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게 이렇게 무서운 거다

by 씀씀


나쁘게 산 기억 없이 비교적 착하게 이 나이까지 왔다.


기억력이 비루하다거나, 스스로에게 불리한 서사를 골라낸 편집적 결론이라면 민망하진 않을 텐데. 애석하게도 사실이다.


사람은 본인 기준으로 생각한다 했다. 나는 성악설이던 적이 없던바. 성선설과 성악설. 이 이분법의 기준 또한 나였으리라.


이리 말해놓곤 웃기게도 사람은 믿기 싫어한다. 하도 뒤지게 당해, 오지게 경계하는 '척‘을 하고 있으니. 사람보다는 사람을 믿는, 믿으려는 그 마음을 신뢰한다.


그것 말고 또 믿는 것이라면 인과응보와 고진감래. 모두 그 끝에는 ’선'이 드러나고 남고 만다 해주는 고마운 말들. 나는 주로 이렇게 무해에 가까운. 크게 결점을 갖지 않는 것을 동경하는 것 같다.


꼭 뭐라도 되는 양 했나 싶지만 무엇도 되지 않음이 당연하니 바로 잡지도 않겠다. 착하게 살았다는 것 역시 평균보다 웃돌게. 비교적 그랬다는 것이지. 원망, 상처 같은 류의 악행들은 원체 상대 중심적인 것이기에, 지구상 누구든 불가피하므로. 나 또한 모두에게 고운 사람이지는 못 했을 거다.


다행이라면 내가 원인인 원망과 상처, 배신감 등등에 는 아는 즉시 진심 담아 사과했고 재발을 막으려는 노력도 한 터. 내 나이에 허투루 먹은 한 살은 없다고 자신하니. 시간을 돌리는 초능력. 과거로 갈 수 있는 천금의 기회가 주어진다 한들. 내가 그 꽃 같던 청춘이 아닌 지금에 남기를 희망하는 이유다.


보는 이의 비위를 잔뜩 상하게 하는 것으로 보아 전혀 착하지 않은 것 같은, 주입식 교육처럼 학습 당하게 되는 나의 이 선함에는 나보다는 우리 집 두 어르신의 역할이 상당했다.


숨을 쉴 때면 그 공기 중에 이산화탄소보다 선함이 더 과다 분비되는 사람들이 나의 부모였다.


남자친구가 인사드리던 날. 두 분은 말씀하셨다.


“사랑은 정말 아낌없이 주고 키웠어요. 풍족하게 키우진 못 했어도, 사랑 많이 주고 사람 좋게는 키웠어"


나 어리둥절. 당신들은 그렇게 회상하고 정의하시는구나. 나는 두 분 희생에 부족을 몰랐거늘. 우리 집에서 이 이상 어떻게 더 금지옥엽일 수 있을까 싶게 자랐고, 그러면서도 그 온실이 마냥 달콤치만은 않게. 스스로를 지킬 힘 정도는 갖추게끔 비바람도 일러주신 덕에 사회가 정글이면 나는 어설픈 타잔 정도는 될 수 있었다. 효도는커녕 이 나이에도 큰딸을 양육하는 노년을 보내시게 함에 이 가슴은 저릿한데. 두 분은 더 못 해 줬고 다 못 해 주는 게 오늘에도 한이시구나.


부모란 뭘까. 선함의 완성형이 부모 아닐까. 자식은 뭘까. 선함의 미래형인가. 그 미래도 완성이 되긴 할까.


다양한 가치가 엎치락뒤치락하니. 우열은 당연하고 옳고 그름도 말할 수 없는 날들에. 어디서든 보편적으로 통하는 몇 안 되는 것 중 한 가지가 착함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동시에, 착하면 손해 보고 멍청하고 호구 잡힌다고. 착한 것을 극한의 단점처럼 말하는 건 영 서글프다. 착한 게 왜. 그게 손해인지 투자인지 어떻게 안담. 멍청한 거지 덜 계산적인 건지 알 수 없잖아. 호구 잡힌 건지, 어떤 류의 은인이 돼주기로 한 건지 역시 모를 일.


아무리 뽀로로가 한 시대를 군림했고 아기상어가 우리 동해 서해 남해를 넘어 오대양을 헤엄쳤어도 나한테는 여전히 둘리가 최고고, 영심이가 넘버 원. (내 나이 문제일 수도 있음)


무슨 말이냐면 변하는 시대, 좋아지는 세상 따라 모든 것이 거기에 알맞게 달라진다지만, 사실 인간의 정서란 그걸 역행한다는 것. 되게 단순하다는 것


첨단의 파도에서 꾸준히 아날로그를 찾는 게 그러하고 퓨전보다는 오리지널의 호흡이 훨씬 긴 것이 그러하며 더 가려하고 가지려 하는 것은 후발 주자가 아닌 원조 타이틀의 집이라는 것만 봐도 그러하니. 이것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건 하나. 영원한 건 클래식이라는 말이다 이 말이지.


나는 사람 마음에서의 아날로그요 오리지널이요 원조는 선, 착함이라 믿는다. 그게 클래식이다. 그래서 영원할 거다. 최후에 남는 자는 강한 자도 버티는 자도 아닌 착한 자일 수밖에 없는 게, 그 사람은 좌 인과응보, 우 고진감래일 테니까. 충분히 가능하다.


보면 꼭 고약한 사람들이 나대고 설치더라 뻔뻔하게. 주무르는 대로 된다고 착각하나 본데. 모르는 소리. 진짜 두려워해야 할 건, 착한 놈이 뻔뻔해지는 거다. 그 무섭다는 흑화도 전투모드도, 나쁜 놈들을 위한 용어가 아니지 않던가. 다 착한 놈들을 위한 변신이지.


상처 내려면 내봐라.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찌르는 네가 더 망가지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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