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하는 인간. 어떤 영화사 직원의 기록.
*이 글은 Andrew Bird의 노래 <Sisyphus>가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듣는 어떤 저녁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
8시 25분부터 5분 간격으로 알람은 정확히 6번 울린다. 만일을 위해 6번째 알람을 예비해 두었지만, 6번째에 일어나면 이미 늦다. 5번째에는 몸을 일으켜야만 늦지 않게 회사에 도착할 수 있다. 15분 만에 급히 준비를 마치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낡은 빌라의 5층을 단숨에 뛰어 내려가서 차에 시동을 건다. 핸드폰으로 어제저녁 8시 뉴스를 틀고, 이미 수백수천 번을 오가며 다 외워버린 길이지만 단지 도착시간을 측정하는 용도로 내비게이션을 켠다. 도착예정시간은 9시 50분. 다행히 가는 길에 커피를 사 갈 수 있을 만한 시간이다.
세 개의 지하도로와 한 개의 한강 다리, 두 개의 IC를 지나면 그 빌딩이 보인다. 그즈음 뉴스는 모든 중요한 현안들을 다 보고한 후 스포츠 뉴스가 나오기 시작한다. 누구랑 누가 싸웠다가 화해를 했는데 협회가 이렇고 저렇고, 귀국한 선수의 복귀 경기가 매진되었고 어떻고, 그런 들으나 마나 한 이야기들을 지나, 벚꽃이었던 나무들이 초록색으로 다 얼룩덜룩해진 채 한참을 늘어서 있는 고층아파트 길을 지나, 우회전을 해서 회사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길에 저가형 프랜차이즈 커피 매장의 어플을 켜고 아이스 꿀라떼(저지방우유 옵션 400원 추가)를 주문한다.
차가 너무 많은 지하 주차장은 언제나 지하 4층까지 만석이고, 지하 5층까지 내려가야만 자리가 있다. 오늘은 운 좋게도 지하 4층에 한자리가 비어 있어 잽싸게 그곳에 차를 끼워 넣는다.
시간은 9시 55분. 애매한 시간이지만 이미 커피를 주문해 놓았으므로 저층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회사 1층 상가로 가서 커피를 픽업한다. 커피를 들고 로비로 들어오면 고층용 엘리베이터 앞에서 위쪽으로 옮겨지기 위해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엘리베이터는 4대가 있음에도 한참 동안 오질 않는다. 그렇게 있다 보면 꼭 한두 명쯤 부서 동료를 마주치게 되어 간단히 목례를 하고, 함께 엘리베이터에 구겨져 올라탄다.
35층, 36층, 38층, 39층, 40층,
그리고 41층에 우리는 내린다.
4대의 엘리베이터는 각각 두 대씩 마주 보고 있는 형태로 위치해 있기 때문에 41층에 내릴 때마다 나는 늘 좌우를 헷갈린다. 오늘은 오른쪽으로 들어가야 하는 게 맞다. 부서 앞에서 출근 카드를 찍고 창가 쪽의 내 자리로 가면, 언제나 일찍 출근을 하는 M님의 뒷모습이 보이고, 마찬가지로 언제나 일찍 출근하는 Y님의 옆모습이 보인다. 나는 Y님을 지나 나에게 배정된 자리에 앉으며 꾸벅 목례를 한다.
밝은 목소리의 ‘안녕하세요’가 아니라 그저 꾸벅임일 뿐인 이유는 애석하게도 내가 Y를 혐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Y를 혐오하는 이유는 Y가 혐오스러운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 지겨운 이야기는 좀 더 나중에 설명하는 것으로 하겠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으며 왼쪽 컴퓨터를 켠다. 왼쪽 컴퓨터만 켜는 이유는 오른쪽 컴퓨터가 이미 켜져 있기 때문이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원격이 가능하도록 오른쪽의 리눅스 컴퓨터는 주야장천 켜 둔 채로 퇴근을 한다. 그만큼 이 회사에서는 혹시 모를 일이란 게 꽤나 자주 발생한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연출부, 제작부, 믹싱실, 편집실, DI실, 기타 등등 스텝들-에게 시간관념과 요일 관념이 없기 때문이다. 더 넓게 보자면 한국 영화산업 전체의 문제일 테니 그들에게 책임을 지우고 싶은 마음은 딱히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요일 밤 12시에 갑자기 전화를 받고 컴퓨터 앞에 앉아 원격 리모트 뷰에 접속하는 순간에는 뒷목에서부터 뜨겁게 열이 뻗쳐오른다. 그러나 4달째 새벽 4시에 퇴근하고 있는 옆 팀의 동료들을 보며 뻗쳐오르는 짜증을 간신히 참는다. 그래, 이런 것에 일일이 짜증 낼 거라면 이 일을 관둬야지. 그래, 우리 일이 다 그렇지. 그래그래 그런 말들이 이 산업을 점점 더 악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고 있는 게 분명하지만 아무런 힘도 없는 내가 뭘 할 수 있겠나.
