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는 우리의 예상과 다르게 온다.
내게는 조언을 잘 따르는 친구가 한 명 있다.
그 친구는 예전에 불면증으로 꽤 오랫동안 고생했다. 밤마다 천장만 바라보다 지쳐 잠드는 날이 반복됐고, 낮에는 늘 피곤에 찌든 얼굴로 살았다. 그때 나는 별생각 없이 백팔배를 해보라고 말했다. 솔직히 큰 기대를 했던 건 아니다. 그냥, 해볼 만한 걸 하나 말해준 정도였다. 혹시 모르잖아, 몸을 쓰다 보면 좀 나아질지도.
그런데 그 친구는 정말 묵묵히 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삼 년이 넘도록.
그 사이 불면증은 많이 좋아졌고, 얼굴빛도 달라졌다. 뭔가 안정된 느낌이랄까. 친구 스스로도 삶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어제는 오랜만에 그 친구를 만났다.
퇴근하고 동네 치킨집에서 치맥을 하면서 이런저런 근황을 나눴다.
요즘은 어떠냐고 물었더니, 친구가 웃으면서 말했다.
요즘은 새벽 2시면 눈이 떠진다고.
“응? 다시 불면증이야?”
“아니, 예전처럼 잠을 못 자서 깨는 건 아니고, 그냥 눈이 말똥말똥해져.”
푹 자고 일어나는 건데, 시간이 새벽 2시란다.
그래서 다시 자려고 노력은 하는데, 쉽지가 않다고 했다.
나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문득 궁금해졌다.
“그동안 백팔배 할 때, 무슨 생각하면서 했어?”
친구는 잠깐 웃더니 말했다.
“매일매일 더 나아지길.
이러다 보면 좋아지지 않을까.
하다 보면 뭐라도 바뀌겠지.”
그 말을 듣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천일쯤 공 들이면, 우주도 한 번쯤은 대답하지 않을까? 천지신명도 그 정도 정성이면 감화받지 않겠어?”
친구는 피식 웃었다.
약간 황당하다는 표정이었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예전처럼 불면 때문에 새벽 2시에 깨는 게 아니라, 푹 자고 개운하게 눈이 떠지는 시간이 새벽 2시라면… 그건 그 시간을 좀 써보라는 메시지 같아.”
책을 읽든, 공부를 하든, 명상을 하든.
아무것도 안 하던 때와는 다른 의미의 시간일 거라고 했다.
친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도 낮에 일해야 하는데, 새벽에 깨면 좀 피곤하지 않아?”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럼 새벽 2시에 깨면 지금 뭐 해?”
친구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내일 혹시 잠이 부족할까 봐, 다시 자려고 노력해.”
그 말을 듣는 순간, 뭔가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걱정하면서, 예전에 익숙했던 방식으로 돌아가려는 느낌이었다. 이미 충분히 잔 몸이, 스스로 새벽 2시에 눈을 뜨게 만든 건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더 나은 삶을 바라고 백팔배를 했던 너한테, 그게 맞는 선택인지는 모르겠다.”
이미 충분히 자고, 맑은 정신으로 맞이한 새벽 2시를 어떻게 쓸지는 이제 다른 문제라고.
그 시간은 실패가 아니라, 어쩌면 응답일 수도 있다고.
친구는 한참을 듣다가 말했다.
“난 한 번도 이걸 백팔배 수행의 응답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
그러고는 휴대폰을 꺼내 날짜를 계산해 보더니 웃었다.
“천 일이 훨씬 넘었네.”
나는 생각했다.
아마 응답은 늘 이런 식으로 오는 게 아닐까.
우리가 바라던 모양이 아니라,
조금 다른 삶을 살아보라고 건네는 방식으로.
불면증을 고쳐달라고 천일 넘게 빌었는데,
돌아온 건 ‘불면증 없는 삶’이 아니라
‘새벽 2시의 맑은 정신’이었던 것처럼.
친구는 이제 그 시간을 어떻게 쓸까.
다시 잠들려고 애쓸까, 아니면 그 시간을 받아들일까.
그건 친구가 선택할 몫이다.
다만 나는 알고 있다.
천일쯤 공을 들이면, 우주는 분명 답한다는 것을.
다만 그 답이, 우리가 예상한 모양이 아닐 뿐이라는 것을.
치킨이 식어가는 테이블 위로,
친구의 긴 침묵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