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peace! 나의 오피스
4. 음흉러들은 존슨앤존슨 클렌징처럼 군다
깨끗한 척 맑은 척 자신 있는 척!
#3에서 이어짐
내가 아는 역병의 시작은 거의 그랬던 것 같다. (더럽고 열악하다는 표현보다는)가장 낮거나 관리, 긴장과는 거리가 먼 곳과, 그곳에 사는 이들에게 맨 처음 찾아와 거기서부터 퍼져나가는.
구체적 예를 열거하면 좋으련만, 그 역사 같은 것들에 해박하지 않기에 그러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굳이 말을 하는 건 내게 역병의 시작이란 이미지는 일단 그렇다는 것.
사실 '역병' 같이 불편하고 멀게 느껴지는 표현까지 갈 것도 없는 게, 감기가 그렇다. 위생에 소홀했다거나 일교차를 고려치 않은 옷차림을 택한 이유 등으로 면역력이 떨어질 낯이면, 그걸 먼저 알아채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감기였다. 어찌나 똘똘한지, 그 녀석의 눈치란 언제나 나의 자각보다 빠르고 정확했다.
생각해 보면, 걔네는 늘 그랬다. 역병이든 다른 류의 병이든 본인들이 터를 잡고 활약할 만한 곳인지 아닌지 낌새를 차리는 일에서 신기할 정도로 예외가 없었는데, 나는 이게 바이러스의 본능이 아닐까 생각한다. 무방비 상태에 빛의 속도로 반응하는 것. 잠식당하기보다는 장악하는 편을 선호 아니 극호 하는 것.
그런 애들이라면... 바이러스란, 내 몸을 위협하는 애든 내 PC를 공격하는 애든 종류에 구분 없이 본투비 강약약강인, 내가 가장 극혐 하는 스타일의 족속이 되는 건데.
나의 유약한 이해심이... 그 와중에도 일정 부분 그들의 생리에 기울곤 했으니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인간의 것이면서도 크게는 하늘의 뜻이자 자연의 일이라면, 바이러스라고 다르겠는가. 그들의 생존 방식이 그렇다면 오케이 접수! 해줘야 한다는 것과.
그 같은 바이러스들은 선조치건 후조치건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분명 있으니 얼마나 고무적이냐 하는 것. 걔들은 감염에 대비하란 주의도 주고, 감염 때는 이상신호를 보내면서 '너 지금 위험해!' 알려주기도 하니, 방심과 안심은 삼갈 수 있도록 하는 배려를 가진 것도 같았달까.
문제는 인간사회였다. 그렇게 병균들도 지키는 매너와 예의를 가뿐히 스킵해 버리는 바이러스들이 우리 사는 도처에 도사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내가 두루뭉술하게는 성인, 정확하게는 직장인이 된 후 알게 된 건 회사에서도 바이러스가 공격하는 대상은 보통 비슷하다는 것으로, 그 비운의 주인공은 지위가 가장 낮거나 바이러보다 힘이 약한 자리. 타인에 대한 경계나 의심이 없거나 당하면 당해주는 사람이었다.
거지 같게도 기가 세거나 기운이 좋지 않은 인간들은 귀신같이 약하고 여린 누군가를 알아봤는데, 더 그지 같은 건 회사에 출연하는 이 필연적인 바이러스에는 기계나 질병의 그것들과는 다르게, 어떠한 경고나 배려 따위 없다는 것이었다.
경고며 배려는 무슨. 도리어 안 듣는 척 안 보는 척 무관심한 척. 누가 보면 굉장히 개인주의적 성향에 무던한 성격인가보다 마음 놓게끔 세팅해 놓곤. 사무실 너머와 오프라인 밖에선 어찌나 많은 이를 염려하며, 남 걱정에 에너지를 아끼지 않는 박애주의자이시던지. 좋고 괜찮은 사람들로 매일매일 열심히 충전해 놓은 인류애가 그 앞에선 한 순간 바사삭하기 일쑤기 마련.
굳이 예를 들자면 사무실에서의 아무것도 아닌 일. 스몰토크라고 하기도 뭐 한 한두 마디의 대화를 갖고 저런 아웃풋이 가능하다고? 과학자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그 좋은 머리로 인류 발전에 기여하시지 왜 내 멘탈 파괴에 기여하실까 싶은.이라면 될까나.
그럴 때면 정신승리 매뉴얼을 꺼내 하나씩 왼다. 1. 허락 없이 남 이야기를 떠드는 입을 가진 자가 남 보기에 좋은 사람일 수 없고, 2. 자격 없이 남 이름에 먹칠한 사람이 하늘 보기에 깨끗한 인생일 수 없으니 3. 조금 더디더라도 결국엔 뿌린 대로 거두리라.
그러면, 내가 아는 모든 신을 떠 올리고 인과응보 고진감래 사자성어까지 동원해 심호흡하다 보면, 괜찮아진다. 멀리 보고 살자치면 살아진다. 다만 내가 그렇게 매일을 정신승리할 수 있는, 기 세고 멘탈 강한 사람이 아니라 늘 삐꺼덕할 뿐.
나만 아니면 돼! 내가 아닌데 어때!라는 진실과 진리로 저런 음흉러들을 상대하는 게 힘에 부치고, 아닌 사람이 불쾌하고 불편해지는 이유는, 내 말이 오역, 와전, 과장돼 더 너른 관계에 퍼질거란 게 끔찍해서. 보통의 남이나 본인의 우군이 하면 아무렇지 않을 행동도 내 것이면 어떻게 꾸며볼까 눈부터 희번덕한다는 걸 알아버려서.
보고도 못 봤고 들어도 못 들은 채로, 할 말도 안 하고 아는 말도 삼켜버렸더니 남은 건 만만한 존재가 돼버린 나였고. 어쩔 수 없지. 똑같이 격 떨어지긴 싫으니 자네는 씹으십시오. 나는 버티겠습니다 살았더니 남은 건,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그래도 받아들였었다. 우주에서 보면 개미보다 작은 세상에 너나 나나 먼지만도 못한 존잰데. 저렇게라도 자기 편 만들려고 열심이라는게 짠하고, 남을 불행하게 만드는 데서 제 행복을 찾는 인생이 딱해서. 저런 인물을 지척에 머물게 한 것은 내 인생 더 풍요로워지라는, 더 배우고 깊어지라는 뜻에서 그러신 거겠지. 내가 그렇게 희생이고 인내를 해주면 아무리 바이러스라도 끝에는 잡히겠지 하면서 말이다. 왜냐면 우리 사회의 정화 작용이 뛰어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웬걸. 나는 갈 길이 구만리다. 저 싸구려 말놀이를 즐기는 플레이어가 이렇게 많을 줄은. 저 순수하지 못 한, 진실보다 거짓이 많은 정보에 기생하는 그림자가 이렇게나 적지 않을 줄은 미처 몰랐다.
인생은 살아봐야 안다는, 그 아는 거에 이런 것도 포함이라면, 저기 혹시 어디 이런 거 모르는 인생 없으신가요. 그 인생 제가 사고 싶어서요. 제가 살고 싶어서요.
# 5에서 계속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