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죽음, 시스템의 독재

2015 가요계 생각

by MC 워너비

이제는 작년이 되었다. 지난주 토요일 12월 27일, MBC <무한도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편이 방영됐다. 김건모, 쿨, 소찬휘, 지누션, 엄정화, 조성모. 추억의 이름들이 시간을 거슬러 브라운관으로 돌아와 우리를 90년대 무대로 데려갔다. 그 시절을 가로지른 우리네 머릿속 추억의 잔영 위로 또렷한 윤곽선을 포개며 향수를 일으켰다. 방영 직후 큰 호응이 잇따랐다. 절절한 90년대 회고담이 입에서 입으로 맴돌았다.


폭발적 성황 속에 막을 내린 ‘토토가’는 <건축학개론>, <신사의 품격>과 <응답하라> 시리즈 같은 영상 콘텐츠에 이어, ‘90년대’를 대중음악의 피륙으로 부활시킨 복고 콘텐츠란 의미가 있다. 방송이 끝나고, ‘토토가’ 출연 가수들 예전 노래가, 무려 20년의 시차를 돌파하며 음원 차트에 입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니까 90년대 가요계란 열쇠 말이 떠오른 것이다. 그 열쇠를 돌려 2014년 가요계에 진입할까 한다. 나는 특별히 90년대 대중문화에 애착을 느끼는 사람은 아니다. 지금보다 그때가 좋았어, 라는 투로 현재를 헐뜯을 생각은 없다. 내가 하려는 일은 과거의 미화와 각색이 아니다. 문화사적 흐름이란 큰 틀에서, 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상업 가요계 연대기를 다시 쓰며 현재의 좌표를 도출하는 것이다.


90년대와 2010년대 가요계는 두 가지 차이가 있다. 첫째 장르의 다양성, 둘째 작가적 지향이다. 90년대는 말 그대로 다양한 음악이 공존한 시대다. 듀스와 서태지와 아이들이 ‘흑인 음악’을 유행시켰고, 쿨과 투투, 룰라 같은 댄스 그룹이 히트했으며, 김건모와 박미경 같은 솔로 댄스 가수가 차트를 종횡했다. 넥스트는 록 그룹을 표방했고, 부활과 김종서의 록 발라드, 신승훈과 이승환, 전람회의 발라드가 사랑받았다. 심지어 현철, 김수희, 태진아의 트로트가 건재했다. 저들 모두가 사이좋게 〈가요 톱 텐〉 1위를 차지하던 시절이다.

지금처럼 기획사 시스템이 고도로 발달하지 않아서, 자기 음악을 고집하던 싱어송라이터가 있었다. 2014년엔 오디션으로 연습생을 선발하고 엄격한 트레이닝을 거쳐 기획사가 설계한 노선대로 활동을 시작한다. 90년대에는 자신이 만든 데모 테이프를 기획사에 보내면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 그 노래를 밀어주는 경우가 있었다. 기획사 문전을 전전하던 서태지의 데모곡 ‘난 알아요’가 그대로 시장에 나와 센세이션을 일으키지 않았는가. 특정한 가수나 장르에 국한한 얘기가 아니다. 이현도, 서태지, 이승환, 신승훈, 신해철, 김원준, 이적, 유희열, 김동률, 윤종신, 박진영 등. 시장에서 성공한 싱어송라이터가 유독 많았다는 점, 작가성과 상업성을 나란히 구가한 것이 90년대의 단면이다.


‘장르의 다양성’과 ‘작가성/상업성의 공존’이란 특질은 90년대 후반 아이돌 시대 1기가 개막하며 무너지기 시작한다. 2000년대 후반엔 ‘3대 기획사’ 시대를 맞이하여 장르와 작가는 사라지고 아이돌 양성 시스템만 남는 사태가 벌어진다. 그 결과가 걸그룹 대란과 후크송 범람이다. 남은 것은 천편일률적 상업성이다. 대중은 중독적 후렴구와 소녀들의 ‘꿀벅지’에 탐닉하면서도 회의와 싫증을 느끼는 모순된 반응을 보인다. 그러한 대중 정서의 양가적 집적으로 돌출한 이상 징후가 바로 <나가수>였다(또는 <슈퍼스타 K> 등 오디션 프로). 다양한 음악과 ‘아티스트’에 대한 갈증이다.


