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Thanks to 브런치

by 씀씀

[전 편에서 이어짐]


| 저 하늘 위에 사는 꼬마가 인간 세상 시계를 꺼내놓고 숫자 공부라도 하는 걸까? 1을 깨쳐야 2시로 넘어가고 2를 깨쳐야 3시가 되고 뭐 그런 거. 그렇다고 해야만 이해할 수 있을 속도의 날들이었다. 별 후의 시간이란 그렇게 억겁 같았다.


적지 않은 나이에 만나 헤어지고 나니 더 적지 않은 나이가 돼있었다. 이별 때문도 죽겠는 마당에 나이에 대한 현타까지 왔으니,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게 8월이 갔다.


운동을 하면 생각이 좀 덜 할 거란 말을 하도 들어서 어나 처음 운동을 시작했는데, 효과는 놀라웠다. 당최 우울할 새가 없었으니까. 와, 이래서 운동 운동하는 거구나. 실연의 아픔이고 잡념이고 떨치는덴 이게 최고라면서. 역시 배운 사람들!


근데... 왜 운동할 '때'만 해당되는 거라고는 아무도 말 안 을까. 운동하러 갈 때랑 하고 나와서는 평소의 몇 배로 생각날 거라고는?


운동 가기 전이면 사귈 때 운동 좀 하라던 그 말 한 번 안 들어준 게 사무쳤고, 하고 나와선 이러고 같이 맥주 마시면 너무 좋았겠다는 생각에 괴로웠고, 맥주 마시자 했으면 힘들게 운동하고 그럼 안 된다 잔소리했을 환청에 시달렸다.


그러니 이쯤 되면 이별엔 운동만 한 게 없다고 말한 사람들 전부 헬스장 사장이고 트레이너고 그런 거 아닌지 지하게 의심해볼 필요가 있 거였다.


인생사 뭐든 일장일단이라더니 이것 역시 그랬다. 운동이든 뭐든 짧게라도 어딘가 집중하고 난 뒤면 내 머리는 그로 인해 생긴 공백을 반드시 보충해야 한다는 듯, 더 빡세게 그 사람을 끄집어 냈 늘 꿈에까지 데려왔다.


그런 날엔 꿈에서도 울고 깨서도 울고. 분명 연락했을 텐데 연락 안 되니 집에도 찾아갔을 텐데 걱정할 텐데. 차단은 심했나? 이놈에 아이폰은 차단했어도 연락이 왔는지 안 왔는지 정돈 알 수 있게 해 줘야지 뭐 이렇게 융통성이 없냐. 애플 너네가 말하는 혁신은 이런 거니? 이게 매정할 일이니? 라고 모노드라마도 찍고 벽 잡고 얘기도 하면서, 매일을 꾸역꾸역 태어났으니까 사는 사람처럼 살아냈다.




살아있는 시체 같긴 했어도 멀쩡히 출근하고, 어떤 날은 삼시세끼 다 챙겨 먹기도 하면서 제법 정상인인 척 버는데 늘 느닷없는 타이밍에 무너졌다.


이를 테면 뭐 찾을 게 있어 여기저기 뒤지 보면, 누가 반가워한다고 꼭 그렇게 찔끔찔끔 장해주는 스티커 사진. 그가 쓴 편지 등등의 그런 거.


그렇게 갑자기 훅- 날벼락처럼 찾아오는 그 사람 흔적과 마주하는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사람을 어떻게 당해낼 재간이 없게 무너지게 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어김없이 한 번 살아보겠다고 이 악 물고 출근하던 게 지금까지의 날벼락은 한낱 불꽃놀이었음을 알려주는 일이 일어났다. 날 무너지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아주 꼬꾸라뜨려버리는 그런 일이.


콩나물 시루 같은 출근길 지옥철. 볶아놓은 숙주나물마냥 맥을 못 춘 채 실비실, 간신히 서있는 지옥같은 상황에 도착한 메시지 한 통. 모르는 번호였다.


전에 살던 집에 이사 온 사람라고 본인을 소개한 그 문자는, 이런 곳에서 택배가 왔는데 중요한 것일 수도 있어 송장에 적힌 번호 보고 연락드린다는 말을 고 있었다. 고마운 배려였다.


감사하다. 전에 살던 사람인데 이사 간 걸 모르고 보냈나 보다. 빠른 시일 안에 찾아가겠다 답을 보니 생각지도 못 한 말이 돌아왔다.


