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력자 그리고 만두 만들기
1.
고향집에서 만두를 빚는다.
겨울철, 설날 즈음하여 온 가족이 모여 만두를 만든다. 미리 만두피를 만들 밀가루 반죽을 숙성을 시킨다. 본격적으로 만두 속에 들어갈 재료들을 준비한다. 숙주, 김치, 당면, 고기, 두부, 야채 등 갖은 재료들을 익히고 자르고, 다져서 맛깔스러운 만두 속에 들어갈 재료를 준비한다. 이런 준비의 과정은 거의 대부분이 엄마의 몫이다. 수십 년간의 요리 실력을 닦으셨고 그만큼 베테랑 요리사의 솜씨를 자랑하신다.
이제 본격적으로 만두를 만드는 과정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내가 역할을 하는 시기이다. 숙성된 밀가루 반죽을 밀대로 밀어, 만두피를 하나씩 만드는 것이 나의 주된 역할이다. 만두피가 하나씩 만들어지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만두를 빚는다. 만두피에 미리 만들어놓은 만두 속을 넣고 각자의 취향대로 만두를 빚는다. 손자, 손녀들은 제각기 동물 모양의 만두부터 왕만두까지 다양하게 만든다. 그 옆에서 살짝 시어머니 눈치를 보는 며느리와 딸은 내가 만든 만두피가 굳어버리기 전에 열심히 만두를 빚는다.
열 개도 넘는 손들이 움직이니 어느 순간 만두 수십 개가 만들어진다. 쟁반 가득 만들어진 만두를 찜통에 찌는 과정은 다시 엄마의 몫이다. 이내 찜통에 다녀온 만두는 너무나 먹음직스러운 만두로 빛을 보게 된다. 이어 각자, 자기가 빚은 만두라고 맛있게 들고 먹기 시작한다. 좋은 재료와 정성의 손맛들 그리고 갓 찌어낸 따뜻한 만두의 맛은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이 일련의 과정 온 가족이 모여 서로의 역할과 함께하는 즐거움으로 음식이 탄생하는 것이다. 일련의 과정에서 사람들은 때로는 반죽을 만들고 밀대를 미는 반복되는 동작에서 상품화된 만두피에 대한 그리움, 각각의 재료를 썰어야 하는 팔의 고달픔 등이 있다. 또한 만두를 만드는 과정에서 만두가게에서 돈만 지불하면 뚝딱 만들어지는 만두가 내심 생각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갓 찌어낸 맛있는 만두가 입안에 들어가는 순간 이 모든 잡념, 후회들이 사라진다. 가끔은 엄마 혼자서 오로지 이 모든 과정, 반죽부터 만두 속, 만두를 빚고 찌는 것을 다 하시기도 한다. 하지만 온 가족이 둘러 모여 밀대를 밀고 열 개 넘는 손이 모여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만두의 맛이 두 세배 더 맛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처럼 만두를 만드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의 손들이 힘을 거들고 손맛이 모여야지 더 훌륭한 만두 맛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2.
화창한 주말의 어느 날, 119를 통해 20대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실려 왔다.
119 구급대원 말로는 자전거를 타는 도중 25톤 트럭에 치였다고 한다. 아무리 그림을 그려보고 머릿속 상상의 나래를 굴려보아도 나의 머릿속에는 상상이 안 된다. 영화 속에서나, 아님 만화의 한 장면 같은 것으로 밖에 상상이 되나, 그녀가 응급실 안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운 것을 본 순간 모든 것은 상상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왔다. 119 구급대원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녀의 한쪽 엉덩이부터 허벅지까지 피부가 잔인하게 벗겨져있었다. 겉모습은 피부가 벗겨져 있다고 말할 수 있으나, 25톤 트럭의 바퀴가 지나가며 그녀를 무참히도 짓밟아버렸다. 그녀의 피부만을 본 것뿐이지만, 나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골반부터 허벅지까지 그 안으로 골반 뼈와 장기, 근육까지 산산조각을 내버린 그녀를 생각하며 치료를 시작하였다. 양팔에 수액을 연결한 혈관을 확보하고 그것도 모자라 굵은 정맥에 관도 꽂고 수액과 피를 때려 붓기 시작하였다. 이미 겉모습으로 충분히 상상이 되지만, 정확한 검사를 통해서 안쪽의 상태를 평가하고 치료 방향을 잡아나가기 위해 CT 검사를 진행하였다. CT 검사에서 보이는 뼈와 혈관, 근육 상태 등을 보면 더욱 암담한 상황이었다. 검사를 진행하고 결과들이 하나씩 나오면 무언가 치료의 방향이 잡혀나가야 하는데, 더욱 암담하고 절망스러운 상상밖에 안 들었다.
