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 열정 세계

장편영화 제작부 막내 생존기... 아니 탈출기

by 유명상

이 글은 경험을 기반으로 한 "팩션"입니다.

만약 자기 얘기인 것 같다 싶은 사람이 있다면 맞으니까 걍 나가세요.









0.

영화를 좋아한다.




1.

“야. 김민지. 이 씨XX아. 너 미쳤냐? 내 말에 토달지마.”

이윤발. 45세 남성. 제작실장. 다수의 장편 상업영화에 참여한 이력이 있으며 제작부 경력은 20년. 직전날 그는 내게 ‘잘하고 있다’며, ‘형이 거칠게 나와도 다 너를 아껴서 그런거 알지?’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지금 화를 내고 있다. 스텝들에게 야식으로 돌릴 김밥을 픽업하러 가는 일을 그가 제작부장에게 시켰는데, 내가 ‘저는 부장님보다 덜 바쁜 상황이니 제가 갔다오는게 어떨까요’라고 물었기때문이다.

“예. 죄송함다.”

나는 잠자코 티테이블 옆 떨어진 담배꽁초를 주워, 설치해둔 꽁초통에 집어 넣었다. 아마도 촬영팀이 일부러 뿌려둔 꽁초겠지. 실장때문에 사이가 안좋아져서 며칠째 데면데면하게 굴고 있으니까. 몇 시간 전에는 연기를 피울 쪼다통을 가져오라며 촬영부 스타렉스와 숲 속을 다섯 번이나 오고가게 만들었다. 제작부가 싫으니까 나같은 막내한테 골질을 하는거였다.

“너 지금 반항하냐?”

“예?”

“너 지금 나한테 반항하냐고.”

“아님다.”

“너 그따위로 행동하는거 다 싫어해.”

“예?”

“니 존나 눈치 없다고. 말귀 못알아들어? 피디님도 니 그렇게 행동하는거 싫어해. 이걸 꼭 말을 해줘야겠니?”

그는 사실이 아닌 것을 교묘하게 사실처럼 말하는 사람이었으므로 나는 그냥 죄송하다고 대답할뿐이었다. 오늘은 또 뭣땜에 기분을 잡친거지. 나는 생각했다. 촬영팀의 B캠 감독이 또 신경을 거스르는 말을 하며 그의 앞을 지나갔나? 아니면 피디님이 야지를 줬나? 조명팀의 발전차기사가 ‘금연구역’이라고 사전 공지한 곳에서 또 담배를 피웠나? 그것도 아니면… 평소 여자라고 무시하던 미술감독에게 역으로 무시라도 당했나.

그는 곧 인상을 구기며 침을 뱉고는 슛이 돌아가고 있는 한밤 중의 나무 숲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몇시간 후, 그는 스텝들이 먹다 남긴 세 끼 분의 음식물 쓰레기를 한 데 모아 야산으로 묻으러 가기 위해 열심히 들쳐메고 있는 제작부-나와 H-앞에 나타나서 말했다.

“오늘 촬영 일찍 끝날거 같다. 내일 휴차니까 시내 나가서 술 한잔 하자.”

“예.”

저 멀리 조명팀의 거대한 크레인이 나무 숲을 비추고 있는 게 보였다. 이런 관리 안 된 숲에 조명크레인이 들어오려면 나무를 몇 그루는 뽑아야 했다. 어두운 숲을 푸른 빛으로 비추고 있는 거대 크레인에 의지해 나와 H는 끙끙거리며 야산을 걸어올라갔다. 한참 후에야 삽으로 구덩이를 다 팠고, 그 안에 음식물 쓰레기 50인분을 쏟아넣으며 H는 중얼거렸다.

“아, 좀 자고 싶다.”

“저도요.”

지난 3일을 다 합쳐 5시간도 자지못했다. 우리는 쉴새없이 촬영장과 식당과 숙소로 잡은 호텔과 그 다음 로케이션과 대형쇼핑몰 따위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제작회계라는 역할이 추가로 맡겨진 나는 촬영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 다른팀 스텝들(제작부가 전부 남자여서 함께 방을 쓸 팀원이 없었다)이 자는 동안 화장실에 들어가서 변기를 책상 삼아 노트북을 펼쳐둔 채 밤새도록 영수증을 정리했다. 프리프로덕션때 피디님과 썼던 계약서에는 “하루 촬영(근로)시간은 12시간을 넘지 아니한다”라고 적혀있었다.

