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도 눈물도 없는

소기업 콜센터 노동자의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story

by 유명상


※본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상호와 인명 등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1.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내가 어떻게 창문 없는 독방에 갇힌 죄수의 괴로움을 이해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 같다. 하루의 약 절반을 보내는 내 공간, 내 자리는 전면 창의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원래는 일하는 공간이 아닌 곳을 임시로 얼렁뚱땅 마련해 둔 자리라, 파티션 따위는 없다. 맞은편이라고는 했지만 사실은 창문과 완전히 밀착해 있다. 덕분에 정오가 되면 얇은 레이스 커튼을 뚫고 들어오는 강한 햇빛 때문에 엄청나게 인상을 찌푸리며 일해야만 한다. (최부장이 물었다. “괜찮지?”, 나는 좁은 사무실을 둘러보며 대답한다. “네, 괜찮아요.”) 커튼 뒤에 비치는 해의 위치는 매일 매시간 정확하게 변화한다. 대체로 오전에는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내 시야 왼편을 천장의 구조물이 가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해가 의식되기 시작하는 건 일을 하기가 한층 더 지겨워지는 오후 1시 반 경부터이다. 해는 정확히 내 머리 위에 떠 있다가, 2시 반에 1차 자체 휴게시간 겸 화장실 타임을 가지기 위해 일어나 밖으로 나갈 때는 오른편으로 30도가량 기울어 있고, 2차 자체 휴게시간 겸 화장실 타임인 4시 반에는 완전히 오른쪽으로 옮겨와 있다. 그리고 퇴근 시간을 1시간 앞둔 5시에는 오른쪽 모니터 끝부분에 걸려 조금씩 내 시야에서 사라지기 시작한다.

대체로 나는 4시 반부터 기울어진 해를 보며 크게 안심한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넘겼구나 생각하며 조금만 더 참으면 이 지긋지긋한 사무실을 박차고 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그런데 그날은 해가 뜨지 않았다. 전날 밤부터 하루 종일 눈이 쏟아지는 통에 해는커녕 하늘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21세기 사람이고, 사방에 시계가 널려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보이던 ‘해의 움직임’이 육안으로 보이지 않아 시간을 보내기가 더욱 괴롭게 느껴졌다. 그리고 생각한 것이다. 창문 없는 독방에 갇힌 죄수의 괴로움에 대해서.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에 대해서.

사실 이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3주 전, 나는 3년간 일한 회사에서 퇴사했다. 그리고 약 2주 전, 1개월 단기 계약직으로 한 컨설팅 회사(일명 ‘날벼락 컨설팅’)에 입사했다. 퇴사하자마자 단기 계약직을 찾은 이유는 딱 하나였다. 바로 돈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실업급여 때문에. 나는 돈이 없고, 퇴직금은 이직용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 학원비로 사용할 예정이었으므로 여분의 돈이 꼭 필요했다. 퇴사 2주 전부터는 매일 같이 알바몬을 들락거렸고 이력서를 스무 군데 넘게 넣었으나 연락이 온 곳은 딱 두 군데였다. 그리고 날벼락 컨설팅은 그 중 근무 기간이 더 짧은 곳이었다. 정말로 딱 한 달만 근무하면 되는 곳.

이제 와서 후회해 봤자 돌이킬 수 없으니 최대 음량으로 블랙 사바스를 들으며 트로피칼 믹스 3미리를 존나게 피우는 것으로 후회를 대신한다.

날벼락 컨설팅 첫 출근날 : 나를 당황하게 한 것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로는 면접을 봤던 사수 겸 담당자가 3일 전 퇴사했다는 것. 그 자리에는 대신 최부장이 있었는데, 그는 3일 전부터 출근하기 시작한 사람으로, 자녀들을 결혼시킨 후 기업 사장직을 명예퇴직하고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집에서 놀기는 좀이 쑤셔서 작은 회사에 소일거리를 하러 들어온 사람이었다. 그는 적어도 70살은 되어 보였다. 또한 컴맹이기도 해서 컴퓨터 업무에 사소한 에러 사항이 많았다. 무엇보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사했기 때문에, 상사로서 나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점이나 지시할 수 있는 사항이 거의 없었다.