순간, 그녀는 더욱 소리를 질렀다. 한쪽 다리, 골반 반쪽이 잘려나가는 고통을 호소하면서 비명을 질렀다. 비명을 지르다가 지쳐 그녀는 이제 소리조차 낼 힘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pain shock(통증쇼크)라고 부르는 것인 온다고 하는데, 정말로 그녀가 피도 나지만 고통에 쇼크로 더 위험해질 것 같아 보였다. 나는 그녀에게 말한다.
“이제 고통스럽지 않게 해 줄게요. 자게 해 줄게요.”
그녀의 혈관을 따라 약을 들어가고 이내 잠든 그녀의 목구멍에 나는 관을 넣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근이완제까지 추가로 주었다. 그녀의 머리와 근육까지 모두 계속 잠들게 하는 것이 그녀의 치료이고 그녀를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비명 소리는 이제 없고, 그녀가 살아있다고 알려주는 모니터 알람소리만 울리고 있다.
이제 진짜 치료와 전쟁의 시작인 것이다. 살기 위한 치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치료를 결정하고 하나씩 매듭을 풀어나가야 한다. 짓눌리고 벗겨진 피부들, 제자리를 벗어난 근육들, 뒤틀리고 깨져버린 골반 뼈들, 출혈도 여기저기서 계속되는 상황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살아가야 할 치료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
나의 머리 안의 뉴런들이 서로 부딪히고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나의 손과 발도 여기 저기 움직이고, 입으로 여기저기 지시를 내린다. 자그마한 공간에 누워있는 그녀의 주위로 많은 사람들의 각자의 역할을 한다. 암울함과 강건함 마음이 공존하는 나와 그녀를 중심으로 간호사 여러 명과 응급구조사, 영상촬영 기사 등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각자의 역할을 하며 분주히 움직인다. 장기간의 치료, 수술, 중환자실에서 꼭 필요한 소변 배출을 도와주고 측정해 주는 방광에 삽입하는 도뇨관을 넣기 위한 비뇨기과 교수도 호출을 하였다. 여러 사람의 손길이 들어가도 안 되던 도뇨관이 역시나 비뇨기과 교수님의 손을 알아보는지 한 번에 삽입이 되었다. 나는 속으로 다행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나의 한숨과 함께 그녀의 길고 긴 삶과 죽음과의 낭떠러지에서의 사투가 시작되었다.
그녀는 몇 달 뒤에 살아서 내 앞에 돌아왔다. 나의 손을 거치는 몇 주간의 시간과 또 다른 곳에서 그녀는 낭떠러지에서 떨어지지 않고 끝을 잡고 살아났고, 다시 목소리를 내었다, 이번에는 비명 소리가 아닌, 방긋 웃으면서 감사의 인사를 하는 순간 가슴 깊이 감동이 솟구쳤다. 나는 그녀의 마지막 비명소리가 그녀가 이생에서 마지막 목소리가 되었다고 믿었던 지난 몇 달 동안 간사한 생각에 미안함이 들었다. 나는 그녀와 그녀를 지켜주는 남편과 셋이서 방긋 웃으면 셀카를 찍었다. 그리고 그 사진을 나의 조력자들에게 보여주고 함께 감동을 나누었다. 외상외과의사의 살아있는 보람 그 자체이다.
3.
나의 하루하루 일상은 매일 만두를 만드는 것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매일 마다 맛있는 만두를 빚고 찌어내는 것은 못하지만, 하루하루 그 과정을 하다 보면 생각지 못한 맛있는 통만두가 떡하니 만들어진다. 그 과정은 감동이고 보람이다.
조력자란 영어로 helper, assistant라고 말한다. 쉽게 말하여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나도 평생 도움을 받고 또한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그것이 인생이자, 사람을 살리는 길이다.
나의 동료 몇 명이 떠나는 상황에 갑자기 만두가 생각이 났다. 음식점에서 따끈하게 데워서 나오는 만두가 아닌, 고향집에서 모든 재료부터 손수 만들고 빚는 일련의 과정들이 생각이 났다. 많은 손과 손맛이 모여 맛있게 만들어진 만두가 입안으로 쏙 들어가는 것을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지만 각자가 속해진 사회에서 개인들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그동안 나와 함께 한 조력자들이 나와 함께 이제는 만두를 만들지는 못하지만, 어디서든지 훌륭한 역할을 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