와 귀환의 주체, BTS
희생은 한국의 대외적 위상에서 BTS가 차지하게 된 거대한 입지를 가리키는 말이겠으나, 그들이 국격을 목적으로 활동해 온 것은 아니고, 글로벌 스타가 되기까지 직접적인 국가의 지원을 등에 업은 것도 아니다. 따라서 자신의 위상을 나라에 환원해야 하는 채무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BTS와 어울리는 단어는 ‘예외’다.
한국인들 입장에서 BTS는 그야말로 뜻밖의 존재였다. 팬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이름조차 알지 못하던 중소 기획사 아이돌이 어느 순간 ‘글로벌 스타’가 되었다는 전언이 도착했으니 말이다. 그래미 시상식 공연, 빌보드 차트 성적 등의 놀라운 물증을 보면 그것을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BTS는 두 가지 의미에서 예외적 주체였다. 하나는 한국에서 누구도 얻지 못한 서구에서의 진정한 명성을 선취한 존재라는 것이고, 하나는 그런 존재가 한국 사회 체제의 특수한 내부라는 사실이었다. BTS는 흙수저(‘중소돌’)의 자수성가라는 한국 현대사 이데올로기를 가히 신화적 규모로 재현했다. 케이팝 트레이닝 시스템은 이 사회 특유의 입시 체제와 효율 지상주의가 상징적으로 집약된 시스템이다. 그것이 낳은 존재가 사회를 초월한 성공을 거두며 사회 내부의 보수적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해 왔다는 의미에서 예외적이다.
BTS 신화는 2020년 ‘Dynamite’로 케이팝 최초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에 오르며 정점에 이르렀다. BTS는 국가적 영웅이 되었고 미국에서 거머쥔 위상이 국내에 역수입 돼 ‘국민 가수’로 등극했다. 해외에서 탄생한 예외적 주체가 귀환을 통해 자국의 환대를 받는 것, 이것이 BTS가 일으킨 스펙터클이고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그들의 고유한 서사다. 하지만 국위 선양은 사적 활동의 결과물일 뿐이었으므로 국가에 대해 빚진 것이 없었고, 한국 사회와 국민 여론에 대해 오직 찬사를 얻는 느긋한 입장에 설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BTS가 국가의 힘을 직접적으로 호출해야 하는 때가 오면서 변했다. ‘국위 선양의 영웅’으로서 병역 특례를 위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하이브 측은 ‘BTS 멤버들이 힘들어한다’는 코멘트를 흘리며 매듭이 지어지길 촉구했지만 여론의 역풍을 불렀을 뿐이다. 결국 멤버들이 입대하는 것으로 논란은 봉합되었다. 잠시 흔들렸던 국가적 영웅의 위치는 평형을 되찾았다. 이번 광화문 공연은 제대 이후 복귀를 위한 무대로서 나라의 광장을 빌려달라고 다시금 국가 권력에 무언가를 요청한 사안이다. 준비 과정부터 소음과 비판에 휘말렸다. BTS가 자기 활동의 결과로서 국격을 빛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국익의 대표자를 자처하고 그에 걸맞은 대우를 요구할 때마다, 한국과 BTS의 관계는 흔들렸고 그들의 입지에 균열이 갔다.
하이브의 구원 투수로 광화문에 서다
광화문 공연은 무리한 구석 투성이었다. 별도의 공연장을 놓아두고 구태여 공공의 광장을 무대로 삼은 것도 그렇고, 공권력이 그토록 대거 동원된 것도, 넷플릭스를 끌어들인 것도 그렇다. 이치대로 하자면 별도의 공연장에서 넷플릭스가 중계를 하거나, 광화문에서 공연을 하되 국내 공중파를 통해서 중계를 했어야 한다. 개별 아이돌 그룹을 통해 성대한 국가주의적 이벤트를 겨냥했지만, 그 모양새의 무리함으로 인해 이벤트의 실패가 이미 예고돼 있었다. 순리에 맞지 않는 기획을 왜 이토록 떠들썩하게 감행했을까. 정부와 하이브의 이해관계가 일치했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는 문화 산업 세계화의 상징을 지원하며 치적을 남기길 원했고, 하이브는 4년간의 BTS 완전체 공백기를 단숨에 만회하길 원했다. 하지만 하이브가 처한 상황 논리에서도 원인을 짚어 볼 수 있다.
