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울린 소방사 C 선생.

책을 읽고 책보다 더 감동의 편지를 보내오다.

by 경첩의사

작가를 울린 소방사 C 선생.





책이 나온 후,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셨습니다. 가장 먼저 나의 가족, 아내와 아들과 딸. 또 나를 잘 알고 있는 많은 친구들, 지인들이 읽어주었습니다. 책을 읽는 것뿐 아니라 속속 소감들을 보내주었습니다.




"책이 묵직하고, 내용도 알차고 감동이구먼..."



"작가가 중증외상센터 드라마를 비현실적이라고 안 본다고 썼는데 이낙준작가는 작가님의 책을 추천한다는 것만 봐도 얼마나 훌륭한지 알겠네 ㅎㅎㅎ "



"이렇게 사람 살리는데 진심인 외상외과교수님이 내 30년 지기 친구라니 자랑스럽소~"



이렇게 단 한 문장이라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https://brunch.co.kr/@mdearnest/153



어제 나에게 장문의 편지가 왔다.

나를 울린 소방사 C 선생.




한참 동안... 계속 읽고 또 읽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가슴 뭉클하고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베스트셀러 작가를 울렸으니, 분명 C 선생도 베스트셀러 작가의 능력이 어딘가에 숨어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C 선생에게 책을 선물하였습니다.



C 선생은 몇 해 전 나와 함께 이곳 병원에서 2년간 함께 일한 당시 응급구조사 선생이다. 지금은 이곳 인근 지역에서 구급 대원으로 근무 중인 소방사 C 선생이다. 함께 일한 2년 동안 나와 함께 많은 환자들의 초기 처치들을 도와준 선생이다. 덩치는 듬직하지만 편지에 쓴 것처럼 내성적인 모습으로 기억이 된다. 하지만 나와 함께 중증외상환자의 초기 처치를 하는 동안은 누구보다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고 나를 도와주었던 C 선생이다. 이곳에서 2년간 근무를 하고 떠나는 날, 나는 누구보다 아쉽게 느껴졌다. 하지만 시험 준비를 잘 하여 C 선생은 당당히 구급 대원이 되어, 이제는 현장에서 환자들의 초기 처치, 이송을 담당한다.





"

말씀하신 “스타 의사”는 아니지만 촌에서 농사일을 도우며 자랐던 저에게는 고추농사를 도와주시던 효자이시자, 무엇이든 알려주셨던 저만의 스승님, 그리고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사고를 누구보다 가엽게 여기셨던 마음 따스한 교수님께

매일 완생을 향해 달려가는 저와 교수님의 미생을 응원하며, 하루하루가 시험인 교수님의 "시험지" 위에 항상 "위닝"이라는 성적표를 받는 매일을 기도드리겠습니다.


"

이 문단을 읽고, 또 읽었다.




C 선생은 내 책을 받고 단숨에 읽고 그 감정을 모두 고스란히 키보드를 누르며 표현하였다고 나에게 말하였다. 그 모든 감정을 글을 읽는 나에게 고스란히 다가와 나를 울렸다.



이것은 여담이지만, C 선생에게 내가 처음 글쓰기를 하였던 시기에 매번 반복하였던 문장의 매끄러움을 다듬는 것, 문장을 짧게 쓰는 연습 등을 더해지면 나와 같은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C 선생에게 작가가 되는 길, 글 쓰는 노하우를 전수해 주고 싶다.








편지의 원문입니다.

C선생의 허락을 받아 전문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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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교수님의 회고록이자 일기장이며 저에게는 과거의 나를 행동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 그리고 앞으로의 나아갈 길을 안내해 주는 가로등 같은 책인 것 같습니다.



교수님의 살아오신 시간 속 다양한 "면" 들을 볼 수 있게 된 시간들이었습니다.

어린 학생 시절의 "면" , 의사로서의 "면" , 아버지로서의 "면".




