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야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제목: 밤에 일하다
작성 도구: 어딘가 수상한 털이 한 올 낑겨있는 지저분한 투명 볼펜 한 자루, '자영업자를 위한 단기대출'을 광고 중인 화려한 찌라시 떡메모지.
작성 시간: 22시 30분 ~ 다음날 06시 30분
주요 등장인물: 흐느적거리는 이상한 여자, 짜증내는 취객, 수상한 검은 스타렉스 운전자, 룸살롱 웨이터들, 대리운전 기사, 국적을 알 수 없는 외국인, 형광조끼를 입은 인부들, 그리고 나
1막
7시간 30분.
쓰러져있는 나를 상상한다. 계산대 앞 유리문이 열리는 곳에서, 죽은 사람처럼 쓰러져 누워있는 나를 상상한다. 영화의 오프닝 장면이라면 아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같은 음악이 깔릴 것이다. 그리고 롱샷에서 멍하니 치뜬 눈동자 클로즈업까지 천천히 줌인.
나는 살아있는가?
나는 죽어있는가?
아마도 살아있는 것도 죽어있는 것도 아니겠지.
그러니까 30여종의 콘돔과 임테기 앞에서 라면국물을 벅벅 닦아내고 있는 이런 새벽에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곤 한다. (존나 개념없는) 누군가가 아마도 자정을 전후로 콘돔 매대 앞에 라면 국물을 쏟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 누군가는 벌겋게 취한 얼굴로 나를 툭툭 치며 질문을 던졌던 그 놈일 것이다.
남자 : 콘돔 뭐가 좋아요?
나 : (그냥 제일 작은거 쓰시면 될 것 같은데) 글쎄요 신동엽도 꽤 잘팔려요.
놈은 'HOT열라면'을 샀으므로 지금 내 행주에 촉촉히 스며든 이 향기는 'HOT열라면'의 향기이다. 그런데 라면마다의 향기를 나는 구분할 수가 있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아마 그놈이 '오동통면'이나 '용사라면'을 골랐더라도 나는 HOT열라면과 구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HOT열라면이면서도 HOT열라면이 아니다.
시계를 본다.
5시간 10분.
어느샌가부터 '퇴근까지 남은 시간'으로 시간을 새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0시간 0분'이 되기전까지 나에게 이 시간은 죽어있는 것도 살아있는 것도 아닌 그런 시간인데, 문제는 '마이너스 30분'이 될 때까지 교대자가 나타나지 않는 때가 많다는 것이다. 사장에게 이르면 되지 않냐고? 맞다. 그러나 문제는 그 교대자가 사장이라는 점이다.
사장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나에게는 '30분 일찍 출근해'라고 한 후 본인은 30분 늦게 출근을 하곤 한다. 그덕에 나는 매번 도합 1시간 가량을 무급으로 근무해주고 있었다.
웨이터 : 담배 하나 주세요.
나 : 네~
나는 HOT열라면과 물아일체가 된 낡은 행주를 집어던지고 계산을 하러 간다. 웨이터들은 모두 바쁘다. 대개는 손님의 담배심부름을 오는 사람들이기때문에 팁을 받으려면 시간이 생명이라서 그렇다나 뭐라나... (사장이 알려줬다. 그는 룸살롱에 대해 꽤나 해박한 지식이 있는 것 같았다. 왜 밤마다 검은색 스타렉스가 세워져 있는지에 대해서도 아주 상세하고 길게 설명을 해주었다. 물론 물어본 적은 없다.)
4시간 59분.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기실 겨우 11분이 지났을 뿐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약간 좌절한다. 이때부터 나는 죽어있는 것도 살아있는 것도 '그것'을 생각하는 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도 아닌 상태가 된다. '그것'은 과거다. 혼자 남은 새벽, 이 새하얗고 네모난 지옥에서 산처럼 쌓인 물류와 함께 갇히고 나면 고요의 한가운데서 내가 생각할 것이라곤 결국은 과거 뿐인 것이다.
2막
10년 전, 대학교 1학년때 두번째 알바로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선택했다. 첫번째로는 운좋게 관공서에서 하는 '대학생 여름방학 아르바이트'에 당첨되어서 구청으로 한달여 기간동안을 출근했었다. 그때 사귄 동갑내기 친구에게 첫 알바로 편의점 알바를 추천받았다. 대단한 친구였다. 벌써부터 적금을 몇백만원씩 들고 부모님 용돈도 드린다고 했다. (내가 방학 목표로 원피스 전권 정주행 따위의 목표를 세우고 있을 동안) 그 친구는 적금과 미래와 부모님을 생각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코묻은 돈을 왜 부모를 주냐고 잔소리를 하고 싶어지지만 그때는 그 친구에게 큰 영감을 받아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왜 야간이었냐면, 그건 우습게도... 무한도전 때문이었다.