하이브는 여러모로 악재에 처 해 있다. 방시혁은 주가 조작 혐의에 걸렸고, 민희진과의 오랜 진흙탕 싸움은 민 씨 개인보다 훨씬 잃을 게 많은 하이브의 대외 이미지를 깎아내렸다. 언제부턴가 케이팝 팬들에게 하이브는 문화를 타락시킨 공공의 적처럼 통한다. BTS는 하이브가 지닌 사회적 위상의 전부를 차지하는 전가의 보도이자 최후의 보루이다.
BTS의 컴백은 하이브가 처한 악재를 일거에 뒤집을 수 있는 카드였다. 때문에 최대한 판을 키워서 베팅한 것으로 보인다. 대외적으로는 넘버원 케이팝 스타의 귀환을 화려하게 알리고 대내적으로는 국민 여론에 ‘국뽕’을 공급하려 한 것이다. 말하자면 BTS는 하이브의 구원투수로 광화문에 등판했다. 국가와 사회, 문화산업은 물론 회사의 이해관계마저 일곱 명의 어깨 위에 걸머지는 과중한 책임을 떠안았다.승부수는 실패했고 하이브는 올인한 판돈만큼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들의 '선한 영향력'을 상징하던 BTS 마저 일부 여론에 미운털이 찍히는 결말을 맞았다.
이것은 특유의 예외와 귀환의 서사가 과잉 재현되는 시도였다. 서구에서의 성공으로 자국에서 명예를 얻는다. 이 공식에서 방점은 어디까지나 전자에 찍혀 있다.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번 복귀 역시 지나치게 전자에 비중이 쏠려 있다. 공백기를 극복하고 왕좌로 복귀해야 한다는 부담감, 혹은 그 이상의 것들까지 얻어 내겠다는 강박 때문인지 여러모로 과욕의 흔적이 여실하다.
광화문은 순차적으로 이뤄졌던 예외와 귀환을 국가적 성지에서 동시에 진행해 내려는 이벤트였다. 영어권 국가의 관객들을 불러 모으는 모습을 연출하고 세계에 실황을 전파한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자국의 안방에서 펼쳐지는 장관을 목도하며 국민들이 자부심에 젖는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의 공권력이 투입된 광화문 공연 중계권을 넷플릭스가 독점하고, 영어 가사가 대부분인 앨범의 타이틀이 '아리랑'이 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ARIRANG’을 다룬 비평들에서는 ‘붕괴’와 ‘표류’라는 개념으로 BTS가 묘사된다. 만약 그런 진단들이 옳다면 원인은 단순히 음악적 완성도의 저하에 있지 않다. BTS가 그래미 스타가 되어 귀환한 이후 맺어 오던 국가주의와의 행복한 동행이 부서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국가적 스펙터클이 상영되는 극장
그렇다면 물어보자. 반대로 한국 사회에 BTS는 무엇이었는가. 이것은 BTS와 국가주의는 어떤 관계를 맺어 왔는가로 요약할 수 있는 질문이다. BTS는 케이팝의 본격적 세계화를 이끈 선구자다. 한 발 앞서 빌보드에 진출한 싸이가 미국에서 스테레오 타입이 된 동양인의 이미지에 복무했다면, BTS는 그 틀을 깨트리고 동양인도 백인들처럼 ‘나이스 가이’가 될 수 있다고 증명했다. 이후 <오징어 게임>과 <기생충>등 케이컬처가 서구 시장에 도달한 사건들은 시간적으로 BTS가 등장한 후에 일어났다. 이 사실에서도 그들의 상징성은 절대적이다.