문뜩 병원에서 교수님의 모습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응급 외상환자의 보호자에게 냉정하지만 침착하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한마디의 말. 급한 상황이었기에 CPR을 하기 위해 뛰어가며 들었던 찰나 그 말 한마디의 무게를 소방관이 되어서, 구급 대원이 되어서야 어떤 의미인지 조금이나마 체감하고 있습니다. 임상에서의 수만 번의 경험과, 마음속에서 수만 번의 수 싸움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뱉을 수 있는 무거운 “책임감” 을 짊어진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말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바이탈이 떨어지는 환자를 이송하며 보호자는 한낱 구급 대원인 저에게 묻습니다. 괜찮겠죠 선생님?... 우리 남편, 또는 아들 괜찮겠죠?. 그때마다 저는 수없이 일상에서 뱉어댔던 "괜찮습니다"라는 말을 감히 함부로 뱉을 없다는 것에 깊은 좌절과 제 무지한 능력에서 나오는 한심함을 다시금 느끼곤 합니다. 그럴 때면 교수님이 제 옆에 계셨으면 하는 마음까지 들 곤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럴 수 없기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말을 전해드리곤 합니다. 저 또한 제 자리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리라 마음먹으며.




구급 대원이 되고 나서 망자를 대할 때, 이미 사망하신지 시간이 오래되어 강직과 시반이 함께 보일 때, 또는 너무 심한 외상으로 뇌탈출, 주요 부위 절단과 같은 환자들. 제세동기 패치를 부착하고 무수축 상태의 미동 없는 평평한 심전도를 관찰하고 바이탈 측정하며 맥박과 혈압이 0에 수렴해 있을 때면 저는 가끔 병원에 있을 때 교수님들 모습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00시 00분 환자 사망하였다는 무거운 한마디를 전하는 그 모습을 말입니다. 의료지도의사에게 전화하여 상활 설명 후 수화기 넘어 들리는 "네 유보하세요"… 이후 현장에서의 설명은 오롯이 구급 대원의 역할입니다. 아직까지도 저는 그런 환자들을 현장에 두고 나올 때면 보호자들께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다른 단어는 떠오르지 않기에. 다만 이 책에서 말씀하신 역지사지를 통해 저도 가족분들께 저만의 방법을 찾아 어렵지만 작은 위로를 꼭 전해야겠습니다.




책을 다 읽고 보니 병원에서의 기억들이 하나 둘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회복된 환자의 이야기를 OR 방 앞 좁은 컴퓨터 자리에서 아이처럼 행복 하해시며 들려주셨던 일들 또한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병원에서 저의 역할은 교수님께서 짊어지고 계신 "책임"이라는 무게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은 역할이었지만 작은 한 조각 건빵만큼의 무게라도 도와드릴 수 있었다는 것에 기쁨과 영광의 시간이었다는 것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내성적인 저는 병원에서 항상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가끔 근무가 겹칠 때면 반갑게 맞이해 주시던 교수님의 인사가 생각납니다. "오! 최 선생! 오늘 근무인가?!"라는 반갑고 따스한 그 인사말, 구내식당에서의 종종 아침을 함께 하며 "많이 먹어 최 선생!" 하시던 말씀, OR 방 수처 어시가 필요할 때면 "최 선생!!" 하고 찾아주시며 주셨던 순간들, 가르침들. 교수님은 모르시겠지만 내심 교수님이 당직이신 날이기를 바란 적도 많았습니다. 그 순간의 온도들이 저를 2년 동안 응급실이라는 차가운 곳에서 버틸 수 있게 해준 한 잔의 달큼한 믹스커피 같은 따스한 온도들이었습니다. 다시금 교수님이 내어주신 온도들을 기억하며 본분을 잊지 않는, 제 자리를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는 “바보” 같은 구급 대원이 되어야겠다며 다짐해 봅니다.




말씀하신 “스타 의사”는 아니지만 촌에서 농사일을 도우며 자랐던 저에게는 고추농사를 도와주시던 효자이시자, 무엇이든 알려주셨던 저만의 스승님, 그리고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사고를 누구보다 가엽게 여기셨던 마음 따스한 교수님께

매일 완생을 향해 달려가는 저와 교수님의 미생을 응원하며, 하루하루가 시험인 교수님의 "시험지" 위에 항상 "위닝"이라는 성적표를 받는 매일을 기도드리겠습니다.



값진 글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 새 책 출판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추운 겨울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하셔야 합니다.



-소방사 C 올림-







작가를 울린 소방사 C 선생.


'나를 성장하게 한 것은 오로지 사람이었다.'


바로 이 책을 읽고 작가를 울린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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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성장하게 한 것은 오로지 사람이었다 | 문윤수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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