두 번째로는 분명히 ‘알바생 3명을 뽑을 거’라고 했으나 막상 가보니 나 한 명뿐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물론 사라진 전임 담당자가 했던 말이며 그가 사라진 후 사무실에 남은 사람들에게 ‘두 명 더 오는 건가요?’라고 물었을 때 그 점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순진하게도 첫 출근 날 아침까지도 ‘다른 두 명은 어떤 사람들일까? 여자들이라면 좋겠는데’ 같은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세 번째로는 내가 일할 공간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모름지기 첫 출근자의 도리로서 정해진 출근 시간보다 10분 더 일찍 회사에 도착했다. 문은 잠겨있었고 아무도 없었다. 9시 정각이 가까워지자 최부장이 와서 문을 열어주었다. 사무실은 중기청 전세대출을 풀로 땅겨서 얻은 우리 집 거실만 했다. 외곽을 따라 간신히 세워둔 파티션이 세 개의 자리를 나누어놓았고, 그중 가장 중앙에 있는 게 최부장의 자리였다. 앞쪽에는 회의용인듯한 테이블 하나와 스탠드용 TV가 있었고 그 뒤에 정수기가 하나 있었다. 그 오른쪽에는 앞서 말했던 레이스 커튼이 쳐진 전면 창이 있고 긴 직사각형의 테이블이 창을 따라 덩그러니 놓여있었는데, 테이블 위에는 전화기 세 대와 전화기에 연결해 사용하는 텔레마케터용 헤드셋이 놓여있었다. 아무리 봐도 내 자리는 없었다. 최부장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 이제 자리를 만들어 볼까?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전 회사는 선녀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정말로 진심이다. 요즘 나에게 유일하게 위안이 되는 사실은 내가 날벼락 컨설팅의 정직원이 아니라 알바생이라는 점이다.





2.


내가 주로 하는 일은 전화다. 아니, ‘주로’가 아니라, 그냥 언제나 전화를 하고 있다. 그게 내가 맡은 일이다. 날벼락 컨설팅 홈페이지에 가입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아웃바운드 영업. 컨설팅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영원히 전화를 거는 것이 나의 임무이다. 일한 지 4일째 되었을 때 어떤 중년 남자가 수화기에 대고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야 이 씨발 새끼야-! 확 때려죽이기 전에 전화하지 마-!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는 이랬다. 아이씨, 그런 거 가입한 적 없다고. (아니 님이 한 자 한 자 입력해서 가입했다니깐요) 또 하루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화 안 내요. 내가 왜 화를 내요? 그냥 불쌍한 사람들인데. (네?) 불쌍하니까 들어봐 줄게요. (네?)

사실 이건 날벼락 컨설팅의 문제는 아니다. 그냥 아웃바운드 콜의 고질적인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날벼락 컨설팅에서 매일 출근을 하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단 3명뿐이고, 사무실이 무척 좁은 데다 일하면서 소리를 내는 사람은 나 한 명뿐이라서 모두가 내 전화 영업을 들어야만 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은 조금 더 끔찍해진다. 그리고 퇴근 전에 그날의 성과-총 call 수, 연결 불가했던 전화 수, 연결된 전화 수, 그중 긍정적 반응과 부정적 반응-을 정리해 최부장에게 제출하고 가야 한다.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보니 전화를 걸 수 있는 수는 한정적인 데 반해 실적은 매일 보고되어야 해서 이게 또 나름대로 주 5일 나인 투 식스를 하는 알바생으로서는 고역이다.

첫날에는 130통 정도의 전화를 걸었다. 둘째 날은 170통쯤. 셋째 날은 또 150통 정도. 그러나 진짜 문제는 나흘째부터였다. 전화를 모두 한 바퀴 돌리고 나자 이제는 ‘통화했을 때 긍정적인 답변을 했으나 4일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계약을 완료하지 않은’ 사람들로 기록된 인물들에게 다시금 전화를 돌려야 했다. 그리곤 말하는 거다.

안녕하세요, 며칠 전에 통화했던 날벼락 컨설팅인데요, 다름이 아니라 지난번에 이용해 보겠다고 하셔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직 확인이 안 되어서 다시 전화드렸습니다. 문자 안내도 보내드렸었는데 혹시 어려운 점이 있으셨을까요?

전화하지 마 씨발 새끼야 같은 말을 들은 후에도 내 손으로 직접 전화를 걸고 이 대화를 수백 번 반복해 나가기 위해서는 자기 암시가 필요했다. 소심해지지 마. 이건 돈 받고 하는 일이잖아. 싫다고 하거나 욕하면 그냥 끊으면 그만이야. 그러니까 이렇게 생각해. 나는 전화하는 기계다. 나는 아무 생각도 없다. 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전화머신이다.





2-1.