그것은 한국적인 것이 세계의 중심에서 부흥하고 있다고 보증하는 마술적 리얼리즘이었으며, 오랫동안 세계의 변두리에서 고개 숙이던 탈식민지 남성성을 소 제국주의의 자의식으로 뒤바꿔준 사회적 비아그라였다. 남자 아이돌과 가장 관련이 먼 남성 커뮤니티에서조차 BTS는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한국 남자’도 선망의 대상이 되어 백인 남성들과 경쟁할 수 있다고 증명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식민지 국가와 개도국으로 출발했지만, 이제 세계의 문화적 패권을 다투는 국가로 승천했다. 사회경제적 레벨에선 유수의 선진국에 비해 국력이 한 뼘 모자라지만, 그 공백을 케이 컬처를 통해 채워내며 ‘강대국’의 자의식을 품게 된 것이다. 이 모든 현상은 백 년 전 ‘김구 선생’이 부르짖던 ‘문화의 힘’이 현실화된 기적으로서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국민들을 연결하는 스펙터클을 빚어냈다. BTS는 한국이 낳은 최고급 문화 상품이며 국가적 스펙터클을 생산해 내는 극장이었다.
광화문 공연의 아이러니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군중이 예상보다 적게 모였다 해도 그 덕에 우려하던 인명 사고 등이 발생하지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수 여론은 바로 그 점을 집중적으로 성토한다. 고작 이런 모습을 보여 주려고 시민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통제했냐는 건데, 뒤집으면 그들이 기대하던 장관이 펼쳐지지 않은 것에 대한 실망과 불만이 뒤섞여 있겠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벽안의 군중들이 세종대왕 앞에 모여 열광하는 스펙터클 말이다. 그것이 충족되었다면 광장의 통제는 보상받을 수 있거나 당연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광화문 공연에 대한 비판 여론 깊숙한 곳엔 국민이 BTS에게 기대했고, 그에 부응해 BTS가 늘 충족해 주었던 '국익'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박탈감이 고여 있다. 국가주의의 눈먼 욕망이 웃지 못할 사태를 만들었지만,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국가주의의 폐쇄 회로에 갇힌 채 성 나 있다. 그 분노는 공공성의 침해에 대한 시민적 반응을 넘어 기대했던 나라의 위엄이 실현되지 않은 데서 비롯한 신민적 반응이다.
실패한 스펙터클 뒤꼍에 남은 물음
BTS는 예외적 주체로서 국가 바깥에서 성공하고 귀환을 통해 그 성공을 국가적 스펙터클로 뒤바꾸는 극장이었다. 광화문 공연은 BTS가 커리어 최초로 스펙터클을 재현하는 데 실패한 사건이며, 그 극장의 영사기가 더 이상 예전처럼 돌아가지 않음을 암시한다. 이것은 BTS를 넘어 한국 문화 산업 전체를 향해 울리는 경종이다. 해외에서의 활약과 그것이 되먹임 된 자국에서의 명예는 케이컬처 전체의 작동 논리였다. 케이컬처의 위기라는 우울한 선고가 떠도는 때에, 산업은 그 영광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재현할 수 있을까. 아니, 그것은 과연 이어갈 가치가 있는 영광이긴 한 것일까.
케이컬처가 생산해 온 스펙터클은 한국 사회가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은 것들을 가려 주는 스크린이었다. 저출생과 양극화, 실업난과 지방의 공동화 같은 국내의 사회경제적 현실이 영락해 가는 동안, 문화 산업의 세계화는 그를 외면하게 하는 도피처를 마련해 주었다. 광화문 공연의 맹점은 사익의 주체를 위해 공권력이 동원되고 광장이 전유되며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는 점에만 있지 않다. 저 간극을 직시하고 좁히는 데 힘을 써야 할 정부가 말 그대로 공권력을 동원해 왜곡된 스펙터클을 직접 생산하려 했다는 데 있다. 이 책임 방기 앞에서 BTS를 야유하는 데 열중하는 것은 여전히 동일한 프레임 안에서 내달리는 또 다른 도피일 뿐이다. 극장에 불이 켜지고 나면 돌아가야 할 현실이 엄습한다. 철거된 광화문 공연장 뒤꼍에 나부끼는 것은 바로 그 현실을 향한 황량한 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