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좋아나 Feb 03. 2023

우울증 탈주루트 만들기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

나의 우울증은 내가 누군지 모르는데서 시작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


라는 말로 심리 상담을 시작했었다. 이 문장이 바로 나의 우울증을 관통하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과거와 현재를 붙잡고 있고, 미래를 바꿔놓을 문장. 30년이 넘도록 나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남들이 좋다는 길을 따라온 것은 남들이 보기에 괜찮아 보이는 약간의 성공과 우울증으로 나를 이끌었다. 


내가 누군지 뒤늦게 돌아보는 일은 낯설었다. 나의 관심의 화살표 방향은 늘 밖으로 향해있었기 때문에 그 화살표의 방향을 바꾸려 해도 자꾸만, 만화영화에서 주인공을 잘못된 곳으로 이끄는 나무표지판처럼 팽글팽글 다시 밖으로 화살표를 돌려놓았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은 절대적인 시간이 많아진 퇴사 이후 오히려 더 가능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밖으로 향하는 관심이 다 소진했을 즈음, 화살표는 안으로도 향하기 시작했다. 


내가 알게 된 나는 매우 민감하고,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쉽게 눈치채고 다른 사람의 감정이 나에게 까지 영향을 미친다. 손에 잡히는 것을 만드는 것보다는 형이상항적인 것을 좋아한다. 오감 중에 가장 발달한 것은 청각이고 그다음이 시각이다.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 것이 가장 감동적이고, 그다음으로 아름다운 것을 볼 때 마음이 움직인다. 나라는 자아를 인식하기 시작하고 사춘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우울이라는 감정이 내 밑바탕에 항상 깔려있었다. 외부 자극이 심해졌을 때 우울은 극심해지고, 우울이 약해지고 체력이 올라왔을 때는 불안이 나를 맞이한다. 불안은 나를 채찍질하고 새로운 것을 탐구하게 만든다. 불안은 나를 몰아치게 하고 성취로 이끈다. 불안을 잠재우는 방법은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어렸을 때 엄마가 주입한 것과 다르게 나의 체력은 평균정도는 되는 것 같고, 그래서 운동강도는 생각보다 조금 세야 한다. 그래야 머릿속의 수많은 생각이 씻겨나간다. 불안은 나를 자꾸 사람들을 만나게 만들어 말을 하게 만들지만, 오히려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은 나에게 자극이 될 수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필요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나의 하루를 너무 피곤하게 만든다. 위장이 좋지 않아 음식으로 인한 자극과 먹는 속도에 따라 위염과 장염이 자주 생긴다. 스트레스에 취약하면 체하고 여드름이 나며, 생리불순, 가슴에 혹이 생긴다. 내 몸의 약한 기관은 위와 피부, 생식기인 것이다.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피로를 크게 느낀다. 내가 아는 것을 남에게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인지와 관심은 다양하나 결정과 결정에서 행동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다. 고민이 많아 생각보다 빠르지 않다. 자유를 좋아하고 독립적이다. 


나를 알아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고, 힘들게 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니 나의 몸이 편해졌다. 몸이 편해지는 경험을 한 것은 채 몇 달도 되지 않는다. 나를 깨닫기만 하면 뒤에 수순은 꽤나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다. 우울증의 로우텐션이 발목을 잡는 게 가장 큰 허들이겠지만.. 


나를 알아가는 과정 이후로는 기술적으로 우울증 탈주루트를 만들 수 있다. 내가 취했던 행동들의 나머지 두 범주는 병을 알아가는 과정과 나와 병을 안 이후 병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는 과정이었다.


병을 알아가기

나를 아는 것에 비해 병을 알아가는 것은 오히려 훨씬 쉽다. 나에 대한 정보는 나를 들여다보는 형태로 들여다봄의 불편한 시간을 억지로 가져야 한다. 그에 비해 병에 대한 정보는 관심이 밖으로 향한다. 그동안 습관적으로 해왔던 과정이 될 수 있다. 


가장 병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 것은 심리 상담이었다. 우울증을 처음 겪게 되면 처음 느껴보는 깊은 무력감이 낯설면서도 짙게 다가온다. 이게 뭔지 모르겠는 그 상황을 상담 선생님들은 수많은 경험을 통해 설명해 준다. 이 병이 어떻게 진행되고, 치료되고, 나아지는 케이스들이 있는지 상담을 통해 들을 수 있다. 오히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받는 진단들은 진단 검사를 통해 나의 우울증의 중증도를 파악하는데 더 도움이 되었고, 우울증의 구체적인 증상과 병에 대한 정보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던 듯하다. 좀 더 친절하고 따뜻한 의사 선생님을 찾아다니는 것도 방법일 것 같다.


요즘엔 정신과 질환에 대한 정보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도움을 많이 받았던 채널들은 유튜브의 정신과 의사들이 하는 뇌부자들, 상담심리가 웃따, 딩대 선인장, 팟캐스트는 뇌부자들, 마보, 티비프로그램은 오은영의 금쪽상담소가 도움이 되었다. 정신질환과 관련된 에세이, 책들도 우울증이나 다른 정신질환 환자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엿볼 수 있어서 나만 나락에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을 조금이라도 지울 수 있었다. '젊은 ADHD의 슬픔',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 같이 동시대의 젊은 여성들의 글들에 공감이 많이 되었던 기억이다. 박찬국 교수님의 '참을 수 없이 불안할 때, 에리히 프롬'과 '사는 게 고통일 때, 쇼펜하우어'도 나의 불안과 우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