<나가수> 신드롬은 가요계에 지각변동을 몰고 온다. 가창력에 대한 매혹과 더불어 (고음 소화능력을 곧 가창력으로 이해하는)가창력에 대한 치우친 경도를 불렀다. ‘실력 없는 아이돌’에 대한 경멸을 유포하였으며, 아이돌 바깥의 음악이 차트에 진입하는 물꼬를 텄다(매주 라이브 음원으로 발매돼 화제를 일으킨 경연곡을 떠올려 보길). <나가수>가 방영된 2011년을 전후로 음원 차트의 아이돌 아성은 무너진다. 10cm 같은 인디 가수부터, 버스커 버스커의 밴드 음악, 버벌진트 같은 힙합 뮤지션, 김동률 같은 오래된 발라드 가수, 무한도전 가요제 부류 이벤트 음원까지. 아이돌이 아닌 가수가 멜론 차트 1위를 차지하는 것은 더는 기현상이 아니다.


재미있는 것은 아이돌 기획사들이 이런 추세에 전략적으로 대항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아이돌도 아티스트다”라는 슬로건이다. <나가수> 돌풍을 견제하려 KBS의 프로그램 표절에 공모하며 <불후의 명곡>이라는 대항마를 발주하였다(지금이야 이렇다 할 정체성이 없는 짬뽕 프로그램으로 전락했지만, <불명>의 최초 콘셉트는 ‘아이돌 경연 대회’였다. 기획사들은 그에 호응하며 자사 소속 거물급 멤버를 총출동시켰다). 한편으론 아이돌 자작곡 콘셉트를 세일즈했다. ‘노래 만드는 아이돌’ 이미지 메이킹이야 H.O.T 시대로 거슬러가지만, 요즘에는 그야말로 본격화하였단 차이가 있다. 티아라 멤버 효민도 작사를 했다고 언론 플레이하는 시대 아닌가.


정의하자면, 2012년 부근은 상업성에 대한 탐닉과 작가성을 향한 갈증이라는 대중 취향의 긴장으로 움직인 가요계 전환기다. 이 전환기가 낳은 최대 수혜자가 아이유다. 데뷔 초 아이유는 미끈한 허벅지가 매력 포인트인 솔로 아이돌이었고, ‘마시멜로’ 같은 단순한 댄스곡으로 활동했다. 그녀는 어깨에 둘러멘 통기타에 가창력이란 탄환을 장전한다. 시대적 무드를 타고 일약 ‘실력 있는 아이돌’로 거세게 부상한다. 그 단적인 해프닝이 ‘아티스트’로 대표되는 <나가수>와 ‘아이돌’로 대변되는 <불명>이 벌인 아이유 섭외 경쟁이다.


아이유가 소속된 로엔 엔터테인먼트는 대중의 욕구를 틀림없이 알고 있었다. 아이유에게 특별한 아우라를 입히는 데 골몰한다. 자작곡 홍보로 치장하고 ‘기타 치는 아이돌’ 콘셉트를 앞세웠다. 윤상, 정재형 같은 ‘아티스트’와 음악적 커넥션을 결성했다. 그 정점에 이른 결과물이 복고 유행에 편승하며 흘러간 명곡을 소환한 리메이크 앨범이다. 김창환, 서태지 같은 ‘위대한 음악가’의 뮤즈를 자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이유는 상업성(아이돌)과 작가성(아티스트)의 화학작용이 빚어낸 유기화합물이다. 그 점에서 90년대를 향한 향수와 공명하는 면모가 있다.


