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스큐즈미, 신혼여행 왔습니다 5
사진을 찍는 일이 실례를 넘어 결례를 또 넘어, 죄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이었다.
엄마 아빠에게 귀에 인이 박히게 들어왔다. 남한테 도움 줄 마음도 좋지만 그전에 피해 주는 일을 없게 하라고.
그보다 더 숱하게 들어온 말로 밥 잘 챙겨 먹어 옷 따뜻하게 입어와 같은 것이 있지만, 몇 번 지킨 적 없던 것 같은 이 말들과 달리, 위의 저 말만큼은 안 지키면 벌금 내는 룰이라도 있는 느낌으로다가 웬만하면 지키고자 힘 썼다. 내가 자각하고 반성할 수 있는 선에서는 그래왔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다른 데도 아닌 신혼여행을 와서, 그 부분에서만큼은 청렴결백한 쪽에 속한다 믿은 이 서른아홉 인생에 금이 간 것. 아니 갈 뻔한 것이다.
이것은 극기훈련인가 신혼여행인가. 16일차. 우리 부부는 아부심벨을 보기 위해 들른 도시, 아스완에 있었다. 시장 구경 겸 아스완에서의 남은 0.5일을 아쉽지 않게 보내자며 피곤해도 가볍게 나선 길.
거리는 내가 살아온 곳과 많은 게 달랐다. 카페, 미용실, 마트 등이 늘어서 있고 주차된 오토바이와 승용차들. 그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요소. 그러니 내가 아는 거리와 인테리어만 다르다 생각하면 될 일. 그런데 그게 어려웠던 건 대체 왜일까.
꽃잎이어도 이 정도 날아다녔으면 성가셨을 것 같다 생각 들던 파리떼. 아무 데에 아무렇게나 적나라하게 저질러진 누군가의 배설물들과 그 위로 포개어지는 바퀴 또 신발. 휴지로 맨손으로 컵 안을 슥슥 닦아 주스를 따라 내어 주는 카페 사장님과 그것이 아무렇지 않은 손님. 바닥에 드러누워 자동차를 손 보는 아저씨. 그 옆을 박스 한 장 차이를 두고 지나가는 오토바이에는 헬맷도 안 쓴 세 식구가 타 있으니, 부모와 백일은 된 건가 싶은 갓난아기. 바닥에 앉은 니캅 쓴 아주머니와 무릎을 베고 누운 꼬마 아이는 입을 모아 원 달러 원 달러. 그 앞과 옆으론 본 적 없이 빼빼 마른 몸의 개 한 마리 두 마리가 지나가는데 기분 탓인가. 왜 생기가 없지.
허나 그럴 리가. 당연히 활기도 있으니. 분주한 사람들과 듣기에 따라선 경쾌한 클락션 소리가 그랬고, 진열된 과일들은 어느 슈퍼냐를 가리지 않고 전부 그리도 탐스러웠다. 연중 덥다는 도시. 더위를 그리 타지 않는 편인 내가 땀이 흥건할 만큼 습하고 뜨거운데, 어디도 인상 찌푸린 얼굴 없는가 하면 세상 제일 부지런히 움직이는 파리를 향한 손부채질 한 번이 없는 거리였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그건 그렇고. 이곳에 지금 내가 있다는 게 와닿지 않았다. 현실감각 마이너스.
"나 지금 꿈꾸는 것 같아"
여행 '직접' 경험이야 적다지만 간접 경험치는 반대. 타국, 다른 대륙의 삶에 대해 이 나이껏 쌓아온 데이터가 있을진대. 웬걸. 그것들이 다 무쓸모. 백문이 불여일견처럼 참말이 또 없는 거였다.
신기하다 보다는 진귀하다. 당시 내가 느낀 것들에는 그 표현이 적절했다.
