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한번 물어봤지만 다시 용기를 내어 물어본다. 물론 나도 아직 정확히 나의 진로를 결정하기 못한 상황이었고 이리저리 고민이 많은 시기였다.
"이제 슬슬 세부 전공을 정해야 할 시기인데, 외과 분야 중 유방외과에 조금 관심을 가져보고 앞으로 내가 해보려 하는 것에 대해,
아내 의견은 어떠신가요?"
하지만 이번에도 아내는 나를 한번 째려보고 같은 대답을 한다.
'어떻게 다른 여자 가슴을!'
( 말에 숨은 더 정확한 표현은 '어떻게 다른 여자의 유방을' 일 것이다 )
확실한 신념, 믿음이 없었기에 결정에 앞서 여러 사람들 의견 그중에서 가족 의견이 가장 중요하기에 아내에게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지난번과 다른 반응을 내심 기대했지만 같은 반응, 그리고 이번에는 조금 더 단호하게 반대 의견을 표시한다. 일말의 여지, 상의할 수없이 내 선택지에서 하나 엑스표가 그려지게 되었다.
십여 년도 훌쩍 지난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당시 내가 정확하게 유방외과의사란 어떤 역할을 하며 미래에 대해 아내에게 설명을 하지 못하고 막연히 이야기한 것 같다. 가장 중요한 당직, 야간근무를 안 한다는 장점을 정확히 설명 못하였다. 한 달에 십여 차례 집을 비우는 당직 근무를 하는 남편의 현실을 지금 알고 있는 아내에게 그 당시 질문을 지금 다시 한다면 두 팔 벌려 환영할 것이다.
물론 그 당시 나도 관심이 적은 분야이기에 당시 유방외과 의사가 정확히 하는 일과 향후 전망에 대해 깊은 고민 또한 부족하였다. 그러나 여러 차례 아내 반응에서 변함없는 것은 '어떻게 다른 여자의 가슴(유방)'이라는 것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짬뽕과 짜장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처럼 수많은 선택 순간이 있다. 외과 전문의가 된 후 많은 갈래 길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오래전 초창기 외과 전문의는 모든 분야 수술을 전천후로 다 수술하였으나 사회가 세분화되는 것과 같이 외과 안에서도 세부전문의로 나뉜다.
외과 전문의는 주로 복부 내부, 유방, 갑상선, 혈관 분야에서 환자 치료에 있어 수술적 치료도 함께 할 수 있는 의사를 말한다. 더 정확히는 위, 간담췌, 대장 항문, 혈관, 유방, 갑상선 그리고 최근에는 외상외과, 중환자 외과도 추가되었다. 외과 전공의 과정을 4년(지금은 3년)을 마치고 전문의가 된 후 세부전공을 정한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분야를 다 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실상은 한 분야도 정확히 하기에 해야 할 것도 공부할 것도 많다. 나는 이 중에서 현재 하고 있는 외상외과를 하고 있다.
벌써 10년도 훨씬 전 일이다.
'아덴만 여명작전'이라는 석 선장님 총상 사건이 2011년에 있었다. 이 즈음이 내가 진로 고민에 가장 머리를 쥐어짜고 있던 시기였다. 사건과 그리고 이어 나온 사회적 분위기, 아주 조금이지만 정치권에서도 법과 제도로 지원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그즈음이 외상외과가 본격 태동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많은 외과 세부 분과에서 고민하던 당시 나.
단호하게 유방외과를 거절한 아내 의견, 그리고 선배 외과의사와 함께 고민하고 모 교수님께서 강력한 이끎 마지막으로 사회적, 정치적 분위기와 지원책 등이 합쳐져서 결정을 하였다. 짜장을 선택하고 건너 테이블에 짬뽕 국물에 슬쩍 눈이 간다. 마찬가지로 내가 선택하고 지금도 걷고 있는 외상외과의사인 나에게도 멀리 보이는 짬뽕 국물과 같은 다른 세분 분야 외과에 대한 견눈짓이나 만약이라는 가정을 간혹 한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외과를 선택하고 시작한 20여 년간 외과의 매력 그리고 외과의사의 자존감은 변함이 없다.