“진짜 자고 싶어.”

“저도 진짜 자고 싶어요.”

H와 나는 터덜터덜 산을 내려가며 목장갑에 묻은 음식물들을 나무에 벅벅 문질러 닦았다. 그리고 촬영장 바라시를 하며 제작부의 숙명으로서 모든 스텝들이 현장을 떠날때까지 기다렸다가, 실장을 따라 시내의 술집에 술을 마시러 갔다.




2.

“진짜 멋진 영화 딱 3편을 만드는거예요.”

영화과의 거대한 지하 스튜디오 안에서 선배가 물었다. 목표가 뭐냐고.

21살의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할 즈음이 되자 나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학우들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계속할 것인가’에 대해서. 나는 계속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고 일반 회사에 인턴으로 입사했다. 하지만 4개월 만에 생각이 바뀌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영화를 만들어봐야겠다. 진짜 영화를. 왜냐하면 인생은 언제나 ‘해서 후회하는 일’보다 ‘하지 못해서 후회하는 일’이 더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이제껏 학교 내외에서 단편영화만 만들어봤던 나에게 펼쳐진 일명 ‘진짜 영화’의 세계는, 익히 들어온 것 이상으로 처참했다.




3.

호프집이라기엔 분위기가 이상했다. 술집은 지하에 있었고 조명은 불그스름했다. 중앙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있었고 노래방 기계가 있었다. 실내금연이 시행된지 오래인데도 내부는 뿌연 담배연기로 가득했다. 우리 다섯이 우르르 들어가자 술집 주인 아주머니가 자리를 안내했다. 그리고 나를 한참 동안 빤히 쳐다보다가 말했다.

“어머… 아가씨가 있네.”

그러자 실장과 몇명이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아~ 민지만 없었어도.”

“하하…”

나는 멋쩍게 웃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바보 같았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바보 같고 후회되는 일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므로 그만 생각하기로 한다….

피디는 그날 오지 않았다. 피디나 감독이 있는 술자리에서는 보통 이런 말들이 오갔다 : 이번 모델 보출들 중에 누가 제일 섹시한거 같아? 난 A요. 감독님은요? A? A는 볼륨감이 너무 부족한데. 나는 B. 이것 참, 기회될때 감독님 방에 B를 넣어드려야겠네요. 하하하. 좋지. 피디님 방에는 그럼 A로. 아, 전 A랑 C로 부탁해요. 셋이서? 이 사람 욕심 많네. 하하하. 하하하하. 하하.

오늘은 피디는 자리를 비웠고, 제작부끼리의 술자리였으므로 감독은 끼지 않았다. 하지만 오가는 내용은 별반 다를 것 없었다. 듣기 싫은 얘기를 나눈 후에 실장은 나에게 왜 너는 화장을 하지 않냐, 왜 너는 머리를 기르지 않냐, 너 남자를 사귀어본 적은 있냐, 서른 넘으면 더 안팔리니 빨리 남자를 만나라는 둥의 말을 계속할 것이었다. 그러고나면 자기가 결혼할 ‘뻔’ 했던 이야기, 전에 찍었던 100억짜리 영화에서 있었던 일, 피디 욕, 촬영팀 욕을 할 것이다. 부장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부원인 H와 J는 전에 한번 내가 ‘실장님은 너무 화가 많으신 것 같아요.’라고 말했을때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거나 ‘우리한테 가르칠게 있으니까 그렇지.’라고 대답했으므로 나는 이들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차라리 일찍 취하기로 하고, 소주를 몇 잔 들이켰다.



3-1.

……그러니까 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는거다. 김가영 감독이 영화 [밤치기]에서 내뱉었던 이런 대사들에는.

“영화는 ‘사람들’이 만드는거예요. ‘멋진 사람들’이.”


