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길 때문에 멈추는 게 아니라 말 한마디에 멈춘다.
여행 전날 밤, 남편과 짜파게티를 끓여 캔맥주를 기울였다.
별것 아닌 저녁이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느슨해졌다.
기분 좋은 밤이었다.
깊이 잠든 줄 알았는데 눈을 뜨니 새벽 세 시.
다시 자기엔 어중간하고, 깨기엔 이른 시간.
알람을 맞추고 다시 눈을 감았다.
다음에 눈을 떴을 때, 시계는 6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난 6시 55분 서울역 광장에 도착했어야 했다. 이미 틀렸다.
“악, 여보, 6시 20분이야.”
세수도 양치도 없이 집을 나섰다.
옷을 집어 들고 가방을 둘러멘 채 현관을 나섰다.
남편의 오토바이가 있었다.
러시아워의 차들 사이를 남편은 요리조리 헤집고 달렸다.
신호위반을 몇 번이나 했는지 세다가 그만뒀다.
한 손으로 그의 허리를 붙잡고, 다른 손으로 가이드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울역이 만차라 중간 경유지는 없다고 했다. 어쩌면 도착하기 불가능한 시간.
오토바이 위에서 나는 생각했다.
남편에 대한 미안함, 늦잠을 잔 나 자신에 대한 자책.
그리고 버스를 놓치더라도,
이 순간 최선을 다해준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해야겠다는 다짐.
6시 58분, 서울역 광장.
관광버스 문이 열렸다.
올라타는 나를 보고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그 순간, 한 문장이 스쳤다.
조상이 도왔다.
남편의 조상일 것이다.
이 사람의 소박한 소원 하나를 위해,
새벽 도로 위에 길을 터주었을 것이다.
버스 안 가이드의 목소리는 까랑까랑했다.
풍경 설명보다 먼저 꺼낸 말은
단체사진과 인적사항 제출에 대한 안내였다.
이 여행은 지방자치제 후원이라
증빙이 필요하다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이 여행이 무엇을 중심으로 움직이는지 알 것 같았다.
가이드는 산이 험하니
무릎이 약한 분들은 아래에서 쉬라고 했다.
버스 안의 대부분은 어르신들이었다.
그 한마디에 상당수가 산행을 포기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청량사는
겁낼 만큼의 산이 아니었다.
오히려 문제는 따로 있었다.
필요한 말은 하지 않고,
불필요한 두려움을 건넨 것.
나는 속으로 말했다.
“여기까지 오셨으니, 한 번은 올라가 보셔도 좋을 풍경입니다“
그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겁을 주는 말은 사람을 멈추게 하고,
가능을 여는 말은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산길은 예전과 달라져 있었다.
산의 옆허리를 감싸듯 완만하게 이어졌고,
중간중간 데크길이 놓여 있었다.
누구나 걸을 수 있는 길이었다.
그 길을 걸으며 자꾸 아래를 떠올렸다.
주차장에 남아 있을 어르신들.
이 길을 보여드렸다면,
이 정도면 해볼 만하다고 말해드렸다면.
나는 그 생각에서 오래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문득, 나를 돌아봤다.
나는 그동안 상담을 하며
타인의 길을 설명하면서도
겁을 먼저 건넨 적은 없었을까.
모른다는 이유로
막연한 위험을 말하고,
가능을 닫아버린 적은 없었을까.
유리보전 앞, 탑 아래에 섰다.
허공에 기도를 올리면 한 가지는 들어준다고 했다.
백두대간의 끝자락,
기암괴석이 하늘에 걸린 자리에서
나는 조용히 소원을 빌었다.
기도를 마치자
구름 한 자락이 산을 넘어갔다.
힘차게 꼬리를 치며.
마치, 내 말을 들은 용 한 마리가
어딘가로 전하러 가는 것처럼.
날아가는 용의 뒷모습을 향해 추신처럼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이 풍경을 감당할 만큼의 글로 표현하게 해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