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곡의 탄생,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

은유의 힘이 만들어 낸 기념비적 성공

by 하기

명곡의 탄생,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

은유의 힘이 만들어 낸 기념비적 성공



"창가에 서면 눈물처럼

떠오르는 그대의 흰 손

돌아서 눈 감으면 강물이어라

한 줄기 바람 되어 거리에 서면

그대는 가로등 되어

내 곁에 머무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차라리 차라리 그대의 흰 손으로

나를 잠들게 하라"


조용필이 창밖의 여자를 작곡한 연도는 1979년이다.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히트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그에게 대마초 파동은 뜻밖의 암초였다. 유신정권의 서슬 퍼런 압박에 서둘러 은퇴를 선언하고 두문 분출하던 그에게 해금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후 그에게 첫 번째로 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동아방송의 동명의 라디오 드라마 주제곡을 작곡하게 된 것이다. 라디오 작가인 배명숙이 쓴 가사를 받은 조용필은 오랜 무명 기간의 한을 이 한 곡에 담아 3일 밤낮으로 작업하였다. 하지만 멜로디가 떠오르지 않아 고민하게 된다. 피곤하여 든 잠 속에서 들은 꿈속의 멜로디로 작곡에 성공한다.


라디오 드라마보다 더 유명해진 창밖의 여자로 조용필은 재기에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이 가요를 명곡으로 만든 것은 역사와 민중이었다. 10.26 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고 신군부의 12.12 쿠데타에 의한 군정 회귀라는 역사적 반동에 광주시민은 온몸을 받쳐 항거하였고 무자비한 탄압으로 죽은 젊은 순백의 영혼들이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원혼이 되어 세상을 떠돌던 1980년 조용필의 노래는 죽은 원혼들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듯한 가사로 민중들의 가슴에 스며들어간다.


그대들은 은유의 힘을 믿는가? 창밖의 여자가 미처 피지 못한 민주주의와 그것을 위해 산화한 광주의 시민들을 상징한다고 생각해보라. 이 노래는 그 어떤 노래보다 혁명적인 민중가요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물론 배명숙 작가가 작사를 한 1979년은 광주 민주화운동이 발발하기 전이라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말이지만 이 노래를 듣는 민중들에게 가사는 그들의 한을 풀어주는 진혼곡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기에 한국 최초의 100만 장 판매라는 기록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미처 피지 못한 민주주의는 창밖에서 무자비한 총칼 앞에서 죽어가고 그것을 바라보는 나는 창가에 서서 공포에 떨며 나가지 못하는 상황. 같이 죽지 못하는 괴로움을 차라리 그대의 흰 손으로 나를 잠들게 하라고 외치는 비겁한 소시민들의 무력함을 조용필은 국악으로 다져진 탁성의 애절함으로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조용필은 꿈속의 멜로디로 작곡을 했고 시대와 민중은 은유의 힘으로 노래를 수용하였다. 이 노래의 기념비적인 성공으로 조용필은 80년대의 아이콘이 되어 경제적인 부담 없이 다양한 시도를 통하여 펑크록(단발머리), 가곡(친구여). 랩(킬리만자로의 표범) 등 오늘날 K팝의 모태가 되는 음악적 기반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음악적 성공으로 대중적 인기와 명예, 돈 등 스타로서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진 그였지만 초혼의 실패, 재혼 후 사별 등 그의 개인사는 가수로서의 성공만큼 화려하지 않았다. 그런 아픔은 그에게 인기의 덧없음과 인생의 의미를 반추하게 만들었고 겸손하고 신중하게 음악적 완성도에 접근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신은 가수로서의 성공을 그에게 주었지만 그 대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대가로 치르게 한 것이다.


음악에 매진한 결과 그 전의 모든 대중가요가 80년대 조용필을 통해 종합될 수 있었다. 조용필은 이후 세대에게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작업을 통해 90년대 대중가요 르네상스가 탄생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면서 현재까지도 영원한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렇게 창밖의 여자는 명곡의 반열에 올라 앞으로도 영원히 대중들과 함께 할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CGcwEB5Z-Kw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 감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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