내가 알기론 아닌데.



3-2.

돌고 돌아 촬영팀을 욕하는 플로우가 다시 다가왔다. 실장은 갖은 이유를 들며 촬영부를 욕했으나 사실은 몇주 전에 촬영팀 B캠 감독이 촬영지 인근에 잡은 장부식당에 대해 불만을 표하며 실장에게 ‘이런 밥을 먹이면 스텝들 사기가 떨어지지 않겠어요?’라고 말했기때문에 그를 증오하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그날 실장은 우리를 소집해 광분했었다. 감히 자기 앞에서 그런 말을 했다는 이유를 들면서. (B캠 감독 앞에서는 아무말도 못했으면서) 우리에게는 몇 시간이고 그에 대한 욕을 늘어놓았다. X발놈, 병X 등의 육두문자는 기본이었다. 증오는 결코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B캠 감독 역시 실장과 제작부를 혐오하고 있음이 얼마 가지 않아 느껴졌다.

실장과 그에게 복종하는 남성들(aka. 제작부)의 촬영부에 대한 욕을 듣고 있자니 나도 낮에 숲에서 있었던 일이 하나 생각이 났다.

제잡부… 아니 제작부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스텝들을 위한 티테이블을 꾸리는 것이다. 모니터 인근에 간이테이블을 설치해 스텝들이 먹을 수 있도록 온갖 종류의 간식과 음료를 세팅해놓는 일. 그런데 그날은 모니터와 티테이블의 자리가 꽤 멀리 떨어져 있었고, 그렇다보니 감독님과 연출부가 나에게 ‘과자를 모니터 쪽으로 몇개만 가져다 달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품에 한가득 과자(빈츠, 몽쉘, 촉촉한 초코칩 등.)을 새로 꺼내 안고 제작부 스타렉스에서 모니터까지 뛰어갔다. 뛰어가는 중에 미리 설치해둔 꽁초통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촬영팀 써드(제 3조수)가 나를 보며 낄낄거렸다.

-어. 빈츠 아줌마다.

그렇게 부르면서 말이다.

“뭐라고.”

실장이 테이블을 쾅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빈츠 아줌마’? 너를 그렇게 불렀다고?”

“예에. 기분 좀 그랬죠…”

“이건 말도 안돼.”

갑자기 실장이 격분하기 시작했다. 공감능력이라곤 전혀 없어서 평소에 어떤 이야기를 해도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톤으로 일관하며 다른 사람의 감정을 무시했던 그이기에 나는 다소 당황스러웠다. 그냥 ‘기분 나빴던 일화’쯤으로 생각하고 말했을 뿐이었는데 갑자기 왜 이렇게 화를 내는거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잠깐만. 이거 조명감독한테 말해야겠어.”

“예?”

그는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나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 앉은 제작부 테이블이 순식간에 싸한 분위기가 되었다.

“저… 혹시 ‘빈츠 아줌마’에 제가 모르는 다른 뜻이 있나요.”

나는 주변에 앉은 남성들을 보며 물었다.

“그렇게 부른건 선 넘은거지.”

부장이 ‘잘은 모르겠지만 실장에게 동의’한다는 뜻을 내비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짱나긴 하지만 그게 다였는데요…”

나는 급히 휴대폰을 켜서 구글 검색창에 ‘빈츠 아줌마’라고 검색해보았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별다른 뜻도 없었다.

실장은 한참 후에야 다시 술집 안으로 들어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피디님한테도 얘기해야겠어.”

“예? 아니 그럴 일은 아님다.”

“어떻게 그럴수가 있냐고.”

그제야 나는 알아차렸다. 실장은 나를 위해 분노한다던가 하는 감동적인 행동을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냥 처음부터 맘에 안들었던 촬영부를 좆되게 할 구실을 잡았을 뿐이었던 거다. 솔직히 좀 기뻐보이기까지했다. 이러든 저러든 상관 없으나 문제는, 그 ‘구실’이 나라는데 있었다.

“아니 저는 괜찮슴다…”

나는 나중에 가서는 거의 빌면서 실장에게 부탁했다. 제발 피디님께는 말하지 말아주세요. 그럴 일이 아닙니다…….

