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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푸치노 Jul 27. 2023

점프한다고 욕하지 말자.

네 번의 순례길과 다시 떠나는 다섯 번째


순례길을 걷기 시작하고 대략 보름쯤 지나면 걷는 것에 적응한다기보다는 어디 한 군데라도 슬슬 아프기 시작하고 힘들어도 걷는 게 신나던 초반과는 달리 자꾸 다른 생각들이 침범해 오기 시작한다.

매일 걸으니 발바닥에는 항상 열이 나고 숙소에 도착해서 찬물에 발을 씻고 침대에서 아무리 발을 주무르면서 마사지를 해보아도 발이 붓고 얼얼해서 쉽게 잠들지 못하는 나날들이 계속되지만 다음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부어 있는 발을 보면서도 힘을 내보자고 다짐하면서 길을 나서게 된다.

나는 항상 아침 출발 전에 진통제를 먹고 걷기 시작했다. 족저근막염도 있고 대략 3시간 정도 걷고 나면 내 몸 여기저기서 아프다고 아우성치기 시작하기 때문에 초반에 진통제를 먹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걷는 동안 들르게 되는 마을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쉴 때면 왜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온갖 잡생각들이 몰려온다.

발가락에 물집이 잡혀서 걷는 내내 불편함을 동반하고 있고 온몸에서 땀이 줄줄 타고 흘러내리니 내 몸에서 나는 땀 냄새를 견딜 수가 없으며 그냥 이대로 멈추고 싶은 악마의 속삭임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한껏 지친 얼굴로 남편 얼굴을 보고 있노라니 그럭저럭 잘 견뎌내고 있는 것 같아서 같이 오자고 했던 나 자신이 오히려 더 머쓱했고 이렇게 걷는 걸 힘들어하면서도 왜 이 길을 꼭 오려고 했던 것인지 근원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나는 환상을 꿈꾸면서 온 게 아닐까 하는 자책도 했다.

긴 거리를 걷는다는 건 그만큼 많은 준비도 필요했을 터인데 나의 체력을 너무 자신했고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공부를 덜 하고 온 게 아닌가 하는 후회가 폭풍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 나 도저히 못 걷겠어. 덥고 힘들고 발바닥도 너무 아파.”

“ 그래? 그럼 어떻게 하지? 숙소는 이미 예약을 해놔서 지금 이 마을에서 쉴 수는 없잖아.”

“ ............ ”

“ 그럼, 우리 버스 타고 숙소가 있는 마을까지 갈까? ”

“ 힘들어도 걸어야 하는 거 아닌가? 버스 타고 가는건 순례길을 걷는게 아니잖아? ”

“ 그게 무슨 상관이야? 몸을 돌보는 게 더 중요하지. ”


나의 발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 우리는 예약해 놓은 숙소가 있는 도시까지 버스를 타고 가기로 결정했다.

작은 마을의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앉아 있으니 만감이 교차했다.

발이 아픈 것도 속이 상하고 몸이 힘든 만큼 맛있는 한식도 그립고 집으로 돌아가서 편하게 잠도 푹 자고 싶고 버스를 타겠다고 마음먹고 앉아 있는 그 순간에 괜히 스스로에게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보름 가까이 힘들어도 잘 걸었던 그 시간들이 교통수단을 이용함으로써 리셋되어 내가 걸어온 걸음들이 아무렇지 않게 사라져버린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버스를 타지 않고 걷기엔 이미 버스를 타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걷기 힘들다고 스스로 합리화를 시켜버린 상태라서 다시 걷는 선택을 할 수가 없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내가 걸어갔어야 할 길들을 보고 있노라니 어색하기도 하고 스스로가 세워놓은 결정에

무릎을 꿇은 느낌이 들면서 다시는 힘들어도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말자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 편리함이 좋았다기보다는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내 안의 목소리와 타협한 느낌이 들어서

이런 경험은 그냥 한 번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미노 커뮤니티에서는 종종 버스나 택시를 타고 순례길 어느 구간을 걷지 않고 지나쳐가는 일명 순례길을

점프(jump) 하는 것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진정한 순례란 두 발로 오롯이 처음부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가는 분들의 글에 비난의 댓글을 달기도 해서 가끔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중세 시대의 순례자 모습 그대로 흉내 낼 수도 없을뿐더러 종교적인 목적으로 오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힘들고 아파도 꼭 걸어야 한다고 강요할 수 없는 게 아닐까? 많은 분들이 순례길을 걷지만 순례의 목적이라기보다는 트레킹을 한다는 생각으로 오는 분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자신의 몸이 상하면서까지 걸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런 생각도 비겁한 변명일 수 있지만 800km의 긴 길을 걸어가겠노라고 각오했다고 해서 아픈 몸을 돌보지 않고 그대로 걷는 것만 고집해서는 몸이 더 상할 수 있기 때문에 아프면 쉬어야 하고 걸을 수 없을 땐 편리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지금 잠시 쉬어야 하는 타이밍이라는 것에 합의했다.

부어있는 발도 치료를 해야 하고 지친 나의 정신 상태도 처음으로 돌려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큰 도시로 온 김에 우리는  알베르게(순례자 민박)가 아닌 호텔로 들어가 지친 심신을 달랬다.

또한 순례길을 여기서 멈출 것인가 계속 걸어갈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정리가 필요했고 다시 걷기 위해서는 무거운 배낭 안의 짐도 재정비해야 했다.

우리는 며칠 쉬면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편한 숙소에서 그동안 제대로 잘 수 없었던 잠도 보충하고 조용히 나를 다독이는 시간을 통해서 다시 기운을 낼 수 있었다.

며칠 쉬었다고 해서 물집이 사라진 것도 아니고 아픈 발이 금방 치료가 된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을 다잡고 산티아고까지 완주하겠다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소중한 휴식이었다.


까미노에서의 순례자의 삶은 우리 인생의 축소판처럼 느껴진다. 지쳤을 때는 잘 쉴 줄도 알아야 또다시 힘을 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힘들다고 그 자리에 그대로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 없고 처음으로 가서 다시 시작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에 잠시 숨 고르기 한다고 패배한 것이 아니며 정답이 있는 길이 아니니 나만의 길을 걸어가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도 될 것이다. 꼭 800km를 다 걷지 않아도 되고 내가 걸을 수 있는 만큼의 거리를 걸어도 그 길에서 내가 느끼는 충만한 마음 하나면 충분한 것이다.

각자 쉬고 싶은 곳에서 쉬고 각자의 속도대로 걷다 보면 결국에는 누구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을 한다. 걷는 목적이 종교였든 트레킹이었든 아니면 색다른 경험을 위해서든 우리는 각자 이루고자 했던 목표를 하루하루 달성하면서 걸었기 때문에 충분히 박수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걷다가 점프한다고 욕하지 말자. 점프할 수밖에 없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교통수단을 이용한다고 해서 오답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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