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세계, 불륜에 빠진 부부들
JTBC의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종합편성 채널 방송 역사 상 드라마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최근 종영했다. 드라마의 내용은 유부남과 미혼녀의 불륜과 그에 따른 맞바람, 전처와의 역 불륜, 이에 따른 후처의 상간자 소송 등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불륜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인기의 절정에 도달할 수 있었다.
2015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간통죄가 폐지되면서 우리가 심리적으로 느끼는 불륜의 벽이 많이 낮아진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도 간통죄 폐지 이후 우리 사회에서 불륜에 따른 이혼율이 증가하는 등 성적 자기 결정권을 무기로 배우자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는 행태가 많이 목격되고 있다.
하지만 형법상 간통죄의 처벌이 없어졌다고 해서 불륜이 법적으로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를 통하여 불륜을 저지른 배우자들을 압박할 수 있는 법적 장치 등은 여전히 유효하다. 예전처럼 반드시 이혼을 전제로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유지한 상태에서도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
법적 책임뿐만 아니라 불륜 당사자들에게는 사회적 비난이라는 도덕적 굴레가 주홍글씨처럼 씌워진다.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 배우의 불륜 사례에서처럼 국제적인 영화제를 통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시사회 개최도 곤란할 정도로 불륜커플은 여전히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고 있다.
이런 민사상 손해배상과 사회적 비난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이 불륜을 저지르는 심리는 무엇일까?
남성의 경우 대부분은 여성의 성적 매력에 이끌려 바람을 피우게 된다. 본능에 저항하지 못하고 바람을 피워 명예와 재산을 모두 날리는 성공한 남성들의 모습에서 바람의 유혹이 얼마나 남성들에게 치명적으로 다가오는지 직감할 수 있다. 물론 이들은 자기들이 단순히 여성의 성적 매력 때문에 바람을 피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부부의 세계에서 유부남 이태오(박해준 분)를 국민 욕받이가 되게 만든 이 대사처럼 불륜남들은 상대방을 순수하게 만나다가 사랑에 빠져 자연스럽게 성관계를 맺게 되는 것처럼 자신들을 사랑의 피해자로 합리화하지만 그 속에 남성으로서의 성적 욕구가 없었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뻔히 유부남인 줄 알면서도 사랑에 빠지는 여자들의 심리는 어떤 것일까? 드라마 속 지선우는 이웃 친구 고예림(박선영 분)의 남편인 손제혁(김영민 분)과 맞바람을 피면서 “본능은 남자에게만 있는 게 아니야.”라고 말한다. 물론 그들도 상대 남성의 성적 매력에 빠져 사랑을 시작하기도 하지만 여성들의 경우에는 상대남성과의 심리적 교감이 전제된 후에 불륜이 시작되는 특징이 있다. 남자들이 현재 배우자와 결혼생활에서 겪고 있는 여러 어려움들을 동정하며 그들을 구원해줄 사람이 자기라는 구원 판타지가 여성들이 유부남과 사랑에 빠지는 주요한 동기가 된다.
드라마 속 여다경(한소희 분)도 자신만이 이태오를 구원해 줄 여신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랑도 없이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내 지선우(김희애 분)와 살고 있다는 이태오의 말을 신뢰하고 있다. 그래서 지선우가 본인의 부모 집에 와서 자신의 임신 사실을 폭로하고 이태오와의 불륜을 까발리는 순간 지선우의 머리를 때리며 분노하게 된다.
자신은 지선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가정을 지킬 수 있다고 자신하지만 이태오가 지선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또다시 불륜의 조짐을 보이자 지선우가 겪었던 심리적 지옥을 경험하며 자신만이 이태오를 구원하고 행복한 가정을 지킬 수 있다는 판타지에서 깨어나게 된다.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불륜이 현실에서도 많이 일어나는지 궁금해진다. 싸이월드와 아이 러브스쿨 등 홈페이지를 통한 초등학교 동창회가 한참 활성화되던 시절이 있었다. 옛 친구를 만나 지난 시절을 추억하던 본래의 목적은 사라지고 중년 남녀의 묻지 마 불륜의 온상이 되어 사회문제가 되었다. 결국 사이트가 폐쇄되거나 축소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가는 운명이 되고 만다.
최근에는 동호회를 통한 불륜남녀의 문제가 언론에 많이 보도되고 있다. 등산 및 자전거 등 건강과 레저에 대한 관심과 사진, 공예 등 취미활동으로 자연스럽게 만나던 남녀가 동일한 관심과 취미로 많은 시간을 같이 하게 되면서 불륜으로 발전하게 되는 경우다.
직장 내 불륜도 발생하고 있다. 한국의 직장은 유난히 야근도 많고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많아 가족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직장동료들과 보내는 구조이다. 업무에 대한 협조와 관심, 같은 일을 하며 느끼는 상대방에 대한 동병상련 등 다양한 요소들이 유부남과 유부녀인 직장 남녀들의 불륜을 부추기고 있다. 오피스 와이프니 오피스 허즈번드니 하는 신조어들도 이런 직장 내 분위기를 반영하여 만들어진 말들이다.
