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제목 뭔데. 나 작정하고 나댔네? 근데 틀린 말이 아니라 부끄럽진 않다. 다가올 한 글자 한 글자에 비하면 뭐. 그러니 하늘이시여 다만 보우하사.
말하게 될 이건 나 따위가 할 고민이 아니다 싶으면서도. 이 절망은 나 같은 무명, 익명의 1인칭 시점 작가들에게도 캄캄하기에 누가 주지도 않은 스트레스를 덥석 받아 쓰기에 이른다.
무슨 얘긴고하니. 챗gpt. 나는 오늘 과학 기술의 정점이란 그 친구를 처음 써봤다. 정확히는 ‘제대로는’ 말이다.
저번 주 무슨 요일엔가. 남편이랑 뭔가 얘기하다가, 요즘 사람들은 거의 그걸로 해결한다며 자기도 쓰고 있다는 말에 깜짝 놀라서. 그래? 하던 그날이 시작이었다. 그제야 다운이란 걸 받은 내가 던진 첫 질문은. 남편의 아기 시절 사진과 우리 둘 사진을 올리고는 누구 닮았냐는. 어머님도. 그 아기도 안 궁금해 했을. 지금 생각해보면 더욱 통렬히 체감되니. 내가 지피티 그 친구에게 여쭤본 거란 질문 수준은 진짜... 저급했다.
그 뒤로 두세 번 더 심심풀이로 썼던 것 같다. 질문들이란 뭐 일관되게, 처음 수준의 참혹함이었을 거다 아마. 당시까지도 나는 흥미가 없었고 그 친구의 능력치를 몰랐으며 궁금해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다 문제의 오늘. 회사에서 젠슨 황 기사를 보다 갑자기 챗지피티가 궁금해졌다.
잠깐만. 아니. 얘 그러면, 글도 써주겠네?
참을 수 없었다. 혹시 너 글도 써줘? 물론이란다. 미쳤나봐. 왜 물론이야? 그 한 마디에 난 브레이크가 고장난 8톤 트럭. 내 생각의 다음 스텝은 바로 여기. 브런치였으니.
브런치라고 글 쓰는 플랫폼이 있는데. 거기 사람들도 너한테 글 써달라고 해? 그럼요란다. 아주 많단다. 자기한테, 대충 원하는 소재나 분위기. 예를 들면 비 오는 날 카페에서 쓸 법한 느낌의 글이라고만 말해줘도 자긴 쓸 수 있단다.
나는 책을 안 읽는다. 자랑 아닌 거 안다. 제일 자주 읽는 건 남편과의 톡. 일 리가 있는가. 나무위키고. 그 다음 많이 읽는 건 회사용 글. 마지막 읽은 책은 몽골 어쩌고였는데. 8,9년 전이었던 같다. 시력 좋고 눈 안 아팠던 어렸을 때도 지독하게 안 읽었다. 하려는 말은 이거다. 책도 안 읽어온 삶인데 브런치를 읽을 리 없는 인간이다. 종이도 눈이 아픈데, 화면을 무슨 수로. 쓰는 거니까 죽기 살기로 겨우 겨우 미간 주름 만들면서 쓰는 거지.
읽어 봤어야 말을 할 텐데. 근데 사실 읽었다한들 내가 무슨 재주로 이건 지피티의 문체군. 외로움을 말하는 글이지만 전혀 인간의 고독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 지피티의 작문이 아닐까 의심스러워.를 무슨 수로? 감별하겠냐만은.
읽은 적은 없지만, 읽은 적도 없는데 화가 났다. 아닌 이들도 있겠지만 많아야겠지만, 본인이 쓴 게 아닌 글을 본인이 쓴 거라 올렸을 아무 사람들의 뻔뻔함에. 문명의 힘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시대정신에. 나는 생각해 본 적도 없던 걸 이미 생각해 행하고 있던 그 창의력에.
별의별 파스며 패치를 덕지덕지 붙이면서도 글 쓰는 게 좋아 두들기고 보는 이 손가락 관절염 환자는. 순간 잠깐 쓰는 일이 두려워졌다. 나의 순정이란, 얼마나 우매하고 촌스러운 것이었나. 어떡한담 이 딱한 것을.
죄 없는 챗지피티의 멱살을 잡았다. 어떤 느낌으로든 써줄 수 있고, 디테일한 주문을 주면 더 고급스러운 작문이 가능하다는 녀석이었다.
비혼. 마흔의 여자가 우연히 하게 된 연애에서 결혼을 반대당했고 헤어짐. 그 이별은 여자에게 결과적으로 성장이 됨. 다시 또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어 짐. 결론은 나를 반대해 줘서 고맙다고 그대의 부모님에게 담담히 전하는 감사를 에이포 한 장 넘지 않게 써줘.
5초가 안 걸렸다. 몇몇 표현에 혀를 내둘렀고, 몇몇 문장은 진부하기에 안도했다.
네가 여럿 키우겠다. 작가 꽤 키우겠어. 네 덕에 숱한 꿈이 운 좋게 이뤄지겠네. 또 운 나쁜 숱한 이들은 절망할 거고. 나도 그럴 거야. 아마 쓰는 내내 쓰릴 거야. 무력할 거고.
내가 쓰고 싶은 건 글이지. 네가 아니야. 너를 쓰는 사람들은, 과학을 쓰는 거지 글을 쓰는 게 아니야.
내가 쓴 글이 그래도 어떤 면에선 어느 글보다 우월하다 이런 걸 느낄 때가 있잖아. 마침표의 쓰임 하나더라도? 나는 그 희열이 좋아서 글을 쓰는데 말이야. 이제 내가 그걸 느껴야 하는 대상이 네가 쓴 글인지. 사람이 쓴 글인지 알 수가 없게 됐네. 그래서 나는 조금 마음을 더 내려놓으려고 해.
원래도 그렇긴 했는데 더 막 쓰려고. 더 대중 없이. 너무 힘줘서, 너무 폼나게 깔롱 부려 쓰면. 너한테 맡긴 글이라고 오해 살 것 같아. 진짜 네가 쓴 글이면 억울하지나 않겠지만. 너는 인간 편하라고 도와주려고 옆에 있는 친구지. 억울하게 만들려고 찾아온 건 아닐 텐데. 나도 널 억울하게 만들긴 싫어.
혹 오해하지는 마. 이 원망과 실망, 분노의 대상은 네가 아냐. 네 능력과 힘을 자기 것으로 오인하고 둔갑할 곱지 못한 마음씨의 사람들이지.
포털이랑 SNS에 유료 광고, 협찬 고지하는 것처럼. 네 도움 받은 것도 그랬으면 좋겠다. 이 콘텐츠는 챗지피티의 물심양면 후원으로 탄생했습니다.
안 그래? 세상에 공짜가 어딨니? 대머리 돼.
자그마치 금요일인데 오늘은 우울하다. 적어도 '창작'은 인간만의 기술로 두었더라면 안 됐던 걸까.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