10시부터 13시까지는 버티는 시간이다. 경영지원팀의 H가 올려주는 급식 식단표를 보고 또 보면서 점심을 먹을 생각만 한다. 그마저도 눈치 없이 12시나 1시에 컨펌 회의를 잡고 회사로 오는 감독들이 있는 날에는 휴게시간 같은 것은 없다.
지금 나는 프로젝트의 끝과, 또 다른 프로젝트의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있는 이른바 ‘중간기간’에 놓여있다. 그렇기 때문에 요즈음의 내 주된 업무는 작업본을 체크하거나 시사 컨펌을 준비하는 것이 아닌 ‘지루함을 견디는 일’이다.
차라리 일이 바쁜 게 좋겠어, 라고 생각하는 즈음엔 또 너무 많은 일이 밀고 들어오기 때문에 나는 아예 생각하는 것을 그만둔다. 카톡을 켜고 친구들에게 ‘너희는 사는 게 재미있니’ 같은 말을 쓰다가 지운다. 어차피 답변을 요하는 질문도 아니었으므로 그 물음은 시종일관 내 안에서 떠나지 않는다.
너희는 사는 게 재미있니.
너는 사는 게 재미있니.
나 너 좋아하냐. 가 아니라… 나 사는 게 재미있냐. (아니.)
2.
영화과를 졸업하고 취직을 했다가, 다시 영화를 해야겠다는 결연한 다짐으로 제작부로 참여했던 첫 장편영화가 각고의 일들 끝에 마침내 개봉했던 게 벌써 2년 전이다. 때는 초여름이었고 이미 그 영화를 찍은 지 1년하고도 반이 지났을 때였으므로 스텝들 중에는 더 이상 영화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고 어디론가 사라져서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개중 연출부 막내이자 지방 촬영 당시의 룸메이트였던 B와는 종종 연락을 하고 지냈기에, 개봉 소식을 들은 나는 B와 오랜만에 만나 함께 그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함께했던 헤드 스텝들에게 종종 구전설화같이 듣곤 했다. 첫 영화가 개봉했을 때의 심정에 대해서. 한 녹음기사님이 들려준 것은 이렇다: 개봉하자마자 첫날 보러 갔는데, 극장에 사람이 자신을 포함해 딱 2명 밖에 없었다. 저 사람은 어쩌다 이걸 보러왔을까 생각하다가 영화가 끝나고 극장 불이 켜졌는데, 알고 보니 영화를 함께 찍은 조감독님이었다.
그리고 녹음기사님과 조감독님은 서로 머쓱하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날 상영관에는 나와 B, 그리고 어떤 중년 남자와 젊은 여자, 이렇게 총 4명이 있었다. 젊은 여자는 영화를 보다가 중간에 나갔고 중년 남자도 영화가 끝나기 전에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결국 영화를 마지막까지 본 것은 우리 둘뿐이었고 엔딩크레딧이 끝까지 다 올라가고, 별로 그립지는 않은 이름들의 향연을 다 감상한 후에 우리는 참았던 웃음을 터뜨렸다.
아… 정말 형편없네.
이거 만든다고 그렇게 개고생을 했구나.
그리고 우리는 곧 웃음을 거두고 오랫동안 침묵했다.
이제와 새삼스럽게 그 일을 떠올리는 건 오늘 마침 B에게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같이 아는 제작실장에게서 단편 조감독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당연히 거절할 예정이지만 그냥 내 생각이 나서, B는 연락을 했다고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B와 나는 아직도 이 일을 하고 있고 종종 연락을 하고 있다. 비록 B는 아직 감독이 되지 못했고 나도 현장 일을 관두고 후반 팀에 들어왔지만, 크게 변한 것은 없다. (사실 인격모독을 당하는 빈도가 이전보다 줄어들긴 한 것 같다.)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주인공의 친구는 주인공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넌 행복하지? 네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사니까.”
주인공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하고 싶은 음악 하면서 밴드 하면서 사는데도 말이다. 열네 살 때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도 인상 깊은 장면이었지만 지금은 더더욱 그 장면이 자주 생각나곤 한다.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도 안 행복하다면 이 인생이 정말 살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싶다가도 이젠, 행복은 그런 거에서 오는 게 아니라는 걸 이해할 만큼은 나이를 먹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건 전부 부차적인 것이라는 얘기다.