2.
아침 해가 뜬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하루 시작을 알리는 일출이다. 그러나 나에게 일출은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다가온다는 의미다. 다행히 어젯밤 수술한 중환자실에 있는 환자가 혈압도 안정화되고 있다. 아침 8시간 공식 업무 교대 시간이다. 물론 8시가 땡 하고 하던 일을 다 놓고 집으로 절대 갈 수 없다. 가장 최우선은 환자가 안정화되어야지 내 발걸음이 집으로 편하게 향할 수 있다. 그래야 남들 일하는 낮 시간에 부족한 잠을 채우는 꿀잠을 잘 수 있다.
병원 복도에서 다른 외과 전문의 선생님을 만났다.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보며 출근하신 외과 선생님이다. 나는 이곳에서 밤을 지세며 수술을 하고 환자를 보며 어제 아침에 들어온 건물 안에서 아직 26시간째 있다. 의대 입학 시절부터 25년간을 알아온 절친 사이인 두 외과의사다. 눈빛만 봐도 서로의 상태, 더 나아가 각자 담당 환자 상태까지 알 수 있다. 마주 오는 외과 선생님은 나를 보자마자 어제 당직에 고생하셨다고 안타까워하며 격려의 눈빛을 보낸다. 그래도 동기 외과 전문의 선생님이 함께 근무하는 병원에 있으나 내가 급한 상황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사람의 가슴과 복부 내부 공간과 골반뼈 사이, 더 나아가 대퇴부까지 한번 출혈이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이 많이 난다. 팔다리에 작은 상처 나 피가 나는 출혈은 압박을 통해 어느 정도 지혈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나 흉강, 복강, 골반강에 해당하는 곳의 출혈은 한번 놓치면 환자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이런 환자는 수술을 결정하기에 앞서 몸에 여러 관을 꽂고 대량 수혈을 시작하고 대부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한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대량 출혈과 상태가 안 좋은 환자는 일반인들이 쉬는 야간 시간이나 휴일에 더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유방질환도 호르몬 등 여러 원인에 의해 점차 증가를 하는 추세이다. 만약 유방 질환을 수술하는 경우 일부 피부를 절개하고 문제 되는 부분을 제거하는 조직 검사를 겸하는 수술이 있다. 더 질병이 진행하고 암이 되는 경우 유방 전체를 제거하고 필요시 겨드랑이 부위에 임파선까지 제거하는 수술도 한다. 이런 수술의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암, 병변을 정확히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며 나아가 출혈을 최소화하고 신경 손상을 없게 하고 마지막으로 상처를 최소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훌륭한 유방외과 전문의가 수술을 하는 경우 유방 수술을 하면서 수혈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본다. 또한 수술을 시행하고 회복, 퇴원까지 경과는 대부분 수일에 걸쳐 빠르게 회복한다. 하지만 안타깝게 유방암의 병기가 높은 경우에는 항암치료나 방사선 치료를 오랜 기간 하기도 한다. 유방에 관련한 환자들의 치료, 수술 등의 과정은 대부분 낮시간에 이루어진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다. 또한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응급상황이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고 야간, 휴일에 문제 돼서 유방외과의사가 다시 병원으로 불려 나오는 것도 희박하다.
3.
언젠가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
'지금이라도 유방외과로 세부전공을 바꿀 생각이 있는지요?'
만약 한 7-8년 전이라도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잠시 고민을 해보겠다고 말하겠지만, 지금은 고민도 없이 바로 고개를 저으며 전혀 유방외과에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인생을 살면서 수없이 진로, 직업을 바꾼다.
철새처럼 수시로 정당을 바꾸는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결국 정치인 본인 사리사욕과 명예를 위해 정당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이합집산을 한다.
외상외과의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어느 것을 위해 살고 있는지?
아직도 나는 처음 외상외과의사를 선택한 순간부터 그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중증외상환자를 보면서 그 답들을 찾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