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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자를 만나다. 6년 만에

by 경첩의사

보호자를 만나다. 6년 만에



1.


중환자실 앞에서 보호자를 만났다.

6년 전 보호자이다.


둘이 너무 반갑게 만나서 인사를 했다.

서로 안부를 전하고, 환자도 잘 지내는지 물었다.

멀리서 보아도 한 번에 알아보았다. 보호자의 눈물부터 웃음까지 수개월간 함께하였기에 절대 잊을 수 없는 얼굴이다. 물론 환자도 잊을 수 없다.


지인이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어서 함께 온 것이라고 하였다. 그 환자, 보호자 모두 함께 생사 고비를 넘겼던 그 중환자실이다. 보호자는 그 중환자실 앞에서 많은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오늘은 지인, 다른 환자의 보호자와 함께해 주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아마도 그 환자 보호자도 이 보호자에게 많은 도움과 힘을 얻었을 것이 분명하다.


'6년 전 우리 남편도 이곳 중환자실에 있었어...

이곳, 의료진, 권역외상센터, 중환자실 모두 도움으로 우리 남편이 살아났어!'


직접 듣지 않았어도 분명 이 보호자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가만 눈을 감고, 당시 그 환자를 상상해 본다.

아니, 정말 또렷이 기억난다.



2톤 철근에 골반을 깔려온 환자.

2톤이라면 상상이 안되는 무게이다. 내 몸에 그 무게가 깔아눌린다면 뼈, 근육, 혈관, 그리고 장기들이 모두 짓눌리고 터져버린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다.


하지만, 내 상식, 그리고 누구나 다 생각하는 그것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제아무리 1톤이라 하더라도, 사람 몸, 환자의 골반, 몸이 버텨주고 동시에 가족들이 함께 들어 올리면 살아난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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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생도 어떻게 보면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세면 버티는 거야."


이 환자가 버텨야 한다.

어떻게든, 어떤 방법을 모두 써서 버텨야 한다.


수많은 외력들이 이 환자를 괴롭히고 있다. 억누르고 힘들게 하고 있다. 그것들은 피, 출혈이 되고, 여기저기 감염, 폐렴 등이 있다. 그러나 그 많은 외력들이 이 환자를 짓눌러도 환자는 버텨야 한다.

버텨야지 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환자에게서 내력은 무엇일까?



환자 자신이다.

더해서 이 환자를 그렇게 사랑하고 걱정해 주는 모든 가족들이다. 아무리 외력 힘이 강하더라도 환자, 그리고 가족 모두 의지, 힘이 있다면 그것을 이겨낼 수 있다. 살 수 있다는 희망, 반드시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그 이유다.


'덜컥' 무너지는 힘이 또 환자에게 닥친다.

또 다른 합병증,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도 환자는 버텨낸다. 내력이 힘을 더 내기 때문이다. 환자 내력을 도와주는 의료진이 옆에 있기에 힘을 낸다. 외상외과 의사 역할이 바로 이것이다.


"2톤 철근에 몸, 골반이 깔렸습니다."

"수축기 혈압이 70에서 잡힙니다."


그렇다. 너무나 무겁고 큰 외력에 골반이 처참하게 무너져버렸다. 무거운 철근이 내리꽂는 그 순간, 힘이 가해지고 동시에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더 떨고 있을 것이다. 그 엄청난 외력을 환자는 이겨냈다. 가장 처음 맞이하는 외력의 무서움을 환자는 온몸, 골반으로 버텨낸 것이다. 두려움, 고통과 싸움을 하나씩이겨내고 있다.



2차적으로 병원에서 또 다른 외력과 싸움을 가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이렇게 쉼 없는 외력과 내력의 싸움으로 환자는 버텨주고, 조금씩이겨내고 있다. 이렇게 죽음 글자에서 조금씩 더 멀어져 가고 삶, 살아난다는 희망에 더 가까이 가는 길이다.



3.

언제든지 상식, 이미 알고 있는 것은 바뀔 수 있다.

만약에, 다시, 또한 반대로. 그런 말이 현실에서 나온다면 죽을 수 있는 환자도 다시 살아난 다는 것을 나는 또다시 알게 되었다.


환자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내력을 함께 버텨주는 것이 외상외과 의사 역할이다. 이 환자가 그 수많은 외력으로부터 힘이 빠지지 않게 도와주고 함께 버텨주는 존재다.


어떻게 보면 결국 환자가 살아나는 과정도 외력을 이겨내는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한번 무너져버린 내력도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함께 버텨주고 도와주는 누군가가 있으면 내력은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그래서 권역외상센터, 외상외과 의사 그리고 이곳 의료진들이 있는 이유이다.




경첩의사는 수많은 외력들과 매일 마주 선다.

막을 수 있는 사건, 사고들.

충분히 사고 이전부터 막을 수 있는 것들.

아울러, 조금 더 빠르고, 신속한 초기 처치, 이송들이 아쉬운 순간들.

또한 환자 보는 순간마다 아쉬운 자세, 태도가 있는 모습들.

이번에 발생한 합병증은 조금 빨리 처치를 하였다면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그런 외력들과 수없이 많이 마주 선다.

때로는 외상외과 의사, 경첩의사도 두렵다.

한꺼번에 쏟아지는 외력. 내 능력으로 버거운 외력들이 밀어닥치면 환자도, 나도 함께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이겨내야 한다.



'바람, 하중, 진동. 있을 수 있는 모든 외력을 계산하고 따져서

그보다 세게 내력을 설계하는 거야.

항상 외력보다 내력이 세게.'


환자에게 내력이 세게 도와주도록 함께 버텨줘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세면 버티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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