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을 바꿨다. 방전과 발열에 의한 부득이한 교체로, 3년 몇 개월 만의 일이었다. 바꾸며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뚱딴지 같게도 내가 나이가 들었구나 하는 것. 약정기간 24개월을 넘긴 걸로 모자라 일 년 하고도 수개월을 더 쓰고, 기능적 문제가 아니었다면 더 쓰려 했던 나 자신이라니? 짜릿해. 놀라워.
이게 왜 엄청난 변화냐 하면, 꼭 12월 31일 11시 59분마냥, 약정 만료를 카운트하며 3개월! 2개월! 1개월! 해피 뉴 셀폰! 하던 게 내 30대 중반까지의 루틴이었다고 하면 설명이 될까? 다른 예로는 작년 말부터 본가에 가면 동생으로부터 듣던 말이 있겠다,
"안 바꿨네? 엄마한테 언니 이번에 올 때 휴대폰 분명 바뀌어 있을 거 같다고 얘기했는데"
"어?"
“왜?”
그런 측면에서 이번 기기변경은 우리 가족을 한층 더 끈끈히 만든 이벤트가 될 수도 있겠다. 무려 모녀의 오랜 기대에 부흥한 것이니 말이다. 다음 번 본가행에는 두 여성이 환호하겠구나.
“엄마! 언니가 어디 아픈 게 아니었어! 폰을 바꿨어"
언니 주기대로라면 폰을 바꾸고도 남을 때가 됐는데 왜 안 바꾸는지 의아해하는 동생에게 하던 말이 있다. 이제 나이 들어 폰 그런 거에 관심 없다는. 겨우 폰 하나에 욕구가 덜해져놓고는 세상 미니멀리즘, 세상 무소유, 세상 근검절약하는 척. 그런 언니가 돼버린 척.
물론 없는 말은 아니다. 분명 옛날과는 재물을 탐하는 정도가 달랐다. 해서, 나이 들면 물욕이 사라진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뻔 했다. 헌데 다시 생각하니 일반화 될 수 없는 말이었다. 나이 듦에 따라 사라지는 물욕이란 게, 모든 것과 모두에게서를 아우르기는 어렵지 않나? 물욕이 생기는 품목에 점차적, 개인적으로 리뉴얼이 진행된다고 하는 편이 차라리 더 현실적이리라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나만 하더라도 내 물욕의 우선 타깃이던 휴대폰이, 서른여섯부터인가는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오 폰은 폰이로다가 되더니, 비싼 거 좋은 거 최신 거 써봤자 이런 쓸데없는 소비 같으니라구가 돼버렸고. 어렸을 때는 쥐어 줘도 관심없던 게 지금은 없어서 환장하는 지경이 된 걸 비춰보자면 말이다.
이렇게 된 거 본격 성찰의 시간을 가져보자면, 본인은 스마트폰은 기냥 굴러다니는 거 암거나 주워 써도 상관없는 캐릭터다. 스마트폰으로 하는 스마트한 거라곤 아무 것도 없는, 노스마트한 타입이기 때문. 아. 폰 바꾼 걸로 이런 성찰을 하고 있으니, 이거 하난 스마트하게 써먹는 거려나.
현대화 되지 않은 나란 인간은 작은 액정으로 긴 호흡의 영상 보기를 즐기지 않아 OTT는 잘 이용하질 않는 데다 SNS와 유튜브도 웬만하면 볼 일 없는 쌉아날로그 사용자인 바. 근데 그러면 그냥 아무 기종으로나 바꾸지 굳이 아이폰으로 바꿀 필요가 있었냐 너?
오해하지 마십쇼. 아이폰 13입니다. 16이 아니에요. 단말기 요금 월 880원에 24개월 할부로 3일만 진행 중인 행사에 당첨이 된 건지, 낚인 건지. 그렇게 돼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인생 n번째 24개월 노예의 삶이 재시작됐다.
희한하지. 내 주문을 수행하고 일상을 기록하는 건 얘 몫이니 그렇게 보면 폰이 내 노예로 24개월 부림을 당하게 된 것인데, 반대로 느껴지는 건 왜 때문이지. 이렇게 유능한 비서를 월 880원에 부린다는 건 굉장한 열정페이인 건데, 왜 880원이 전부가 아닐 것 같지.
어찌 됐건 이 스마트한 친구와 30대를 갈무리하고 새로운 시대로의 도움닫기를 하게 됐다. 고 생각하니 뭔가 모르게 장엄해진다.
이 동행이 얼마간 지속될지 우리는 모른다. 하지만 약속한 2년이 지나 더는 서로를 보살필 의무와 책임이 없어지더라도 얼마간 함께하지 않을까 싶다. 자그마치 두 해를 내 볼꼴 못 볼꼴 다 본 친구를 어떻게 일언지하에 져버리겠는가. 또 연중무휴로 365x2를 행여 방전될까 충전시키고, 깨질까 닳을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뉘키며 모시고 산 나를 두고, 얘라고 어찌 정신줄을 놓겠는가. 기계여도 정이 있고 의리가 있을진대.
근데 이렇게 말하니 무슨 할리우드 히어로 영화 같다. 인간과 기계의 아름다운 우정과 공존. 그러나 약속된 이별. 우린 거기에 하나 더 붙겠지. 국적과 국경을 넘어섰다고? 아이폰 넌 미국... 난 대한민국 토박이니까.
우연히 만나 인생을 공유하게 된 어느 인간과 기계가 함께 할 24개월. 과연 그들은 행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