3.
누구든 전업 근로를 하다 보면 알게 된다.
회사에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그러니까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자, 이제부터 혐오스러운 Y에 대한 이야기다. Y가 내 일상에 들어온 건 지금으로부터 약 9개월 전인 작년 7월이었다. 상사가 짠 프로젝트 표에서 나와 Y는 같은 작품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전까지 존재한다는 사실만 알았던 Y가 내 옆으로 자리를 옮겨왔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물론 그 많은 좋은 후배들을 다 제치고 하필 Y가 나와 한 팀이 되었다는 사실이 다소 짜증스러웠지만 나는 성숙한 사회인이므로 그 사실을 굳이 티 내려고 하지는 않았다. 보통 옆자리에 한 달 정도 앉아서 하루 10시간 이상을 붙어 지내다 보면 싫어도 그 사람에 대해서 잘 알게 된다. 처음의 혐오감은 물리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Y는 귀를 파고 얼굴을 매만지는 습관이 있었다. 누구나 귀는 파고 누구나 얼굴은 종종 만지기 때문에 그 자체는 별것 아닌 일이다. 그러나 Y는 5분에 한 번씩 그 일을 수행한다. 그리고 얼굴과 귀에서 떼어낸 불순물을 눈앞으로 가져가 ‘확인’한다. 그리고… 엄지와 검지를 비비며 그걸 내 쪽으로 훌훌 털어낸다. 그게 하루에 20번 이상 반복된다.
그러니까, 처음의 혐오감은 물리적인 역겨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고 두 달, 세 달, 마침내 9개월에 이르기까지 강제로 그와 함께하면서, 모든 좋지 않은 특징들을 그대로 답습하는 그를 속수무책으로 혐오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와 매일 9시간 이상을 함께해야만 하는 나의 이 평범하고도 지겨운 불행은 작금의 내 인생에 이는 환멸의 바람을 강화시켜 주고 있다.
물론 그게 Y라는 인간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다만 그게 Y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내가 글을 쓴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마찬가지로 내 상사가 국궁을 하고, 추리소설을 즐겨 읽으며, 다도를 사랑해서 언젠가는 찻집을 운영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는 사실 따위도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의 영혼을 이루는 대부분의 것들이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또 그런 것들이 우리의 관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루 중 절반을 함께 보내며 매일매일 얼굴을 맞대고 산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애타게 보고 싶어 하면서도 그토록 오랜만에 만나게 되는 이해할 수 없는 사실과는 대조적으로 말이다.
너무나 평범하고 당연한 일이지만 이것은 비극이 아닐 리 없다.
4.
마침내 점심시간이 된다. 점심시간을 기다리는 이유는 하나다. 합법적으로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갈 수 있다는 점도 물론 큰 요인 중 하나지만, 매일이 똑같은 나의 하루하루에서(가끔 너무 똑같아서 이게 어제 있었던 일인지 그제 있었던 일인지조차도 헷갈린다) 그나마 다른 점이라고는 그날 먹는 점심 메뉴 정도뿐이기 때문이다. 나와 친한 동료들은 빠르게 점심을 먹은 후 남은 30분여간 회사 주변을 산책하며 시간을 보낸다. 매주 금요일에는 다 같이 로또를 한 장씩 산다. 회사 앞 로또 집은 장사가 아주 잘되어서, 언제나 다른 부서의 직원들도 마주친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 생각은 다 똑같구나, 같은 심심한 감상이 든다. 일확천금, 인생 한 방, 회사 탈출, 재밌는 인생, 뭐 그런 실현 가능성 없는 상상들도.
보통 1시 57분쯤 우리는 다시 한번 로비로 들어와서, 다시 한번 위쪽으로 옮겨지기 위해 긴 시간 동안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오후가 되면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든다. ‘아, 그래도 이제 오후다. 조금만 있으면 집에 갈 수 있다.’와 ‘씨발, 다섯시간이나 남았잖아.’라는 생각이다. 지루한 표정으로 업무에 복귀할 때쯤, 어제도 역시 새벽 네다섯 시에 퇴근한 옆 팀 동료들이 그제야 죽상을 하고선 출근 카드를 찍고 들어온다. 쇼펜하우어가 그랬던가. 인간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는 건 가까운 이의 위로의 말이나 따뜻한 포옹이 아니라, 나보다 불행한 다른 이를 보는 일이라고.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며 자신을 위로하는 인물이 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근태 현황을 보면 프로젝트 배정에서 살아남은 나 자신의 처지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안도감이 드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곤 이 인생을 합리화하기 위해 내 지루함을 긍정하면서 오후를 보낸다.