불행이면서 동시에 다행이기도 한 사실은 회사 건물 바로 앞에 인형 뽑기 샵이 있었다는 점이다. 아침 7시 반에 집에서 출발해 오조 오억 개의 전화번호가 기다리고 있는 날벼락 컨설팅의 공유오피스 건물에 도달하면 세상이 지옥같이 느껴진다. 그리곤 곧 이렇게 생각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아니 씨발 내가 출근도 참았는데 인형 뽑기까지 참아야 해?’ 나는 곧 속수무책으로 인형 뽑기에 중독됐다. 이래 봬도 꽤 성실한 편이라서 언제나 출근 시간 20분 전에 회사에 도착했고, 그래서 출근길에는 항상 인형 뽑기 샵에 들러도 될만한 시간이 있었다. 가끔은 점심시간이나 퇴근길에도 들렀다. 인형 뽑기는 내 지옥 같은 삶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그것만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렇게 3주 만에 인형 뽑기에 38만원을 탕진했고 나에게 남은 수많은 인형들과 카드 빚을 보며, 날벼락 컨설팅을 퇴사하는 날을 마지막으로 인형 뽑기에서 은퇴하기로 다짐했다. 그 다짐을 하고도 또 남은 근무 기간 1주일 동안 얼마의 돈을 더 탕진했다.

하지만 “럭키헤븐 인형 뽑기”, 네가 없었다면 나는 견디지 못했을 거야.





2-2.


점심시간에는 항상 다 같이 점심을 먹었다.

여기서 두 번째 인물이 등장하는데, 나는 날벼락 컨설팅에서 근무한 일주일 동안 그 남자의 이름을 몰랐다. 그는 내 또래로 보였고 ‘송대리’라는 호칭으로 불리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최부장과 나, 송대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오늘은 뭘 먹을지에 대해 짧게 이야기를 나누고 밖으로 나간다. 대부분은 부장이 정했고 부장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없을 때는 송대리가 정했기 때문에 나에게까지 선택권이 돌아오는 날은 잘 없었다.

송대리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부장도 그렇게 말이 많은 타입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항상 점심을 먹는 동안 숨이 막혀 죽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부장이 말이라도 꺼내면 혼신의 힘을 다해서 대답을 했다. 왜냐하면 송대리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2주째 되는 날 송대리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무려 혜교였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남의 이름 가지고 놀리고 싶지는 않지만, 30대 남자 이름이 송혜교라니…… 솔직히 개웃긴데 어떡하냐?

나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냈을 혜교가 그간의 삶 동안 얼마나 많은 이름 장난과 이름 놀림을 당했을지를 생각해 보았다.

나였으면 개명했다.





3.


그리고 그 사건은 출근한 지 딱 2주째가 되는 금요일에 일어났다. 그날은 유난히 사람들이 전화를 안 받는 날이었다.


image01.png 사망플래그

최부장은 마케팅에 능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건 혜교도 마찬가지였고, 가끔씩 회사에 오는 김팀장이나 이대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날벼락 컨설팅에는 마케팅 전략이나 수립 따위를 잘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물론 나도 그렇고.

그런 상황에서 무작정 전화만 뺑뺑이 돌리고 있으니 계약률은 한번 오른 후로는 좀처럼 더 높아지지가 않았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으니 나는 챗지피티를 켜서 묻곤 했다. 이러이러한 상황인데, 계약 성사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통화를 해야 할까? 그러면 챗지피티는 대답을 해줬고, 그걸 토대로 스크립트를 짜서 읊어댔다.

지피티는 하나의 방법을 더 추천해 줬다.


실화

그래서 나는 지난 2주간 4회 이상 부재중인 고객들에게는 문자를 발송하기 시작했다. 엄청 친절하게, 지피티의 추천대로 이모티콘까지 하나 붙여서. 문제는 이걸 내 휴대폰으로 해야 했다는 점이다. 어떻게 해서 내 폰으로 하나하나 문자를 발송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하겠다....

그 남자의 이름은 장준순이었다. 1963년생.

목요일 오전 10시 32분경 나는 전화를 받지 않은 장준순에게 예의 그 친절 문자를 보냈고, 준순은 나를 스팸으로 신고했다. 통신사에서는 신고를 접수하여 다음 날 오후 2시경 나에게 ‘당신의 번호가 스팸으로 신고되어 3개월 동안 휴대폰 이용이 정지될 것이다’라고 통보했다.

그날 오후 3시부터 즉각 휴대폰이 정지되었다. 통신사(114)를 제외한 모든 전화를 걸 수도 받을 수도 없었고, 당연히 문자 송수신도 불가했고 데이터도 차단되었다. 내 명의 자체가 정지된 것이었기 때문에 번호를 바꾸거나 새로운 기계를 개통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통신사에 전화를 걸어 스팸 문자가 아니며, 가입해서 ‘마케팅 동의’를 한 일부 고객을 대상으로 보낸 계약 안내 문자임을 호소했다. 통신사 직원은 말했다.