"나 사진 좀 찍어줘"
사진을 찍을만한 무엇도 아니었다. 내 꼴도 그렇거니와 내가 서있는 그곳 어디에도 사진으로 남길 어떤 게 있지 않았다. 하여 어리둥절하면서도 세상의 모든 남자친구, 신랑이 그렇듯 반사적으로 폰을 들어 내게 앵글을 맞추는 그 몇 초. 씨게 정신이 들었다.
미쳤나 봐. 사진이라니. 나 뭐래니 지금. 양손을 미친 듯 흔들며 찍지 마! 다급히 외치는 내 모습에 신랑은 두 번째 어리둥절.
사진은 내 딴에 가장 빠르고 편한 방법이었다. 그 시간 생각들과 이곳에 어린 잔상을 기록 또 기억하기에. 어딘가에 올리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나의 그 이야기를 잊기 싫어함에 택한 것이었다. 그런데, 사진 찍어줘 하고는 길에 혼자 서있는 그 잠깐새 마주 본 풍경에 각성이 됐다.
관광은 내가 온 거다. 여기가 관광지인 건 나한테나 해당된다는 소리다. 그리고 엄연히 또 엄격히는 이곳은 관광지도 아니다. 이 사람들에게 이곳은 삶. 내 동네, 내 집 앞과 같은 거리인 것이다.
여행 온 나한테나 여기가 생경하고 이질적이지. 나한테나 경험이고 추억이지. 이 사람들에겐 일상이고 치열한 삶의 현장.
누군지도 모르는 이가 내 집 앞이 신기하고, 나 사는 동네가 특이하다며 불쑥 나타나 사진을 찍는다면 난 어떨까.
많이들 '로컬' 타령을 한다. 특히 여행에서라면, 애타게 찾는 줄로 안다. 나 역시도 더러 궁금했고 원했고 찾았고 체험했다. 그러면서 느낀 건 낯선 것에 대한 나의 비위가 강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가 경험한 로컬에는 낯설으나 익숙한 구석이 있는 것들도 많았지만, 그 익숙함도 결과적으로는 어색했다. 비슷한 것과 동일한 것은 우주와 지구 간 거리만큼의 차이기 때문. 양배추로 김치와 똑같은 맛을 냈다한들, 배추로 담근 김치와 결코 똑같을 수는 없는 것 아니던가.
이건 비슷하네 완전히 다르네 하는 발견과 경험이 한쪽에겐 자산이 되기도 하지만, 반대 입장에선 청하지 않은 평가겠다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이어, 실제로 그렇다면 그건 예의가 아니겠다는 반성까지.
그들이 우리 방식은 이러한데 체험해 보고 어떤지 말해주실래요? 한 것도 아닌데, 내 마음대로 느닷없이 나타나 불쑥 그들 삶 한가운데로 뚜벅뚜벅. 여기저기 둘러보고 곱게 사라지기는커녕, 이건 어떠네 저건 저렇네 오만 발자국 남기며 요란하게 퇴장한다면 그런 무례가 또 어디있을까.
나에겐 신혼여행이라지만, 그들에게 그 땅은 나의 서울 같은 곳. 치열하지만 살아내야 하는 도시. 나는 그곳에서 세상 완벽한 이방인일 뿐이고 어쩌면 그저 한 명의 완전한 불청객 밖에 안 되는 사람일 텐데 말이다.
생면부지였던 누군가가, 오로지 내 선택으로 간 여행에서 나와 한 공간에 있었다는 이유로. 또 내가 살 것도 아닌 타인의 땅이 초대도 안 받고 들이친 나의 갑작스런 방문을 연유로. 사진과 같이 형체를 갖춘 완전한 기억으로 남겨진다는 건 굉장히 일방적인 추억이구나.
사진을 거기서 찍지 않았을 뿐. 이후 다른 장소들에선 나를 위주로 곧잘 찍었다. 사는 동안 역시 그럴 것이다. 다만 이렇게 사진 찍는 것의 무게를 알았으니. 그 순간과 장면을 더욱 엄선할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것은 결과적으로 내게 집중하는 힘을 길러줄 것이다. 맞다. 나는 이렇게 또 하나 좋은 것을 배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