병에서 탈출하는 나만의 루트 만들기

병에서 알았다면 탈출할 차례다. 말이 쉽지 없는 에너지를 가지고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우선, 약을 먹어서 기분을 좀 올려두는 게 무언가를 시작하는데 도움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정신과 약을 먹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부끄러울 일이 전혀 아니다. 다들 쉬쉬하며 숨기고 있어서 그렇지 내가 정신과 약을 먹고 있는 것을 알렸을 때 정말 많은 친구들이 자신도 정신과 약을 복용한 적이 있음을 고백했다. 대체로 자신을 통제하는 스타일이며 불안이 많은 친구들은 거의 100% 에 육박하는 확률이었다. 약을 먹으면 확실히 감정기복이 적어지고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만 있는 상태에서 뭐라도 새로 시도해 볼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긴다. 나도 약을 먹고 나서야 세상이 죽을 만큼 괴로운 곳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약으로 에너지를 올렸다면 이제 나한테 뭐가 잘 먹히는지 실험할 차례다. 우울증에 어떤 것이 도움이 되는지는 병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여러 전문가와 경험자들이 알려줬을 것이다. 운동과 햇볕, 명상, 식습관, 감정일기 같은 것들을 맘에 드는 것부터 시도해 본다. 


나는 우울증에 걸려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하면서 요가에 더 빠져들게 되었다. 과거와 미래로 번져나가는 생각을 현재로 머물게 하는 것, 현재의 내 감각과 감정에 집중하게 하는 요가의 기본 가르침은 심리상담에서 가르쳐 준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과 같은 것이었다. 생각을 멈추고 호흡과 동작에 머물러 있는 것이 여기저기로 폭주하는 나의 생각을 잠시라도 붙잡아 메는데 도움이 되었다. 빈야사나 아쉬탕가 같이 빡센 요가를 할 땐 생각을 할 여유가 없어지기도 하고, 요가가 끝난 후 사바아사나 시간에 양 팔다리를 뻗고 누우면 장요근의 시원한 감각이 기분을 좋아지게 해 주었다. 아무래도 요가의 정적인 면이 지겹다면, 달리기나 등산, 풋살, 배드민턴, 탁구, 테니스 등 하고 싶은 운동 무엇이든 시도해 보자. 땀을 흘리고 나면 정말 희한하게도 나를 짓눌렀던 부정적인 에너지도 같이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나 같은 사람도 운동하고 나서 찾아오는 감각이 좋아, 달리기 위해 집 앞 둘레길을 스스로 찾아 나선다.


운동과 함께 겸하면 좋은 것은 자연으로 나가보는 것이다. 햇볕은 비타민 D 합성을 촉진시켜서 세로토닌 분비를 활성화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이런 과학적 근거뿐만 아니라, 자연으로 나가면 나라는 감각을 오롯이 더 쉽게 느낄 수 있다. 산에 올라 경치를 바라보거나, 숲 속에 들어와 있거나,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일을 하는 나, 공부를 하는 나, 집안일을 하는 나, 세상에 치인 나가 아닌 수식어가 다 떼어진 오롯한 '나'라는 감각이 우울을 벗어나게 만든다. 그래서 우울증을 겪을 때 나는 주말이면 혼자라도 산으로, 섬으로 하이킹을 다니곤 했다. 탁 트인 곳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나를 괴롭히는 모든 것들이 사사로운 것이 되는 느낌이었다. 잠깐이라도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서 오롯이 내가 되어보는 감각을 늘려보는 것이다.


현재의 나로 돌아오기의 끝판왕은 명상이다. 명상이라는 것을 허세처럼 느꼈던 때가 있었다. 허세와 오그라듬의 사이에 있는 것처럼 생각했었다. 여러 명상의 방법들을 배워나가면서 나의 불안을 확실히 줄여주는 것을 경험했다. 명상에도 너무나 많은 종류가 있어서 많은 것들을 경험해 보며 본인한테 맞는 명상을 찾아보는 게 좋다. 요가에서 많이 쓰는 호흡명상도 좋고, 정말 단순하게 '나의 이름은 무엇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와 같은 단순한 질문을 던지고 '모른다'라고 답하는 몰라명상(유튜브 홍익학당 채널 참고) 같은 것도 쉽게 생각을 비우는데 도움이 되었다. 넷플릭스의 헤드스페이스 시리즈도 접근성도 좋고 성우들의 목소리도 좋아서 명상을 시작하는데 활용하기 좋다. 유튜브와 팟캐스트 등 여러 채널에서 명상을 경험해 보고, 제대로 배우고 싶다면 MBSR이나 우울증 환자를 위한 MBCT-L 과 같은 본격적인 명상코스를 수강해 보는 것도 권한다. 명상은 제자리에서 어지러워진 마음을 청소한 것과 같은 효과를 준다. 어떤 날은 어질러진 물건을 정리하는 정도만 가능하고, 어떤 날은 물건 정리에 청소기 돌리고 걸레질까지 한 깔끔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자주 하는 만큼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진다. 


도망치고 싶다면 그 탈주루트는 여러 개일수록 유리하다.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고 그때 그때 잘 먹히는 방법을 활용해서 탈출하는 것. 그것이 가능해지면서 나는 서서히 내 우울의 감정을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우울의 감정엔 패턴이 있다. 잘 관찰해 보면 며칠 뒤에는 나아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울이 찾아왔을 때 알고 있는 여러 방법들을 활용해서 탈주의 시도를 하다 보면 잘 먹히는 방법들이 생기고, 어느 순간엔 우울이 오기 전에 그것을 막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나의 경험이 여러분의 우울증 탈출에도 도움이 되기를. 몇 백 미터가 넘는 어두운 우물에 빠진 것 같은 나날도 언젠가는 지나간다. 믿을 수 없는 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믿어주었으면 좋겠다. 


나아지는 날은 온다.


우울했던 날, 억지로 몸을 이끌고 홀로 갔던 하이킹에서 만난 하늘과 바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누구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