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에서 전해 들은 이 이야기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회사 내에서 염소로 불리어 왔다는 시작부터 불길한 내용으로, 저의 친구가 그 주인공입니다.
<전도유망한 그 여인은 왜 염소가 되었나?> 어쩐지 SBS 궁금한 이야기 Y의 제목으로 어울리는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그녀를 '염소'라 네이밍 한 것은 친구와 같은 직급인 A와 한 직급 낮은 B. 둘은 친구가 염소를 닮았다며 친구를 염소라 칭했고, 이때부터 친구는 그 두 사람에게 본캐보다는 염소로 존재감 대폭발. 그야말로 맹활약했다.
이를테면 "염소 옷 좀 봐. 놀러 옴?" "염소 화장실 간다. 지금 2시 46분. 언제 나오는지 보자" "인사 왜 저래? 왜 웃고 난리. 나한텐 웃지 마 염소야 진짜" 같은, 유치하기 짝이 없는 내용으로 둘의 메신저에 하루도 쉬지 않고 출연하는 빡센 스케줄을 소화한 것.
여기가 서울 도심인지 저기 대관령 목장인지 헛갈릴 정도로 메에~ 메에~. 그때도 그랬지만 다시 상기하는 지금도 언빌리버블한 이야기.
그 때 내 반응이란. 만우절에 들었어도 품위 미달, 수준 이하의 저급 스토리라 용서 불가였을 것 같은 이야기가거짓말도 몰카도 아닌 실화니 얼마나 놀랄 노자였겠는가.
그런데 이보다 더한놀랄 노자, 충격실화가 그 직후 일어났으니. 한편으로는 그게 또 이해가 갔다는 것이다. 험담의 내용과 그 작자들이 이해됐다는 것이 아니라 그 일련의 현상이 어쩐지 몹시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느껴진다는 차원에서의 이해.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구나 하는 것 말이다. 왜 그리 여겼느냐. 내 생각의 전말은 이렇다.
(놀랄 노자 측) 친구 회사는 그 분야 탑티어인 동시에 사회에서도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곳. 친구는 거기서 열심히 했고 잘했고 또 조금의 운까지 따라줘, 직위만 봐도 비교적 높고 나이까지 감안해 보면 더 그렇게 느껴지는 직급이었다. 그리고 그건 (나이는 좀 더 많았으나) A와 B도 비슷했다. 그래서더기가 막혔다. 그런 회사, 또 실적으로든 연차로든 부족할 거 없는 자리, 거기에 40대면 인생 알만큼 알 어른들이저런 품위 없는 대화를 소통이고 교감이랍시고 한다고? 대체 나이를 어디로 먹었는지. 뭐 벤자민버튼 느낌으로 거꾸로 먹고 그런 건가?이쯤 살면 뒷담화에도 다 네임택이 있고 격조가 있다는 걸 알법한데 왜 그걸 모를까싶어서 말이다.
(혹시가 역시 측) 모를 수밖에. 그걸 모두가 알면, 자기 객관화엔 게으르고 나잇값에는 불성실한 공동체가 사력을 다해 유지 중인 생태계가 파괴될 게 뻔한데. 그런 험담 시의 에티켓을 지켜줄 리만무하지. 근데 얘네 회사를 안 다녀봤는데도 알 거 같은 이 기시감은 뭐지. 뉴턴 님, 진짜 긴장하셔야겠어요. 인류가 발견한 위대한 법칙... 그 명성을 이 친구가 굉장히 저돌적으로 위협해 오는데요. 돌아이질량보존법칙이요.
"어딜 가나 이상한 인간들은 꼭 있구나. 근데 나는 그런 것들한테 쓰기엔 네 스트레스도 너무 귀해. 못나서, 부러워서 그런 거니까 짠하게 생각하고 참..."
"모르면 몰라 알았는데 왜 참아.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릴, 것도 염소가 돼서 내가 왜 듣냐고. 일단 회사에서 너무 불편해. 그래서 이미 다 끝냈어 걱정 안 해도 돼
"뭘 끝내? 뭐 들이받기라도 했어?"
"야, 억울하고 분해도 싸움은 먼저 거는 거 아니야. 더러운 짓은 걔네가 시작했는데 내가 왜 그걸 나서서 묻혀. 17대 1은 영화니까 되는 거고 여기선 2대 1도 후달려. 상대에 쪽수가 한 명만 더 붙어도 얼마나 피곤한데. 그리고 뭐 어쩔 거야 지들 입으로 욕한다는데. 너무 미취학 애들도 안 할 욕을 했으니 걔들 창피하겐 할 수 있겠지만 그럼 나랑 사이만 더 안 좋아지지 않겠어? 난 이 회사 되도록 오래 남보다 굵게, 그리고 뭣보다도 내 맘 편하게 다닐 거야"
... 아...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더니... 망각했다. 내 친구가 염소 돼버렸어요! 그러니까 나도 이렇게라도 해서얼른 외롭지 않게 동물이되어줘야 해요! 뭐 이런 거였을까 나는?
망각의 애니멀이 되어 잠깐 잊고 있던 사실. 그것은 그녀가 보통 아이가 아니라는 것.
친구는 내가 아는 이 중 가장 마당발이었다. 깊게도 얕게도 알고 지내는 이들이 많았다. 일단 처음 봤든 뭐든 사람을 대하는 기본값이, 보통사람의 최고치 텐션에 인간관계를 관리하는 스킬의 종류는 내 기준 어나더레벨이었는데, 본인이 관리해야겠다 싶은 그룹에 들어간 인연에 대해선 집중과 투자가 실로 대단했다. 그리고 관계에 대한 관리만큼, 자기애와 자기 방어가 끔찍했다.
사실 오랜 시간 친구를 봐온 사람으로, 나는 어쩌면그 점들이 그녀에게 양날의 검이 되겠다 싶지만 지금 쓰는 이 이야긴, 그녀가 자기를 괴롭게 하던 이들로부터 본인을 지키고 사랑한 현명했던 방법에 대한 것이므로 스킵 앤 고잉하겠다.
염소임을 알게 된 얼마 후 저녁. 그녀는 교보에 가서 책 두 권을 샀고 집으로 돌아와 두 통의 편지를 썼다. 수신자는 A와 B. 편지 내용은, 이 편지는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였다면 좋겠지만 당연히 아니었고.
염소였던 친구는 여우로, 여우인 줄 알고 살았을 A와 B는 모지리로, 듣던 나는 '어머, 이건 배워야 해! 메모 메모!' 외치는 팬으로 만드는,
저런 처세술과 정치력, 자존감과 자기애라면, 쟤 인생에서는 희로애락의 '로'와 '애'도 그럭저럭 맞서볼만한 것이겠다 싶어지는. 뭐 그런 것. 그 편지가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