-이런 얘기 괜찮은지 모르겠지만 이사 가시고 어떤 남자분이 몇 번 찾아오셨어요. 잘못 찾아오셨나 싶기도 하고 좀 무섭기도 해서 모른 척했는데 문 앞에 쪽지를 붙이고 가셨더라고요. 근데 거기 써진 이름이 택배에 쓰인 이름이랑 같아서. 그다음에 또 오셨을 때 마침 제가 집에 있어서 이사 가셨다고 말씀드렸어요. 많이 놀라시던데. 이젠 안 오시고요. 어떤 사연이신지 몰라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나 어떡... 둑 터지듯 눈물이 터졌다. 구 하나 내 얼굴 볼 여력도 공간도 없는 출근길 지하철이란 게 감사했다.


그래 나 오래 참았지. 이 정도면 너무 훌륭하게 견딘 거야. 근데 그럼 그 사람은? 나는 내가 그를 차단할 것도 이사를 가리란 것도 다 알았지만, 그거 다 모르고 눈 떠 보니 세상에서 내가 사라진 그 사람은?




이별 1일 차. 처음부터 시 아파야 했다.


연락을 해야 하나. 나 잘 있다고 그러니 잘 살으라는 그 말을 이제는 그에게 주어야 할까 싶다가도 아직은 시기상조. 용기가 안 났다. 나는 아직인데 진짜 잘 살까봐 무서워서, 어쩜 이미 잘 사는 사람 흔들어놓는 걸까 봐 미안해서. 니 그냥 무슨, 어떤 이유에서든 내 의식과 의지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헤매기를 얼마. 나는 여기에 와있었다. 쎄, 이유는 나도 모른다. 그냥 뭐에 홀린 듯 브런치 작가를 신청했고 뭐에 쫓기듯 우리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리고 로 후회했다. 역시나 쓸 게 못 된다는 생각에였다. 쓰면서 너무 파야 했고 그러는 내내 또 다시 헤어져야 했으니까.


근데 또 한편으론, 그래도 맘 놓고 그를 생각하고 그리워해도 되는 이 곳이라도 있어 다행이다.


우리 그 빼곡한 얘기 어든 눈치 안 보고 꺼낼 수 있는 여기가 있어, 내일은 또 어떤 추억을 쓸까 고민하면서 모처럼 뜨겁게 살 수 있었고,


아직도 그 사람 생각이냐며 지지리 궁상이라고 청승이라고 한심하다고 누군가 걱정어린 핀잔을 해도 혀 기죽지 을 수 있었다.


"뭐라는 거야. 이거 안 보여? 브런치에 글 쓰는 중이잖아!" 하루 종일 헤어진 우리를 붙잡고 살아도 될 근사한 명분이 생긴 이었으니까.


그래. 나는 여전하다. 못나게도 아직까지는 나를 살게 하는 것도 그 사람, 못 살게 하는 것도 그 사람 하면서 러고 지낸다. 누구든 들으면 혀를 차겠지? 그래도 너무 짠하게 여기진 않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지내는 게 나에겐 지금을 가장 잘 보내는 방법이어서 그런 것 뿐이니까. 그러니까 나는 지금 생각보다 훨씬 잘 살고 있는 중인 거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건 망각하는 능력때문이라지만, 나 역시 당신과의 시절이 희미해지길 바라며 거기에 기대 산다지만, 아무리 그런다해도 우리까지 우리를 까먹으면, 오빠랑 나의 2년 위로 다른 시간이 자꾸 보태지면 내가 나한테 너무 미안할 것 같아서 여기에 적었어.


내년이면 벌써 서른일곱이니 이제 당신한테처럼 다른 누군가에게 뜨겁게 타오를 수 있는 기회도 시간도 없을 거 같아서, 내가 아는 중 가장 뜨거웠던 나를 이곳에 담아.


오빠랑 내 사이에 더는 남은 게 없다고 여겼는데, 나 살던 집에 이사 온 사람이 또 우릴 닿게 해 줬네. 헤어진 지 9개월인데 아직도 우리 둘 연이 안 끊겼나 보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한 번 더 이.


오빠가 언제고 이걸 볼 날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보게 된다면 이 긴 이야기는 그렇게 읽어줬으면 좋겠어. 내가 오빠에게 전하는 잘 살라는 인사라고.


날 위해 그렇게 애써줘서 고마웠어.

그러니까 이제는 좀 편안해져. 진심이야.


[다음 생에 계속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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