일단 고객님이 문자를 직접 보낸 건 맞으세요?

네. 제가 보낸 건 맞아요.

그럼 아마 힘들 거예요.

그럼에도 일단 소명자료를 보내보면 ‘검토는 해본다’기에 나는 매우, 엄청나게 열받은 채로 장준순의 “마케팅 동의” 내역을 캡처하고 문자 내용과 통화 기록 열람 동의서 등을 작성하여 통신사에 메일을 보냈다. (앞으로 고객님과 어떻게 소통하면 좋을까요? 무슨 소통이요? 스팸 건 관련해서 자료 보내거나 결과 알려드릴 다른 전화번호는 없으세요? 네. 저 혼자 살아서요. 연락받으실만한 다른 번호가 하나도 없으세요? 네……. 그럼 어떡할까요? 그러게요? / 잠시 침묵 / 이메일만으로 소통해야겠네요.)

오후 3시30분경, 나는 최부장에게 가서 네 말대로 내 폰으로 문자를 보내다가 장준순한테 스팸으로 신고당했다고 보고했다. 부장은 그제야 나에게 회사에서 사용하는 인터넷 문자서비스 아이디를 알려주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며 알게 된 몇 가지 사실들이 있다. 서울 시내는 퍼블릭 와이파이가 꽤 잘 되어 있어서, 지하철역과 시내버스 안에서는 폰이 정지된 사람도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이파이가 안되는 구간도 있다는 점. 그런 구간이면 준순과 부장을 떠올리고 저주하게 된다는 점.

집에 도착해서는 쿠팡에서 해외여행용으로 주로 사용하는 포켓와이파이를 한 달 약정으로 주문했다. 다음 주에 도착한다고 되어 있었기 때문에 주말 동안에는 퍼블릭 와이파이에 의지한 채 살아야 했다. 친구들은 전화, 아니 보이스톡으로 연락해서 웃어댔다. 매일 사용하던 삼성페이 대신 카드를 들고 다녔고, 초행길은 사전에 경로를 캡처해서 저장해두었다. 학원 강의를 결제하러 갔을 때는 개강 전에 안내 문자를 준다기에 카톡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문자 말고 꼭 카톡으로. 왜냐하면 제가 지금 준순이 때문에, 아니 그게 아니고 아무튼 제가 좀 사정이 있어서 5월 21일까지 전화나 문자가 안되거든요.


image03.png ......






4.


그즈음 내 스트레스는 극에 달해서 음주와 흡연과 과식과 블랙사바스 듣기 그리고 인형 뽑기는 더욱 심해졌다.

때마침 날벼락 컨설팅에서는 신입 직원을 채용하기 위해 여기저기 공고를 내고 있었다. 물론 나처럼 전화만 하는 알바는 아니었고 회사 운영을 위한 이것저것을 하는 고객관리 및 사무 담당을 구하고 있었다. 조건에 맞는 사람이 잘 구해지지 않자,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부장은 나에게 날벼락 컨설팅에서 계속 함께 일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처음 3번 정도는 웃으며 거절했는데 1주일간 계속 물어보니 짜증을 참기가 어려웠다. 그만 좀 물어보면 안 되나? 난 여기가 싫어. 폰 정지된 이 병신같은 상황도 싫고 집에서 1시간 반 걸리는 것도 싫고 직원이 3명인 것도 싫고 매일 다 같이 점심 먹어야 하는 것도 싫고 절절매며 하루 종일 전화해야 하는 것도 싫고 오후마다 눈부셔 죽겠는 채로 일해야 하는 것도 생판 모르는 인간들한테 욕 듣는 것도 과식해서 살찌는 것도 인형 뽑아서 돈 낭비하는 것도 숨 쉬는 것도 사는 것도 싫어.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꾹 참고 웃으며 계속해서 거절해야만 할 따름이었다.

다만 내가 이 일을 한 달간 하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나에 대한 것들이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서는 절대 살 수가 없는 인간이라는 점……… 말이다. 좋은 노동 환경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었던-아니, 솔직히 개쓰레기 노동환경이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었던-제작부 일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영화를 만드는 게 내게 의미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의미와 재미-그 둘 중 무엇도 느낄 수 없는 일을 나는 도저히 견디지 못한다. 나는 그런 종류의 인간인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 하는 노동에서 굳이 재미나 의미를 찾지 않아도 그럭저럭 잘 견디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는 도저히 살 수가 없다. 가치판단을 떠나서 그냥 나는 그런 인간이었던 거다.