장재인, 김예림 같은 통기타 뮤지션이 인기를 끌고, 걸그룹 대란 시절에는 성공 가능성이 희박했을 악동 뮤지션 같은 싱어송라이터 그룹이 호응을 얻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음악가적 콘셉트의 복권이 기획사 시스템의 또 다른 산물이라는 한계 또한 엄연하지만 말이다.


90년대 음악과 2010년대 음악 중 어느 것이 훌륭한가, 이것은 우문이다. 사운드 퀄리티라는 자질에서 지금 상업음악은 예전과 비교가 무색할 정도로 빼어나다. 빌보드 차트 표절 논란이 분기 행사처럼 치러지지만, 90년대라고 ‘레퍼런스 음악’이 없던 것도 아니다. 그때는 인터넷이 없어 제꺽제꺽 논란이 되지 않았단 것 말고 질적인 차이가 있나 싶기도 하다. 물론 그때는 표절이란 개념이 낯설었던 만큼 제대로 걸리기만 하면 훨씬 큰 대가를 치러야 했지만. 가수 양성 시스템 고도화도 음지를 드리운 만큼 양지를 비췄다. 90년대 방송 공연은 립싱크 무대가 태반이었다. 오늘날 가요계 퍼포먼스 능력이 향상되었다는 걸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토토가’가 이슈를 모으며 회자된 사실이지만, 터보 멤버들이 기획사에 상습적으로 구타당하고 혹사당했단 증언을 떠올리면 계약 및 관리 체계가 확실히 근대화됐다.


다만, 과거와 오늘에 결정적 차이가 있다면, 그때는 시스템을 넘어서는 가수 ‘개인’이 존재했으나 지금은 ‘시스템’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세졌다는 사실이다(이것은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자리 잡지 못한 90년대의 시대적 정황 때문이기도 하다). 그 상이한 토양에서 자라난 생명력 차이도 있을 게다. 90년대에 데뷔한 싱어송라이터들은 20년이 지나도 현역으로 활동하거나 후진을 프로듀스한다(김동률, 유희열, 서태지, 이현도, 윤종신, 얼마 전 영면한 신해철 등). 개인이 시스템에 포섭되는 과도기였던 2000년대 가수들은 훨씬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음악적 생명력을 왕성하게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역량으로 창작물을 만든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역량으로 창작된 상품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퇴출당하고 나면 할 수 있는 게 적다.

시스템의 세력이 더욱 드세진 지금은 가수의 소모품화도 가속됐을 것이다. 기획사와 분쟁을 일으켜 그룹을 탈퇴하고 솔로로 데뷔한다. 한 철 프로모션이나 성공하면 다행인 하루살이 목숨이다. 걸그룹 ‘유통기간’이 다할 때쯤이면 계약 문제로 구구한 다툼을 벌이거나 쓸쓸히 옛 영화의 뒤안길로 저물어 갈 것이다(불과 몇 년 전까지 메가톤급 인기를 누리던 원더걸스 멤버 가운데 누가 성공했는가).


특기할 것은 언젠가부터 시스템 바깥의 공백이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스마트 폰 대중화와 함께 찾아온 음원 스트리밍 시대에 따른 사건이다. 거기 더해, 음악과 퍼포먼스를 동영상으로 감상하는 유튜브가 SNS와 결합하며 파급력을 발휘했다. 대형 기획사가 방송 채널을 장악하던 2000년대 중후반 및 2010년대 초입과 달리, 대중이 독자적으로 선택권을 행사하고 트렌드를 일으키는 통로가 구축되었다는 뜻이다. 음원 시장 히트곡과 가요 프로그램 1위 곡이 어긋나는 현상도 이제는 드물지 않다. 봉오리를 펴기 시작한 장르의 다양화는 그 결과다. 말하였듯, 상업성에 대한 탐닉과 작가성을 향한 향수라는 대중 취향의 긴장이 도출한 결과이기도 하다. 자기 색깔을 가진 가수를 밀어주는 윤종신의 미스틱 89와 도끼, 더 콰이엇, 빈지노의 일리네어 레코드 같은 중소 규모 레이블이 주류 시장에서 주목받는 것도 공백의 증거다.


