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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첩의사 Aug 27. 2024

환자가 소리 지른다.   "똥 마려워서 죽겠어요!"

"똥 마려워요!"




환자가 소리 지른다.   "똥 마려워서 죽겠어요!"





 1. 



 "똥 마려워요!"



 환자가 큰 소리로 외친다.


한 번 더 말한다.



"똥 마려워서 죽겠어요!"



방금 전까지 배가 아프가고 소리치던 환자가 말을 바꾼다.



교통사고, 핸들에 배를 부딪혀 온 환자다. 사고 충격이 차체, 핸들을 거쳐 뱃속으로 전달되었다. 좋은 에어백이 있다 하더라도 복부 내부 장기에 심한 충격이 분명 갔을 것이다. 일반적인 환자가 아니라, 방금 전까지 환자는 술을 마시고 사고가 난 상태이기에 알코올과 통증이 혼재되어 의식이 불분명하다. 분명 이름과 나이는 말을 하지만, 정작 중요한 통증에 대한 정확한 반응, 표현이 자주 변한다. 


외과의사의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 손을 눌러서 압통, 반발통이라고 하는 진단적 검사를 해야 하나, 이 환자에게서는 절대 불가능하다. 하는 족족 아프다, 안 아프다를 반복한다.




 마술 카메라, 투시경 같은 것이 있어 뱃속을 훤히 들여다보면 좋으련만, 방법이 없다. 물론 검사, 외과의사 손으로 진찰하며 느끼는 압통과 반발통이 진단에 도움이 된다. 물론 최근 CT 검사 정확도가 좋아져서 조그만 장기 손상, 출혈을 잘 찾아낼 수 있다. 눈에 확 띄는 출혈, 장기 천공 등은 쉽게 진단, 빠른 수술 결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문제는 결정이 애매하고, 수술 결정을 속단하기가 어려울 경우가 많다. 이 환자의 경우, 전신마취를 위한 금식도 안되어 있는 상황이기에 섣불리 빠른 수술 결정으로 마취 합병증이 발생한다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고민고민, 또 생각하고 확실한 판단을 해야한다.





2.



 다시 환자 CT를 살펴본다.



5분 전까지 나는 이 환자 치료 방향을 우선 입원하고 경과 관찰하기로 정하였다. 단순 경과 관찰이 아닌, 지속적으로 환자 상태를 살피면서, 수시로 배에 손을 올려 진찰, 압통과 반발통을 평가하고, 시간 간격을 두고 혈액검사, 필요시 CT 검사도 다시 하기로 정하였다. 언제든지 수술 결정을 하기로 생각하며 환자를 집중 관찰하기로 결정하였다.



 혈압이 뚝 떨어지는 환자 혈역학적 상태, 검사 상 확실한 출혈이나 천공이 보일 경우 등 100% 상황에서는 누군가 수술을 신속히 결정, 시행한다. 하지만 비수술적 치료, 즉 약물 치료, 경과 관찰로 치료가 가능할 경우에는 수술을 무리하게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시간은 조금 흘러 새벽 3시를 넘어가고 있다.


내 몸에 저장된 글리코겐, 포도당 모두 고갈되어, 뇌 안에서 판단력이 점차 흐려지고 있다. 환자가 아프다는 것보다 이제는 내 몸과 마음을 걱정해야 할 시간이다. 방금 정신이 혼미하다. 순간 어질어질하고 이러다가 내가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순간이 가장 서글프고 서럽다. 정말로.




한 번 더 환자가 소리친다.


"똥 마려워요!"



다시 한번 화가 불쑥 나면서, 이 환자가 술 마시고 이상하게 교통사고 나서, 뭔 난리를 치는가 하는 괘씸하고 야속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순간 너무 이상하고 묘한 고민이 든다. 내 판단이 맞는지 다시 환자 CT를 본다. 방금 전까지 십여 번 본 화면에서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공기가 보인다. 까만 점. 바로 그것이다. 



나도 모르게 소리 지른다


프리에어!!!



free air  다른 말로 '유리 공기'라고 말한다.






 [ 유리 공기 : 복부 장기 손상, 천공이 있을 경우 씨티 검사 소견상 장(위, 소장, 대장) 이외 복강 내 공기 음영이 보이는 것을 말한다. 정상적인 복부 씨티 소견은 장 내부에만 공기 음영이 보여야 한다. ] 





순간 잠시 내가 착각, 몸과 마음이 지쳐 십여 분간 다른 판단을 한 것이었다.


너무나 작은 공기 몇 개가 보이는 상황이다.


정상적으로 보이지 말아야 할 곳에 보이는 유리공기.


더 고민할 필요도 없고, 즉시 해야만 한다.


결정. 그리고 수술




시간은 새벽 3시 넘어가는 순간.


모든 판단은 오로지 나 혼자만 해야 한다. 누구 상의할 사람도 없다. 이 시간에 혼자 있는 외상외과 의사, 그 고통과 번뇌 시간이다. 다시 환자 옆으로 가서 방금 보았던 그 공기가 있는 배 주위를 눌러본다. 확실히 아까보다 다른 압통, 반반통이 있다.



더 이상 고민을 하면 안 된다.


해야 한다. 




수술을 결정하였다.


마취과, 수술실 준비가 필요하다.



배를 개복한다.


장 천공, 출혈 



맞았다.


마지막 판단, 수술 결정이 맞았고 잘 한 것이다.



환자가 말한 그 한마디


"똥 마려워요!" 



그 한마디가 정답이었다.




음주, 고통 그리고 뇌출혈로 의식 저하. 


모든 것이 안 좋은 상태, 환자의 진찰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몸 자체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똥 마렵다.



복부 장기, 소장과 소장 주위를 싸고 있는 막이 천공, 출혈되어 그 장내 내용물, 출혈이 배 안에 고이기 시작한다. 그것이 복부, 특히 하복부 대장, 직장 주위를 자극해서 환자가 대변이 마렵다는 증상을 호소한 것이다.


물론 간혹 심한 음주 후 일반적인 대변 활동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반드시 누워서 대변을 보기 힘든 상황 표현이라고 보기 힘들다. 





3.



 환자에게서 정답이 있다.



 병원 내 복부 영상검사, CT 판독을 너무나 잘 하시는 영상의학과 교수님이 계시다. 이십여 년간 많은 도움을 받는다. 임상, 실제 환자를 보는 입장에서 환자 상태에 대한 최종 진단, 치료 결정에 있어 영상 검사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중요하다. 하지만 영상 검사 결과로 치료를 모두 결정하지는 않는다. 반드시 환자 상태가 최우선이다. 이 영상의학과 교수님을 직접 찾아가서 자문을 구하는 자리에서 나는 항상 환자 상태, 사고 경위나 통증 정도 등 가급적 정보를 많이 제공한다. 정보 제공도 있지만 환자 상태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치료 방향 결정에 가장 합리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다. 




모니터에도 길, 정답을 찾아가는 방향이 있지만, 정답에 가장 가까운 길을 환자에게서 나온다.



 환자에게서 정답이 있다.


결국 모든 정답은 환자가 말하고 표현한다.


제아무리 술에 취하고, 뇌출혈로 의식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환자 자체는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멀리서 찾지 말고 환자에게서 정답을 찾아야 한다.



똥 마려워요



결국 정답은 환자에게서



오늘도 경첩의사는 환자 한마디 한마디를 경청한다.


그리고 환자에게서 배운다. 



경첩의사의 경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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