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감사

by 겨울나기 이코치

모든 것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갈 때가 있습니다.

일과 관계, 나의 삶마저 기대와 어긋난 현실을 마주할 때 정리되지 못한 생각들은 머릿속을 맴돌며 나의 소중한 밤을 심히 갉아먹습니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한계는

뜬눈으로 시린 새벽을 맞이하게 하고

내 마음조차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무력감은

나를 순식간에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가여운 나를 마주합니다.


자기연민이 깊어질수록 관계는 더욱 어긋납니다.

불쌍해야만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착각,

어쩌면 어긋난 상황을 회피하려 스스로 가여운 자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중독과도 같은 그 늪은 나를 그곳에 안주하게 만듭니다.


자기연민에 빠진 나는 망각합니다.

나의 연민이 타인에게 시커먼 연기로 뿜어지고 있다는 것을.


그 연기를 가장 많이 들이마시는 이는

결국 나 자신이라는 것을.


내가 질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이 연기를 멈춰야 했습니다.

나를 어둠에 가두고 숨구멍을 조여오는

부정을 뱉어내고 맑은 공기가 들어올 길을 내어야 했습니다.


'감사'가 사라진 자리에는 날 선 자기중심성만 남습니다. 식상한 말일지라도, 통제되지 않는 감정의 굴레에서 숨길을 내는 방법이 저에게는 결국 '감사'였습니다.


그날 밤도 통제되지 않는 생각의 줄기가 밤을 갉아먹고 새벽을 깨웠습니다.

숨구멍이 조여오며 저는 제가 얼마나 살기를 원하는지 깨달았습니다.

살고 싶어서, 그저 숨을 쉬고 싶어서

감사를 세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아픈 시간을 견디고 일상을 회복해 준

첫째와 둘째의 삶에 감사했습니다.

천사 같은 선생님을 만나

개학날 행복해하던 막내의 웃음에 감사했습니다.

이른 새벽 묵묵히 일어나

일터로 향하는 남편의 뒷모습에 감사했습니다.

나의 불안과 상관없이

어김없이 시작된 새날에 감사했습니다.

지켜야 할 소중한 이들이 있기에

살아야 할 의미가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환경은 쉽게 바뀌지 않겠지만

오늘을 또 살아내 보려 합니다.


내일을 살 힘은 내게 없어도,

오늘을 살 힘은 하늘이 주신다는 믿음으로.


감사를 읊조리자 놀랍게도 깊은 숨이 쉬어졌습니다.


쓰는 것도 말하는 것도 힘겨운 날이 있다면

그저 가만히 마음으로

감사를 찾아 읊조려 보아도 괜찮을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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