다음 날 아침, 텅빈 숙소를 가득 채우는 전화벨 소리에 나는 잠에서 깼다.

실장이었다.

“말했다.”

“예?”

“너는 말하지 말라고했지만, 난 도저히 못참겠어서 피디님한테 말했다고.”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피디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예. 피디님.”

“로비로 내려와.”

그게 끝이었다. 피디는 그 문장을 내뱉은 후 전화를 뚝 끊었다. 뭔가 잘못 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하지만 별 수 없었다. 나는 제작부 막내일뿐이었고 피디가 ‘로비로 내려와’라고 말하면 10분안에 튀어나가야 하는 사람이었다. 세수만 대충 하고 호텔 로비로 내려가자, 디귿자 쇼파에 앉아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촬영 B캠 감독, A캠 감독, 피디님, 그리고 촬영팀 써드였다.

그들이 동시에 나를 쳐다보았다.




4.

영화진흥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모든 장편영화는 촬영 전 반드시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에서 진행하는 ‘성폭력/성희롱 예방 교육’을 이수하여야한다. 교육에는 키스텝(헤드 스텝)의 60%가 참여해야한다. 이윤발 실장은 프리프로덕션 기간 동안 지방에서 로케이션 헌팅을 하는 와중에 핸드폰을 켜서 구글 줌으로 들어와 그 교육을 이수했다. 강사는 특히 낮은 직책에 있는 부하 직원들에 대한 폭언과 성희롱성 발언에 대해 설명하며, 교육생들에게 물었다.

-왜 폭언과 성희롱을 하면 안될까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한 남자가 손을 번쩍 들며 답했다.

-상대방의 인격을 무시하는 행위니까요.

강사님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잘 대답했다고 덧붙였다. 대답을 한 그 남자, 그러니까 이윤발 역시 강사의 인정에 뿌듯해하며 미소를 지었다.

나는 교육 이수 후 영진위에 제출할 서류를 작성하며, ‘스텝 구성원 모두가 강의 내용을 이해하였다’는 항목에 체크 표시를 했다. 그리고 ‘이수자’ 목록에 이름들을 적어넣었다. 프로듀서 한문호, 촬영 A캠 감독 이진형, B캠 감독 윤준우, 촬영부 써드 한지호, 제작실장 이윤발, 제작부 김민지……

-씨발...

촬영팀 써드는 대뜸 말했다.

내가 자리에 앉자 피디와 촬영감독들은 ‘담배 피우고 올테니 둘이서 먼저 얘기해’라며 일어났다. 그렇게 나와 단 둘이 쇼파에 마주보고 앉은 써드가 내뱉은 첫마디는 씨발이었다.

-……죄송해요.

나는 죄송하다고 말했다. 솔직히 내가 죄송해야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 말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써드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차라리 그때 그가 나에게 솔직하게-그러니까, 실장이 모든 스텝들에게 ‘민지가 성희롱을 당했다. (맙소사. 무슨 말을 들었는데요? 빈츠 아줌마. …네? 빈츠 아줌마라고 했다고. 정말 극악무도하지 않아? ……에? ) 그래서 술자리에서 울며불며 촬영 못하겠다고 난리치는걸 내가 겨우 뜯어 말렸다’고 말하고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알려줬다면, 그와 나, 그리고 다른 모든 스텝들과 나 사이의 오해는 없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써드는 아무말도 하지않았고, 그래서 제작부를 제외한 나머지 스텝-촬영감독들, 미술부, 연출부, 조명팀과 촬영팀과 그립팀과 의상팀과 다른 모든 스텝들은 촬영이 끝나는 날 까지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했다. 빈츠 아줌마라고 한번 불렸다고 울며불며 난리친 이상한 사람. 별 뜻도 없는 단어를 성희롱이라고 신고하겠다고 한 사람. 촬영부들은 내가 그들 주변을 지나가기만 하면 하던 말을 멈추고 나를 보고 수군거리며 킥킥 웃었다.

