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X'와 JTBC
JTBC 스포트라이트가 요약한 '세월X'의 결론은 잠수함 충돌설이다. 그 논거는, 알려진 것과 달리 해당 해역 수심이 30m 가량이 아닌 50m이며 그곳이 잠수함의 평소 운항경로라고 군 관계자가 발설했다는 것이다. 사고 당시 레이더에 잡힌 물체가 있는데, 정부 설명과 달리 컨테이너일 가능성이 희박하고 쇠붙이로 된 선체일 가능성이 높다는 과학 교수 의견도 첨부했다. 실제로 사고 당시 일부 승객과 선원이 충격음을 감지했었다. 한편 검찰이 발표한 과적 및 변침 등의 사고 원인은 침몰 일자보다 무리한 과적을 하고 운항한 적이 있으므로 의심스럽다고 한다.
지금껏 알려진 사실에서 달라진 게 없다. 세월호 특조위에 참여한 한 의원실 보좌관도 특조위에서 다 논의된 이야기라고 말했다. '세월X'를 훑어보기만 했지만, 자로의 주장을 뒷받침할 강한 근거를 스포트라이트에서 모두 방송했다 보는 게 합리적이므로 영상 전체를 확인할 가치를 못 느낀다. 자로의 결론이 크게 미심쩍단 이유도 있다. 가령 그는 과적, 변침, 고박 불량, 복원력 상실이란 복합 요인을 낱개로 분리해 반박하는 논법을 취한다. 사고 일자 보다 무리한 과적을 한 때가 있다 해도 항로 이탈, 조류의 세기 등 특수한 조건 및 나머지 침몰 요인이 결합하지 않았다면 재난을 피해갈 수 있다. 4월 16일은 그런 요인들이 한 곳에서 만난 날이란 설명도 가능하다. '언제 침몰했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 노후 선박 인수와 구조 변경 및 안전 수칙 상습 위반을 일삼은 세월호에 대한 합의된 평가 아니었던가?
원자력 잠수함이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수심은 100미터 이상이라고 한다. 잠수함의 신장을 생각해도 37미터에서 50미터, 그러니까 10미터에서 15미터의 수심 차이가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해당 해역 수심이 최대 47미터라는 사실도 익히 알려져있던 바고, 47미터로는 잠수함 활동이 힘들다고 설명한 기사도 있다. 잠수함 충돌? 손가락 골절 시신 발견? ‘세월호 6가지 루머’와 팩트 확인 (알고보니 수심이 50미터였다는 주장이 잠수함 충돌의 논거로 성립되나?) 잠수함 운항 해역이라는 발언을 인정한다 해도 운항을 위한 탐지 장비를 소지한 잠수함이 왜 세월호와 부딪혔는지, 수천 톤의 대형 선박이 난파될 정도의 충격이었는데 왜 일부 승선 인원만 충돌을 감지했는지 알 수 없다. 자신의 몇 배에 이르는 선박이 침몰됐다면 잠수함 또한 침몰되거나 크게 파손될 가능성이 높고 그렇다면 그에 관한 정보가 은폐되기 어렵다는 점, 침몰이 시작될 당시 옆으로 누운 세월호를 찍은 헬기 영상에서 선체 밑바닥에 충돌 흔적이 없었다는 점, 잠수부를 동원한 수색 작업에서도 흔적이 보고되지 않았다는 점이 잘 설명이 안 된다. 익히 알려진 상식으로도 잠수함은 선체가 수면 위로 부상하지 않는 이상 레이더로 포착이 안 된다. 만약 수면에 부상한 상태로 충돌했다면 파손된 잠수함을 왜 아무도 목격하지 못했을까.
자로와 똑같은, 아니 그 이상의 정보를 지닌 특조위에서 왜 잠수함설이 진지하게 논의되지 않았겠나. 그만큼 개연성이 적고 마땅한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로는 이미 시중에 나돈 가설, 관계자들이 다 수집한 정황을 가지고 "나는 진실을 보았다" "폭로에 따른 신변의 위협을 막기 위해" "당신의 편견을 버려라"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운운하며 웅변의 기름칠을 했다.