사람이 몇 주간 매일 같이 점심을 먹다 보면 좋든 싫든 서로에 대한 몇 가지 사실들을 알게 되고는 한다. 이를테면 최부장에게 자식이 셋 있고 셋 다 결혼을 했으며, 며느리는 경기도 어느 도시 출신이며 먹성이 아주 좋은 사람이고, 주말에는 주로 등산을 하고 성당을 간다든가 하는 것들. 그리고 혜교에게는 동생이 한 명 있었고 그는 아직 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다. 혜교는 미대를 나왔고 예전에는 영상과 관련한 일을 했었다. 언젠가 혜교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잠시 대화 비슷한 것을 나누었을 때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럼 대리님은 그 일을 다시 하실 생각은 없으세요?”

내가 물었다.

“네. 지금 하는 일이 훨씬 가성비가 좋거든요.”

혜교는 대답했다.

혜교의 말이 사실이다. 영상이나 영화는 노동자 입장에서는 투자하는 공력에 비해 가성비가 심하게 떨어진다. 게다가 근래에는 AI가 급부상하면서 직업의 존폐 자체가 불확실하고, 시장도 어려워져 후반작업 회사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있는 실정이었다. 최부장이 나에게 정직원이 되면 준다고 했던 월급은 영화계 포스트 프로덕션 신입 초봉보다 훨씬 높다는 점을 말해두겠다. 게다가 날벼락 컨설팅은 점심시간이 1시간 30분이었고 야근을 하는 법이 없었다. 반면 영화 일은…… 이하 생략한다.

최부장이 나에게 또다시 입사를 제안한다면 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 그래도 싫어.

그러니까 이건 그냥 각자의 기호와 가치 기준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와 혜교 같은 사람들은 영원히 서로를 이해 못 할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한다. 어차피 너나 나나 주 120시간 운운하는 미친 소리에는 분노하게 되고 월급날 입금이 늦어지면 초조해지는 노동자 아니냐. 그러니까 뭐가 어찌 되었든 너를 응원한다. 달리 내가 누굴 응원할 수 있겠나?





5.


날벼락 컨설팅으로의 마지막 출근 날, 나는 여전히 블랙사바스를 듣고 있었다. 그러나 최대 음량이 아닌 적정 음량으로. 과식은 하지 않았고 인형 뽑기에는 딱 1만 원만 썼다. 기대하지 않았던 ‘소명 절차’는 긍정적으로 검토되었고 나의 무고함이 인정되어 휴대폰은 정지가 풀렸다. 비록 이미 결제한 포켓와이파이는 환불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날벼락 컨설팅에서 일하지 않은 여가 시간 동안에도 역시 몇 개의 일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주말에 사과 맥주를 마시면서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다가 맥주를 쏟아서 스마트도서관에서 빌린 소설책이 다 젖어버렸고 그걸 티 안 나게 말리기 위해 냉장고에 넣어놨다던가, 고양이가 캣그라스를 먹고 이불에 토를 해서 이불을 빨아 베란다에 널어놨는데 열어둔 창으로 비가 들이닥쳐서 이불이 빗물로 다 젖었다든가 하는 등의 말 하나 마나 한 그런 일들 말이다. 그리고 그런 말 하나 마나 하는 일들을 겪지 않는 모든 시간 동안에는 언제나 날벼락 컨설팅의 채광이 심하게 좋은 전면 창 앞에 앉아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즈음 서울은 눈이 왔다가 봄이 되기를 반복하는 애매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은 확실히 봄이었다. 나는 패딩을 벗었고 세금을 제한 1달 치 임금 약 이백십만 원을 지급받았다. 다다음 주에는 고용센터에 가서 실업급여를 신청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 달부터는 이직용 포트폴리오를 만들러 학원에 개근할 것이고, 돌아오는 봄 즈음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 있을 것이다.

나에게 아직 남아있는 몇 가지 꿈과 희망들을 다시 생각해 본다.

이를테면 페이지 크레딧에 들어가고 싶다던가, 언젠가는 반드시 진짜 멋진 영화를 제작하겠다든가 하는 것들. 모든 것이 변했지만 달리 말하면 딱히 변한 것은 없다. 다만 어느 날 우연히 누군가의 영업 전화를 받게 된다면 좀 더 상냥하게 전화를 받을 예정이다. 전화를 건 그 사람은 사람일 테니까.








* 해당 글은 2030 여성 창작집 [마지막 날 다음 날]에 수록된 에세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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