7시가 되자마자 퇴근 카드를 찍고 회사를 나서야 했으나 오늘은 29분이나 야근을 했다. 운 좋게 지하 4층에 세워둘 수 있었던 내 낡은 차를 향해 엘리베이터를 탄다. 41층에서 지하 5층까지 한 번에 내려가게 되면 귀가 먹먹해 꼭 침을 한 번씩 삼켜야 한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41층의 비상계단은 이 건물의 25층까지만 갈 수 있게 되어있다. 언젠가 우스갯소리로 동료들과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만약 좀비 사태가 일어나 엘리베이터가 마비되면 계단으로 1층까지 내려갈 수가 없으니 우리는 이곳에 고립되어서 다 죽을 거라고.
퇴근을 할 때면 언제나 91.9 FM 라디오를 들으며 집으로 돌아간다. 7시에서 8시 사이에는 한창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송출되고 있을 시간이다.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 노래들만 나오는 방송이라 생각을 비울 수 있어 좋다. 듣다 보면 가끔씩 좋은 노래를 알게 되는 때도 있다.
디제이는 익숙한 전주의 노래를 틀면서, 사람들이 특정 노래를 신청하는 빈도가 높을수록 그 노래를 자주 틀 수밖에 없다는 등의 말을 덧붙인다.
노래는 바위가 절벽에서 굴러떨어지기 직전 시지프스가 안개 속을 들여다보는 모습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시지프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신들로부터 바위를 산으로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는다. 산꼭대기에 다다르면 바위는 산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바위를 따라 산에서 내려간 후 처음부터 다시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한다. 그 행위를 영원히 반복하는 것이다.
카뮈는 노동자의 삶을 시지프스에 비유한 적이 있다. 현대사회의 노동자들 역시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에 삶을 다 바치고 있으며, 그 운명도 시지프스만큼 부조리하다는 것이다.
끝도, 희망도, 의미도 없는 바위 굴리기가 반복되는 삶. 시지프스가 쉴 수 있는 것은 꼭대기에 다다른 후 바위가 아래로 굴러떨어질 때, 자신도 바위를 따라 아래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순간에 찾아오는 짧은 시간뿐이다. 내 운명이 부조리한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이 사회의 하부구조를 이루는 우리-노동자-들이 시지프스와 닮아있다는 것은 부정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언제나 궁금하다. 사람들이 이걸 어떻게 견디는지.
5.
이미 수백수천 번을 오가며 다 외워버린 길에서 IC를 두 개, 한강 다리를 한 개, 지하도로를 세 개 지나 좌회전을 하면 우리 집이 나온다.
주차를 하고 집으로 올라간다. 주차 문제로 옥신각신하곤 했던 202호 아저씨와도, 얼마 전 401호가 이사 가면서 주차 자리가 하나 비어 더 이상 얼굴을 맞대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무척 다행인 일이다. 내일은 목요일이니 하루만 더 버티면 금요일이 올 것이다. 이 또한 무척 다행인 일이다. 금요일에는 급식이 없는 날이므로 나와 동료들은 회사 뒤편 상가에 가서 점심을 사 먹을 것이다. 이번 주는 솥 밥을 사 먹기로 했고 나는 마라가지솥밥을 먹을 예정이다. 금요일 저녁에는 가족과 고깃집에 가기로 했고, 또한 무척 다행히도 회사에 가지 않는 날인 토요일에는 친구의 생일을 맞아 경복궁엘 놀러 가려고 한다. 멋진 사진을 많이 찍어둘 것이다. 대체공휴일인 다음 달 첫 주의 월요일에는 연출부의 B와 오랜만에 만나 이 업계의 크고 작은 회포들을 풀게 될 것이다.
아무리 거지 같은 작품이라도 무척 다행히도 끝은 나고, 무척 다행히도 내 필모그래피가 되어 크레딧이 쌓인다. 그리고 무척 다행히도 나는 아직 이 일에서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
아마도 이런 작고 사소한 무척 다행인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수집해 가다 보면 언젠가 이 지겨움을, 견디는 것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다소 나이브한 생각을 하면서, 엘리베이터가 없는 낡은 빌라의 5층 계단을 올라가는 고행을 수행한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남은 과업과 포트폴리오 작업과 저녁밥 따위를 생각하면서, 또 똑같은 내일을 맞을 것이다.
* 해당 글은 2030 여성 창작집 [마지막 날 다음 날]에 수록된 에세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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