'세월X'에 열광하는 야권 성향 커뮤니티에서도 잠수함설은 수용되지 않고 있다. 대신 자로가 말하는 핵심은 잠수함이 아니라 외부 충격이라는 옹호 논리가 조직되고 있다. 자로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세월호 침몰 원인은 잠수함 충돌이 명백하다는 표현까지 했는데 어떻게 이런 변호를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왜 자로가 잠수함설을 재탕했겠나. 사고 수역은 암초가 없는 지역이다. 외부 충격이 있었다면 잠수함 말고 충돌할 대상이 없으니 그런 거 아니겠나. 자로의 논리 안에서 외력설과 잠수함설은 분리할 수 있는 독립된 명제가 아니라 후자가 전자의 근거를 이룬다. 그런데 확정된 근거와 정황상 잠수함설이 신빙성이 없으니까 핵심은 외력 작용이라고 둘러대는 거 아닌가. 물어보자. 잠수함이 아니라면 뭐가 외력을 가했단 말인가? 누가 어뢰라도 쐈나?
이건 가설의 설득력 없는 부분은 버리고 나머지 부분만 골라내 가설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어긋난 논리다. 가설은 논거의 전체적 타당성과 완결성으로 입증된다. 그게 안 되면 채택할 의미가 적다. 자로의 주장이 음모론이라고 확정짓진 않겠으나 많은 음모론이 이런 방식으로 승인된다.
팩트와 디테일엔 또 다른 팩트와 디테일로 반박하라는 의견도 있는데 옳은 말이고 정론이다. 그런데 그건 유언비어에 대처하기 곤란한 이유이기도 하다. 타당성과 현실성이 부족한데 일부 부인하기 힘든 정황을 갖춘 주장을 장황하게 풀며 여론을 포섭하니 그걸 검증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 사회의 공론과 지적 에너지가 허비된다. 여담으로 이것은 퀄리티 낮은 지적 담론이 그 내실 이상으로 논쟁이 될 때 일어나는 부작용이기도 하다. 나는 자로가 필리버스터 운운하는 생뚱맞은 레토릭으로 아홉 시간짜리 다큐를 만들어 "다 보기 전엔 댓글 달지 마라"고 강조하는 덴 그런 식으로 비판 발언의 문턱을 높이려는 의도가 있다고 의심한다.
자로의 주장이 다 쓸모없다는 건 아니다. 레이더에 포착된 물체가 컨테이너도 잠수함도 아니라면 무엇이었는지 나도 궁금하고 일부 승객이 들었다는 충격음의 정체도 알고 싶다. 참사 이후 2년이 넘도록 이것이 규명되지 않은 건 선체 인양 작업이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다. 군 당국이 기밀 보안을 이유로 레이더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게 이해는 가지만 세월호가 무겁고 예외적인 재난인 만큼 협조하는 게 옳다고 본다. 이런 상황에선 섣부른 결론 내리지 말고 의혹이 남아있고 밝혀진 진상에 미비점이 있으니 다시 조사 하자고 있는 그대로 요구하면 된다. 야당이 판사석에 앉아 박근혜 정부를 총결산하며 심문하는 정국에 그게 힘들겠나? 특조위 구성을 위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려고 미심쩍지만 화끈한 가설을 용인하고 결론만 잘라내 준다? 이런 기준 없고 위험한 태도가 어디에 있나.
문제는 공론의 품질을 가리는 메커니즘의 확보다. 세상을 믿기 힘들수록 믿을 수 있는 것을 가려주는 기준과 절차를 세우는 데 안간힘을 써야 한다. 한국 사회가 당면한 과제는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는 것뿐만 아니다. 그 과정에서 차후 있을 또 다른 세월호들의 진실을 밝혀내는 사회적 역량을 훈련하는 것이다. 믿을만한 근거와 믿을 수 없는 근거가 혼란스럽게 뒤섞인 주장에서 내 바람에 부합하는 것만 가려내 승인하는 관행이 자리 잡는 게 어떤 결과를 낳겠나. 공동체의 비극으로 화끈한 서사를 엮는 데 골몰하는 한탕꾼들이 난립하는 걸 걸러낼 수 있나? 실은 지금도 어느 정도 그런 상황 아닌가? 그 김어준이 세월호 이슈에 매달리고 있는 게 뭘 뜻하겠나.
음모론을 유포하는 진범은 병든 사회다. 세월호가 바로 그렇다. 진상규명이 명확하지 않고 정부 기관의 신뢰가 암반을 뚫고 땅에 처박혔으니 사회에 불신이 만연하고 불신을 사실로 입증해주는 이들이 선지자가 된다. 이 글의 비판은 궁극적으로 자로가 아니라 진실을 덮으려는 자들과 진실을 밝힐 책임을 완수하지 못한 이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단 언론기구의 공신력으로 자로의 가설에 사회적 권위를 부여한 JTBC는 종편 본능을 깊게 반성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