나는 14살때부터 한 주도 빠지지 않고 무한도전 본방을 시청했다. 안본 에피소드는 하나도 없었다. 심심할때면 좋아하는 에피소드의 VOD를 구매해 몇번이고 돌려보곤 했다. 일명 '무도키즈'였던 것이다. 대학생이 된 후로도 토요일 저녁 6시반부터 8시까지는 무한도전을 보는 시간으로 정해져 있었다. 당시 내가 살던 동네에는 주말 오전 편의점 알바 구인이 없었고, 그렇다고 주말 오후를 하자니 영원히 무한도전 본방을 볼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이 말도 안됐다. 그때 발견한 것이다... 주말 야간 구인 공고를. 무한도전이 끝나는 시간 이후에 시작되는 알바를, 그러니까 토요일 6시반부터 8시까지 언제나 무한도전을 볼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는 알바를.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야간 알바를 시작했다.
지금으로서 기억나는건 그리 많지 않다.
사장님 내외는 무척 친절했고, 기다란 접이식 책상을 가져다주며 새벽에는 여기에 앉아서 공부를 하라고 했다. (물론 난 거기에 앉아 원피스를 읽었다) 그리고 또... 내가 아는 한 유일하게 매장 내부에 화장실이 있는 편의점이었다. 또 새벽이면 라면을 쏟거나 매장 안에서 술을 마시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인간들이 아주 많았고, 웃지 않는 내 표정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고, 바깥에 긴 테라스가 있어서 매번 청소하는데 애를 먹었고, 대신 물건은 많이 안들어왔었고, 그리고.... 그리고 불쾌한 일이 있었다.
그날은 유난히 손님이 없는 날이었다.
새벽 3시쯤이었나, 40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 한명이 가게에 들어왔다. 남자의 행색은 꽤나 남루했으므로 남루남이라 칭하겠다.
남루남 : (레쓰빈지 뭔지 하나 계산하면서) 참 이쁘네.
나 : (설마 나한테 하는 말인가) 네?
나는 살면서 예쁘다던가 잘생겼다던가 하는 말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박색의 청년이었기에 귀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일단은 감사하다고 했다. 그게 예의인 것 같아서였다.
남루남 : 몇살이야?
나 : 20살이요.
남루남 : 이름이 뭐야?
나 : 유명상이요.
남루남 : 명상이는 엄마한테 고마워해야겠다. 이렇게 이쁘게 낳아줘서.
나 : ?
남루남은 약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박색청년에게 이쁘니 뭐니 타령을 해서가 아니라, 그냥 느낌이 그랬다. 더 구체적으로는 그의 손짓, 발짓, 몸짓, 떨리는 눈, 남루한 차림새, 떡진 머리카락,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무표정한 얼굴 등이 그러한 느낌이 났다. 그는 곧 카운터 앞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는 나와 마주보고 앉았다. 별로 멀지 않은 거리였다. 그는 한참 동안이나 그렇게 앉아있었다. 그러면서 계속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그가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어서 가주었으면 했다. 마침내 손님이 한 명 왔는데, 그 사람은 남루남이나 나에게는 아무 관심도 없어보였다. 손님이 계산을 하고 나가자 남루남은 일어나서 카운터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내 손목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남루남 : 전화번호 뭐야?
나 : ......
남루남 : 전화번호.
그는 나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그리고 내가 입력한 번호로 전화를 걸어 내 번호가 맞는지 확인했다. 그러고서도 카운터 앞에서 한참 더 나를 쳐다보다가 손님이 오는 빈도가 조금씩 잦아지기 시작할 때 쯤에야 가게를 나갔다.
신고를 했어야 했나? (하지만 아마도 경찰은... 이하생략)
그 후로 그는 내게 며칠동안 새벽마다 전화를 걸어왔다. 전화를 받지 않자 카톡을 계속 보냈다. 혹시라도 사장님께 말했다가는 일자리를 잃게 될까봐 아무 이야기도 하지 못했다. 한 주가 또 지나 벌벌 떨면서 근무지로 갔다. 편의점 알바였으므로 나는 당연히 혼자서 일했고, 편의점 주변에 있는거라고는 문을 닫은 상가들과 몇개의 모텔들이 전부였다. 10시간 내내 그 남자가 다시 오지 않을까, 연락을 무시한데 대한 해코지를 하지는 않을까 두려워하며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그 남자는 그 후로 가게에 또 찾아오지는 않았다.