가요 시장은 드디어 생태계 다양성을 회복해가는 걸까? 거기 얼마만큼 기대를 걸 수 있을까? 핵심 키워드는 90년대 앨범 시장과 길보드 차트를 대체할 차트 시장의 복원이다. 2000년대 가요계의 딜레마는 인터넷 보급과 MP3 출현으로 앨범 시장은 괴멸되어 가는데, 그를 대신할 구매 채널이 온전히 도래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음원 시장 정착은 소비자와 음악가가 다른 매개체 없이 음악을 거래하는 광장을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90년대 음반 시장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마진율이 낮다는 단점도 있다. 각각의 영역에 뿌리를 내린 장르 시장이 강화되어 간다기보다, 멜론 차트로 표상되는 음원 시장이란 질서에 장르의 편린이 포섭되어간다는 한계도 있다.


정리하자면, 90년대 이후 오늘의 가요계는 장르의 다양성을 표면적으로 회복하고 있다. 반면 작가적 내면은 소실되어가고 작가적 제스처의 인테리어만 난잡하다. 가요계는 대중의 욕구와 시장 하드웨어의 변천에 따라 모습과 양상을 달리해 간다. 90년대는 이랬는데 지금은 이렇다든가, 어제에 비해 오늘이 달라졌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일 수는 없다. 옳고 그름을 가리기 전에 변화의 양상을 확인하고 빛과 그늘을 직시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음악시장 흐름을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음악의 전면적 상품화다. 개인에 대한 시스템의 득세는 음악가의 내면을 투영한 작품이 탄생할 기회를 말소하였다. 매체를 통해 접하는 가수 지망생들에겐 ‘어떤 음악을 하고 싶다’는 지향이 잘 보이지 않는다. 오직 ‘가수가 되고 싶다’는 단말마적 성공의 욕망이 그득하다. ‘아이돌 고시’ 지망생부터, 인생역전을 노리는 오디션 프로그램 지원자, <나가수> 부류 경연 프로그램에 투항하여 남의 노래로 생존경쟁을 벌이는 보컬리스트.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은 자립이 요원한 현실의 풍경이다.


그렇다면 시스템 바깥의 공백을 개척한 음원 시장은 어떨까? 음원 차트는 다양성 확보에 이바지하였으나, 음반을 음원 단위로 분절하여 판매하고 즉흥적으로 소비하게 한다. 쉽게 사고 쉽게 들으니 생명력도 짧아지고, 음악이란 재화의 지위도 하락한다. 스트리밍 음원 감상은, 음악 자체를 향유하는 목적 보다, 일상적 적막을 ‘즐거운 소음’으로 채우려고 소비되는 경향이 크다(스마트 폰에 이어폰을 꽂아 출퇴근/통근 길에 음악을 틀고, 컴퓨터 게임과 작업을 하며 음원 재생 버튼을 누르고, 무료할 때면 습관처럼 1위부터 100위까지 ‘실시간 차트’를 돌리고).


음반은 음악적 주제의식과 구성미를 완결하는 작가의 거주지다. 지난 세기 동안 음악의 거래 단위는 앨범이었다. 이제는 그것이 해체된 채 취향과 트렌드의 묶음으로 판매된다. 거기서 작가라는 정체성이 형체를 보존하여 유통되기란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지금 ‘작가의 죽음’이란 터널에 진입하였다. 이것이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가치중립적 탐구 소재로 남겨두겠다. 그러나 한 가지는 장담할 수 있다. 그것은 유턴이 불가능한 터널이다. (2015/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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