고전소설 속에서도 불륜은 단골 소재이다. 롯데그룹의 창업주가 사명을 짓는 계기가 되었다는 이유로 유명해진 소설이 있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베르테르가 연모하는 연인이 샤롯데이다. 1774년 간행되며 젊은 괴테를 일약 스타작가로 만들어 준 이 작품의 소재는 젊은 미혼남과 약혼남이 있는 여성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던 베르테르가 자살을 하고 이후 많은 젊은이들이 모방 자살을 하는 바람에 자살을 미화한다는 비판을 들어야 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불륜의 끝이 자살이라는 극단적 불행으로 묘사돼 향후 많은 불륜 작품 결말의 모티브가 되기도 하였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모습으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나름 나름의 사정으로 불행하다.”라는 첫 구절로 유명한 ‘안나 카레리나’는 대문호인 톨스토이의 대표작이다.
유부녀인 안나가 남편 카레닌을 배신하고 장교인 브론스키와 사랑을 나누게 되어 이혼하고 결혼을 하지만 주위의 따가운 눈총과 자기 연민 속에 점점 고립되어 가던 중 극단적 선택으로 달려오는 열차에 몸을 던진다는 비극적 결말을 보여준다. 단순한 줄거리이지만 이 소설은 두꺼운 책으로 3권 총 1,600쪽에 이를 정도의 방대한 분량이다. 소설의 형식 속에 러시아의 역사,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대서사시라고 할 수 있다.
구스타프 플로베르의 소설 ‘보봐리 부인’도 빼놓을 수 없다. 1857년 간행된 이 소설은 오늘날 독자와 비평가로부터 사실주의 소설의 백미로서 추앙받고 있지만 발간 당시 풍기문란 혐의로 기소되기까지 된 문제작이었다. ‘즐거운 사라’의 마광수 교수가 떠오른다. 결국 무죄가 되어 작품 활동을 재개했지만 오랜 구속과 재판 과정에서 예전의 활기를 찾지 못했다. 시대를 앞서 간 자가 갖게 되는 공통의 불행, 동시대인들의 몰이해 속에서 돌팔매질을 당하는 숙명을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점도 있다. 마광수 교수가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플로베르는 외도를 거듭하던 보봐리 부인이 비소를 먹고 자살한다는 결말 때문에 무죄를 선고받는다. 권선징악이라는 것이다. 플로베르 집안의 지위와 경제적 여유 때문에 무죄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는 시각도 있지만 여성의 불륜을 바라보는 그 시대의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어린 시절 읽은 소설 중 가장 충격적인 고전은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 아닐까 한다. 당시에는 처음 보는 파격적인 성애 묘사와 구체적인 정사장면 등이 흥미롭게 다가왔지만 어른이 되어서 읽는 로렌스의 작품은 단순히 성애소설로만으로 평가될 수 없는 시대와 인간에 대한 통찰을 느낄 수 있는 진정한 고전이었다.
로렌스는 작품 속에서 단순히 불륜남녀의 육체적 외도를 그리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정신과 교감되는 육체적 합일 속에서 남녀가 경험하는 성적 만족이 인간해방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작가의 통찰이 작품 곳곳에 배어 있다.
남편 클리퍼드가 전쟁에서 하반신 불구가 되면서 부인인 코니는 성적 억압 속에서 생활하다가 남편의 고용인인 올리버와 정사를 벌인다. 정사 후에 빗속을 나체로 뛰어다니는 코니의 모습에서 남성과 사회의 억압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여성, 페미니즘이 주장하는 이상을 보게 된다.
코니가 올리버를 사랑한 것은 남편으로부터 억압된 성적 불만족 때문만은 아니다. 남편인 클리퍼드로 상징되는 가부장적 권위주의와 신분체제에 대한 반항으로서 불륜이 상징되고 있다. 올리버는 비록 남편이 고용한 사냥터지기였지만 여성을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인간으로 받아들이는 건전한 의식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코니가 남편의 친구이며 작가인 마이클리스와의 불륜은 공허하게 느끼고 쉽게 포기하게 되는 이유는 그가 육체적으로는 건강하지만 정신적으로 남편과 다름없는 가부장적 권위주의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와의 연애에서 정신적 교감을 갖지 못하는 코니는 자신을 사랑하지만 소유하거나 집착하지 않는 올리버와 정서적으로 교감한다. 그와의 새로운 생활을 꿈꾸며 이혼을 결심한다. 올리버는 전처와의 관계를 매듭짓고 사냥터지기라는 직업을 포기한다.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통해 건강한 남성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현실 속 불륜에는 소설보다 더 많은 위험과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소설가 김 영하는 ‘고압선’이라는 단편소설에서 “사랑을 하면 당신은 사라진다”라는 점쟁이의 말을 믿고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결혼을 한 후 평범하게 살아가는 은행원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그는 아내를 사랑하지는 않지만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는 성실하게 이행한다. 그러나 친구의 전 애인으로 짝사랑만 했던 대학시절 친구를 만나 아내와는 느껴보지 못한 황홀한 섹스를 경험하고 그녀와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점쟁이의 예언처럼 점점 모습이 흐려지는 주인공. 결국 투명인간이 되어버리고 만다. 불륜이라는 금단의 열매를 먹으면 사회는 자신들을 투명인간으로 만들어 사회에서 추방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단의 열매를 먹을 것인가? 불륜을 향한 에너지를 가족에 대한 사랑, 취미나 업무에 대한 열정으로 건전하게 승화시킬 것인가? 그것은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