일반적으로 영화 현장의 모든 스텝들은 프로덕션과 개별로 계약을 맺은 프리랜서이다. 그리고 이들이 한 영화를 마치고 ‘다음 영화’를 들어가는 경로는 99% ‘동료 스텝들의 소개 및 추천’이다. 이제 막 두 번째 장편영화를 찍고 있을 뿐인 신입 막내로서…… ‘수군거리며 킥킥’거리는 평판은 꽤나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이 바보 같은 일화가 앞으로의 나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생각했다. 당연히 아무도 나에게 ‘다음 영화’를 제안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장은 그 행위를 통해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었다. 피디와 촬영감독 간의 사이가 나빠져 더이상 같이 영화를 찍지 않게 되었으니까. 그러니까 아직도 어이없는 건 이 모든 게 단지 B캠 감독의 반찬 투정때문에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이건 실장의 파탄난 성격과 정치질 때문에, 아니 더 정확하게는 이윤발 같은 사람들이 그곳에 아직도 ‘그런식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그들 모두가 허락했기 때문일 것이다. 가는 현장마다 여자 스텝들에게 추근거리고 거절당하면 일감이 끊기게 뒤에서 욕이나 하고 다니며, 부하직원을 끊임없이 가스라이팅하고 ‘인격을 무시하는 행위’를 숨 쉬듯이 계속하는 인간을 영원히 그곳에 불러주고 있기 때문에. 감독이라는 사람이 보조출연자들의 가슴과 엉덩이에 대해 피디와 농담따먹기나 하고 있기때문에. 동료 스텝을 빈츠 아줌마니 잡부니 부르면서 조롱하고 있기때문에. 계약서상의 근로시간 따위는 애저녁에 무시하고 누가 밤을 새든 한 시간을 자든 관심도 없었기 때문에. 변기 위에서 일하도록 했기 때문에.

그러니까, 이 모든 것에 대한 자정 능력을 이미 잃어버렸기 때문에.




5.

나는 그 영화를 끝내고도 우여곡절을 거쳐 2개의 장편영화에 제작부로 더 참여했다.

네 번째 영화를 끝내고는 정형외과에 가서 무릎에 연골주사를 맞았다. 주사를 맞지 않으면 오르막길을 걷기도 어려울만큼 온몸이 엉망진창이 됐었다. 그렇게 일하고 통장에 찍히는 숫자는 2백만원 남짓이었다. 하지만 돈 때문에 그만둔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만둔 이유 중 가장 상관없었던 것이 바로 돈이었다.

언젠가 내 영화를 만들고 싶으니까, 프로듀서가 되고 싶으니까 제작부는 당연히 거쳐야 하는 관문이라고 생각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맹세하건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했다. 내 열정이 야만으로 소모되고 있을 뿐이란 걸 알면서도.

그렇다면 언제 있었던 사건으로 이 일을 그만둬야겠다고 결심했을까?

폭우가 쏟아지는 날 밤 촬영에서 우비도 경광봉도 주지 않고 사거리의 중앙에 나가 차량을 ‘통제’하라고 했을 때? 그리고 양옆을 스쳐 지나가는 차들을 맨몸으로 막아 세우다 차에 치일 뻔하고 욕을 먹었을 때?

아침 첫 촬영을 앞두고 조식 메뉴에 불만을 품은 중년 배우를 위해 40분간 운전해 시내로 나가서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잔을 사다 바쳤지만 뜨겁지 않아서 불쾌하니 먹지 않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며칠 밤을 새워 일하고도 병신이라는 둥 니 성격이 좆같다는 둥의 불평만 3시간 듣고서 다시 숙소로 돌아가 울면서 밤새워 일해야 했을 때?

아니면 감독이 미술부 막내를 성추행해서 크랭크인을 1주일 앞두고 연출부와 미술부가 전부 그만뒀을 때?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을 때?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선택했을 뿐인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꼈을 때.)

그 모든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쌓여 결국은 폭발했다. 아니, 바깥으로 분출된 것은 없었으니 그냥 알아서 조용히 무너져 내렸다고 하는 게 더 알맞은 표현일 것이다. 내가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사실 자체를 무시하는 세계에서 도망치기로 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그런 말을 내게 읊던 인간도 있었다. 그게 무슨 개소린가 싶었다. 그럼 도망치지 않은 곳은? 여기가 지옥이 아니면 뭔데?

