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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Dec 13. 2016

보편자들의 투정

정중식의 성관계 유출 영상에 관한 발언

중식이 밴드의 정중식 씨가 성관계 유출 영상, 소위 리벤지 포르노를 보는 것을 '보편적인 지질한 남자'의 취미 생활이라 표현했나 보다. 그 표현 뒤에 나름의 맥락이 있겠지만 맥락과 상관없이 그릇된 표현이다.


확실히 성관계 유출 영상을 보는 남자가 많을 지도 모른다. 토렌트와 웹하드에서 무더기로 공유되고, 남초 커뮤니티에서 이런 저런 품평과 소개글이 게시되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런데 산술적 다수가 곧 보편성을 뜻하진 않는다. 설혹 보편성이라 표현할 수 있다 해도 그런 관습이 옳냐 그르냐 가치판단이 남는다. 가령 한국사회 저변에 인종차별 의식이 보편적이라 해서 인종차별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성관계 유출 영상이 보편적이라 한다면, 몰아내야 할 악습이 넓고 깊게 자리 잡았다는 사태의 심각성을 알려주는 것 외에 다른 의미가 없다. 성관계 영상을 유포하는 건 범죄행위다. 영상에 찍힌 여성의 일급 프라이버시를 가해하는 것이고 그의 사회적 인격에 흙을 뿌리는 행위다. 타인의 고통을 성적 쾌락을 위해 쓰는 건 윤리적이지 않다. 소비와 공급은 서로 상승작용하므로 그 영상을 다운받고 보는 건 넓은 의미에서 범죄행위를 용인하는 일이다.


성관계 유출 영상은 안 보면 된다. 그거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고, 그 선택지를 이행하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성관계 유출 영상 안 본다고 생계에 지장이 생기는 것도, 사회적으로 소외되는 것도 아니다. 막말로 그거 말고 볼 야동이 없는 것도 아니잖은가. 자신이 적극적으로 누리는 사소한 쾌락 하나를 줄이면 되는 거다. 더 리얼한 느낌을 즐기고 싶다, 포르노 소비 범주를 줄이고 싶지 않다, 이래라 저래라 간섭 받기 싫다, 이런 '투정'은 타인을 가해하는 것에 변명이 될 수 없다.


나도 남성이다. 이런 비판은 스스로에 대한 성찰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고 결백함을 간증하려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이 글에서도 동족혐오나 내가 소속된 집단에 대한 구분짓기로 치닫지 않도록 비속어와 정념을 걸러내고 비판의 언사를 건조하게 가려 썼다. 다만 난감한 것은 이렇듯 청산해야 할 '보편성'이 '지질함' 같은 자조의 단어로 분칠된다는 것이다. 나의 불쌍함이 타인을 해치는 것에 변명거리가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뿐더러, 여기서 '지질함' 같은 단어는 논리적으로 맥락적으로 형용모순이다. 성관계 유출 영상이 왜 나쁜지 사회적 문제의식이 명확하지 않던 시절에는 별 생각없이 볼 수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이라는 비판을 접하고도, 왜 잘못인지 알게 된 상태에서 정당화하는 건 지질한 게 아니라 부도덕이다. 그런 표현은 자신의 어두움과 직면하길 회피하고 동정을 호소하려는 거짓말이다.


중식이 밴드는 '88만원 세대'로 대변되는, 젊은 세대의 가난과 센치함, 그러니까 '보편적 지질함'을 노래하며 주목 받았고, 진보정당 정의당의 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 일전에 긴 글을 쓴 적 있지만 문제는 정확히 이런 감수성에 있다. 그간 세대론에 천착한 진보 담론은 빈곤한 젊은 세대를 윗세대처럼 번듯한 직업을 갖고 가정을 꾸리는 가부장적 사회화에 실패한 2030 남성들과 등치해왔고 연민과 죄의식의 논조로 후원했다. 그 와중 젊은 여성이 겪는 취업과 고용 문제의 특수성은 충분히 강조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 결과 자신의 보편적 약자됨에 도취해 나 이 다른 약자의 존재를 외면하거나, 자신의 불쌍함으로 타인에 대한 혐오를 정당화하려는 젊은 남성들이 생겨난 측면은 없을까.


가난은 사회적 맥락을 통해 파악되어야 하고, 그것을 통해 공감과 연대, 해결책에 다다라야 한다. 하지만 그 소중한 사회적 맥락이 왜 성관계 유출 영상을 보는 것에 대한 페이소스로 소모되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저 '보편적 남성'들의 '투정'에 대한 마땅한 응대는 어긋난 연민이 아니라 따끔한 충고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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