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생 살며 신혼여행을 쓴다라

익스큐즈미, 신혼여행 왔습니다 12

by 씀씀


3D다.


육신은 현생에 지배당한 채, 영은 신혼여행에 머물며 그 기억을 글로써 꺼내는 일이란. 현실에서 하기 힘든(Difficult) 일. 현실에게 위험한(Dangerous) 일. 그리고 현실과 너무 다른(Different) 일. 하여 3D.


시작은 호기로웠다. 신혼여행은 처음인 데다, 튀르키예와 이집트라는 나라 버프도 받은 덕에, 글감들은 먼저 쓰이겠다며 겨룰 정도였고, 그 등쌀을 못 이긴 이 힘없는 노동자는 군말 않고 써주었으니. 과정 역시도 박진감 넘쳤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그렇게 순풍에 돛 단 듯? 울며 겨자 먹기로? 나아간 것이 11화. 거기까지 가고는 번아웃이 왔다.


무슨 그 까꺼 쓰고 벌써 퍼졌냐고 탓할 수도 없는 게 다른 쓰기엔 열심히였다. 일일, 격일로 브런치 하나씩을 턱턱 쓸 만큼 그 외는 부지런히 써재꼈다. 하여 더욱 의아했다. 왜 유독 특정 이야기. 신행을 쓰는 일에만 방전된 것인가. 알아봐야 했다.


바야흐로 내 객관화의 시간에 걸맞춰, 이 쓰기의 고착화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하는 고민을 탐닉해야했다는 온갖 꼴깝을 떨어볼까 했으나. 그럴 것 없는 게, 사실 나는 이미 답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내 쓰기의 가장 결핍인 지구력. 이번에도 그게 문제였다.


이건 참 오래 묵히기도 했던 고민. 마흔씩이나 살았는데 그 마흔씩을 가시성 떨어지는 대가 앞에선 ‘지구력 부족’으로 살았더니, 알 수 없었다. 이 인간은 묶어 쓰는 일을 끝까진 당연하고, 오래도 가져가질 못하니 이건 대체 어떻게, 어디서부터 손 봐야 되는 건지.


신혼여행 이야기를 나는 왜 이어 쓰지 못하는 걸까.


1. 기억이 안 날까?

그 온도, 습도, 채광... 당시에는 못 보았던 그날의 사각지대까지도 오늘엔 비로소 보인다.


2. 쓰기 싫을까?

느낀 바가 분명하기에 써야 한다. 쓰기 싫지도 않다.


3. 왜 써야 하는지 모르는 걸까?

애초에 내가 쓰고 싶어 쓰려했던 이야기 묶음. 이유도 목적도 의도도 '나'에서 기인한 것.


11월 4일 점심 시간의 텅 빈 사무실. 타이밍 좋게도 딱 쓰던 내용에 맞게 나는 그 답을 알겠으니.


첫 번째. 엄두가 안 난다. 시작하면 미주알고주알 꺼내다 방대해질 것 같은데, 지금 내겐 그 긴 호흡을 끌고 갈 체력 동력이 없다. 그럼 짧게 쓰면 되지? 아... 근데 장문보다 어려운 게 단문인 법. 장문도 쓰기 싫은데 단문을…?


두 번째. 떨어지는 시의성. 이야기가 힘을 잃었다. 나는 현재 일상의 한복판. 어떻게, 어디로 봐도 허니문과 이역만리 떨어진 상황. 아무리 복기하고 감정 이입 하고 타임머신을 탄들. 그때의 내 감상을 글로 형체화 하는 작업이란, 너무 고역. 더욱이 나는 지금, 심지어 무려 설상가상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자그마치? 감기몸살.


결론. 상기와 같은 이유로 다음 신행 얘기를 며칠 더 미뤄도 되겠다는 자기합리화를 끝낸다. 머쓱타드.


헌데 감기몸살이 낫고 지구력 부족이 잠깐 호전된다 해서, 나의 신행 이야기가 마침내엔 묶어질까. 이 과업을 달성하려면 아무래도 신혼여행을 다시 가야 할 것 같은데. 그게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일 것 같은데. 어떻게, 남편! 전 남편 돼볼래? 리마인드 웨딩을 좀 빠르게 하는 거, 생각 있어?


이것도 다 임시방편적인 고해성사. 운 나쁘게 신혼여행이 볼모가 됐을 뿐. 나는 제목 뒤에 숫자 붙여 글 쓰는 일은 되도록 삼가야 하는 작자다. 글도 길게 쓸 수 있고 이야기도 오래 가져갈 수 있으나, 정작 그걸 내 안에서 꾸준하게 숨 붙여놓는 일에는 약한 괴짜요 사짜요 엉망진창 키보드워리어.


어후 속 시원해!! 근래 한 고백과 자기 객관화 중에 제일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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