내가 원했던 건 단지 이 야만으로부터의 출구였을 뿐이다.




5-1.

다만 한 가지 남아있었던 과제는 여전히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

비록 그것이 씹새끼들이 만든 유산일 뿐이라고 해도,

좋은 점을 찾고 싶어한다는 것.

여전히.




6.

제작부를 그만두고 2개월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냈다. 정말로 죽은 것처럼 집에 누워만 있었다. 그때 난 벌써 27살이었고, 내 인생이 망했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그런 생각이 들 것이다. 온 마음과 몸을 다 바쳐 매진했던 어떤 일로부터 도망쳐 분리되고 난 후에는 말이다.

다른 일은 생각도 해 본 적 없었는데. 이제 어떡하지.

그런 생각을 하며 지냈다. 제작부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떻게 프로듀서가, 제작자가 된단 말인가. 제작부가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영화를 만든단 말인가.

그리고 수 개월간의 장고 끝에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 제작부는 영원히 그만둔다. 하지만 영화는 그만두지 않는다.

그때의 나에게 좋은 레퍼런스가 되었던 제작자들이 있다. 편집보조부터 시작해 끝내 제작사를 차린 박곡지 편집감독이나 [고요의 바다]를 제작한 배우 정우성(당시에는 한심한 짓을 저지르는 인간이라는 게 밝혀지기 전이었다)같은 몇 명의 편집감독, 촬영감독, 그리고 기술감독들과 배우들. 그러니까, 제작부로 시작하지 않았고 프로듀서로도 일하지 않았으나 이 업계에서 오랫동안 명망을 쌓은 후 their own 영화를 제작한 제작자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현장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부서였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겐 무척 다양한 직군과 부서가 있다. 이곳 역시 녹록지 않은 박봉에 열악한 근무환경이었지만, 적어도 ‘회사’라는 규율과 조직이 나를 최소한의 조건으로는 보호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었다. 나는 이 부서에서 3년을 일했고, 앞으로도 이 일을 오래도록 하기 위해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7.

제작부 시절을 후회하지 않는다.

제작팀을 거치지 않았다면 지금의 선택지는 고려조차 하지 못했을 테니까.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전부 필요했던 과정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게 견딜만한 부조리여서가 아니라, 지나고 나니 아름다웠던 추억(우웩)이 되어서도 아니라, 단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기에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업계에서 수십 년간 명망을 쌓게 되면 이 세계를 야만 열정 세계가 아니라 열정 세계로, 아니 그보다는 단지 직업 세계로, 전부 뜯어고치고 싶다. 그리고 이윤발과 같은 수 많은 남성들과 열정을 인질 삼은 야만적인 촌극을 이 세계에서 반드시 추방하고 싶다.

물론 혼자만의 힘으로는 안될테니 동료들을 모아야겠지.

그날이 올 때까지 존중하며 버티기를 할 뿐이다.


……라고, 여기까지 써서 지난 달 글쓰기모임에 제출했었다.

여러 피드백을 받으며 '그날'의 의미를 나는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대체 그날이 언제 오는거지? 아니, 오긴 오는건가? 이 업계에서 얼마나 더 오래, 얼마나 더 높은 곳에서 일해야만 발언권을 얻을 수 있는거지?

물론 난 여전히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태도를 조금 달리해보기로 한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보기로 한다. 아델 에넬처럼 '수치!'를 외치고 은퇴를 선언하지는 못하더라도, 이 업계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한다. 그게 설령 아주 미미한 결과만을 가져올 뿐이라해도, 아무것도 안하는 것 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라고 믿으며.


소규모로 진행되는 글쓰기모임에 이 글을 제출하면서, '공유는 금지해달라'는 선언 같은 부탁을 내걸었다. '그날이 오기를 기다린다'고 마무리지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결말을 바꾸기로 한다. 그러니 브런치에서 '전체 공개'로 발행하는 첫번째 글은 이 글로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