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첩의사 Feb 15. 2023

사모님 물 주세요

'기브미 더 초코렛' 그 반세기 후.


'기브미 더 초코렛' 그 반세기 후.



한눈에 봐도 외국인 청년 노동자다. 온몸이 피범벅 되어 신음 소리만 낸다. 공사현장에서 추락해서 이송된 환자이다. 권역외상센터에 온 어느 국적, 나이 상관없이 모두 꼭 살려야 하고, 살 기회를 공정하게 얻어야 한다. 의료진이 달려들어 몸 안에 굵은 혈관을 꽂고, 전신 씨티 검사하였다. 골절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모든 부위에 골절이 있다. 머리뼈, 안면부, 양측 팔, 손목, 그리고 양 무릎까지. 설상가상으로 머리 안과 뱃속 출혈과 장기 손상이 있다. 골절 때문에 생사가 달라지지는 않으나, 머리와 뱃속 출혈로 생명은 순식간에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 다행으로 머릿속 출혈은 당장 수술할 정도가 아니기에 복부 수술에 집중하면 된다. 수술 직전 함께 일하는 사장님에게 청년의 건강 상태에 대해 질문하였다. 사장님은 청년과 함께 일한 지 이틀밖에 안 되어 우즈벡 청년이라고만 안다고 한다.





총 5번 전신마취, 7 부위 수술하였다. 말이 쉬어 5번, 7 부위지 정상적인 사람이라도 한 번 마취와 수술이 부담되는데 복부 출혈과 뇌출혈을 동반한 두개골 골절수술을 포함한, 말 그대로 중증외상이다. 열흘에 걸쳐 청년은 인공호흡기에 의존하여 수면제, 진통제를 사용하며 잠든 채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잡고 견디었다. 다행히 잘 버텨주고 마지막 고비인 인공호흡기 이탈까지 무사히 잘 따라주었다. 의식도 돌아오고 스스로 가래를 뱉고 의사소통이 가능한 상태까지 회복하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청년은 한국에 2년 전에 들어와서 우리네 청년들이 하기 힘든 일을 하고 있었다. 의식 회복 후 처음 청년에게 건넨 질문은 ‘우즈벡 사람이죠?’이다. 청년은 "나는... 카자흐 사람입니다."




카자흐스탄 청년은 점차 회복하여 말하기 시작하였다. 가장 처음 청년의 말은 "물 주세요!" 이다. 2주 동안 잠자면서 오로지 혈관으로만 들어가는 수액으로 버텨왔던 청년은 제아무리 수액에 영양성분들을 충분히 주더라도 본인 스스로 입을 통해 먹는 물과 밥만은 못하다. 제대로 의식 회복도 안 되었고, 더군다나 복부 수술까지 한 상태이기에 인공호흡기 이탈 후 최소한 시간이 지나 물과 음식물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청년은 같은 말만 반복한다." 물 주세요…. " 애절하게 같은 말을 반복하는 이 카자흐스탄 청년에게 "가래 잘 뱉으면, 꼭 물 줄게요, 약속! " 이란 말을 반복하였다. 내일 꼭 이 청년에게 시원한 물을 벌꺽 마실 수 있다는 약속 하였다. 그날 밤 청년은 중환자실에서 본인을 간호해 주는 간호사에게 한 번 더 간절히 말하였다. "사모님! 물 주세요!" 그렇다. 이 청년은 한글을 극존칭으로 배웠다. 오래전 한국전쟁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Give Me the Chocolet!" 라는 말이 떠올랐다.






긴 치료 여정의 고비들이 하나씩 넘어가고 있다. 의료진들이 하는 몫은 점차 줄어들고 이제 환자 스스로 하고 옆에 지켜주는 가족이나 간병인 몫이 중요하다. 다음 단계는 바로 일반병실로 올라가야 한다. 일반병실로 가는 날 청년과 같은 말을 쓰고 있는 애인이 나타났다. 청년보다 훨씬 나중에 우리나라에 온 애인은 이곳에서 둘은 부부처럼 지낸다고 한다. 환자와 간병인에게 치료 경과와 앞으로의 치료를 설명해야 한다. 애인은 한국말도 서툴고, 영어도 안되어 정말 난감한 상황이었다. 모니터 앞에 두고 청년의 부러진 뼈들과 수술 후 철심들이 박혀있는 사진을 보며 손발 짓과 구글 번역기 힘도 빌어 설명해 주었다. 조금은 심각성을 이해했는지 애인은 약간 시무룩한 상태가 되었지만, 그래도 서로 의지할 데라고는 두 남녀밖에 없는 상황에서 옆에 계속 있다는 것만으로 다행으로 생각하는 눈치였다.



고민 끝에 모니터에 한 글자 한 글자 부탁하고 싶은 사항들과 간병 내용을 적었다.


그것을 구글 번역기로 '카자흐어' 번역하였다. A4 한 장에 프린트해 병실에 있는 애인에게 가져다주었다.





 이방인에게 본인 모국어인 카자흐어가 적힌 종이를 보자 애인은 씩 웃음을 보이며 엄지 척하였다.



 ‘어서 빨리 나아서 결혼하세요. 돈도 많이 벌어서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가세요. 행복하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손 떨면서 봉합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