지금 와 다시 생각해보면... 나는 걍 운이 좋았던 것 같다.
3막
운이 좋아서 10살을 더 먹은 나는 다시 또 야간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 사이 무한도전은 종영을 했고, 나는 복수전공으로 대학을 졸업했고, 전업노동자 생활을 도합 4.5년 정도 했다.
이제와 새삼스럽게 20살의 불쾌했던 어떤 경험을 떠올려보는건 그게 나의 편견을 깼던 사건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내가 '이렇게 생겼으니까' 보통의 여성들이 겪는 그런 '위험한 일'은 영원히 겪을 리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20살이 될때까지 주변의 여자친구들이 겪어야만 했던 무수히 많은 불쾌하고 좆같고 위험한 일들을 눈으로 봐왔으면서도,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그게 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 또 피해자들에게 얼마나 폭력적인 것이었는지는 그 이후에 불어온 강렬한 페미니즘의 바람을 맞으며 알게 되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토록 하겠다.
여자: 그슨 즈스으.
나: 네?
여자: 그슨...
여자는 잠옷을 입고 있다. 얼굴은 나를 보고 있으나 두 눈동자는 다른 곳을 보고 있다. 곧 여자는 몸을 가두지 못하고 비틀거린다. 주변에 있던 남자손님이 다가와 말한다.
남자: 술이 아닌 것 같아요.
나: 네,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여자에게서는 술냄새가 나지 않는다. 불콰해진 뺨이나 충혈된 눈동자도 없다. 여자의 두 눈동자는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그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쓰러질듯이 비틀거리기만 한다. 나는 카운터 밖으로 나가 여자의 상체를 부여잡는다.
나: 경찰에 신고 좀 해주시겠어요?
남자: 네.
나는 한국이 더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니라느니, 대치동에서 어떤 인간들이 청소년들에게 약물을 팔다 잡혔다느니 하는 뉴스들을 떠올린다. 떠올리면서 여자의 상체를 끌고 가 테이블에 앉힌다. 남자가 경찰에 전화를 한다.
이 빛나는 네모난 지옥에 가득한 담배, 컵라면, 콘돔과 과자, 맥주, 아이스크림을 둘러본다. 가끔은 형광등 불빛을 반사해내는 하얀 바닥을 바라보고 있다가 쓰레기 봉지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그럴때면 밤의 바닥은 아주 깊고 어둡고 까맣다. 너무 까매서 꿈인지 생시인지조차 헷갈릴 정도다. 하지만 꿈과 생시에 대해 더 고민할 시간도 없이 현관문에 달린 종소리가 울린다. 그러면 나는 쓰레기 봉투를 저 멀리 전봇대에 던져놓고 얼른 다시 빛나는 네모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손님은 아주 천천히 음료수를 고르고 있다.
카운터 맞은편에는 시계가 붙어있다.
왜 "꿈의 시계(for your dream)" 같은 말이 쓰여있는지는 모르겠다.
본사에서 나눠준 것으로 보이는 이 시계를 만든 사람은 어쩌면 알았을 지도 모르겠다.
문득 이게 생시라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마다 찾아오는 참기 힘든 현타를 누르고 자본주의에 성실히 부역하기 위해서는 "네가 여기에 왜 있는지를 기억해(for your dream)"라고 주기적으로 되뇌어 줘야 한다는 것을...
살아있는것도 죽어있는것도 아니라고? 천만에. 나는 너무나 확실하고 분명하게도 살아있다. 죽어있는것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살아있는 것이다. 지긋지긋하게도 살아있는 것.
나는 0시간 0분이 될때까지, 아니 마이너스 30분, 마이너스 1시간이 될때까지 교대자가 나타나지 않는 한 이 곳에 갇혀 있어야만 한다. 나는 자유가 아니다. 내 시간의 주인은.... 돈이다! 몹시 새삼스러운 사실이지만.
이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난다.
1시간 2분.
차례로 도착한 소방과 경찰에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한차례 소동이 끝나고 나자 남은 물류박스들이 보인다. 남은 1시간 동안 다 치울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을 잠시 한다.
0시간 0분.
걱정할 필요 없었다. 교대자, 그러니까 사장이 교대 시간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시간 안에 다 정리한 물건들을 보며 나는 길게 하품을 한다.
마이너스 0시간 20분.
사장에게서 카톡이 온다. 지금 일어났다는 문자. 존나 긴 한숨을 쉰다.
밤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