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곡의 탄생, 김수희의 애모

역주행의 신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by 하기

역주행의 신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명곡의 탄생, 김수희의 애모


그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늘은 울고 싶어라

세월의 강 넘어 우리 사랑은 눈물 속에 흔들리는데


얼만큼 나 더 살아야 그대를 잊을 수 있나

한마디 말이 모자라서 다가설 수 없는 사람아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그대 등 뒤에 서면 내 눈은 젖어드는데


사랑 때문에 침묵해야 할 나는 당신의 여자

그리고 추억이 있는 한 당신은 나의 남자여


가수 김수희는 역주행의 아이콘이다. 그녀의 데뷔곡 '너무합니다'는 발표 당시 주목을 받지 못해서 그녀는 자신이 대중가수로서의 역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가수의 꿈을 접으려고 하였다. 윤향기가 작사 작곡한 이곡은 1978년 김수희에 의해 불려진 후 밑바닥에서 조용히 불씨를 지키며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불씨에 기름을 붓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모래성'에서 이 노래가 불려지고 일본 가수가 일본어로 이 곡을 번안하여 불러 일본에서 히트가 되자 그 인기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잊힌 신인이었던 김수희를 가요계에 소환하게 한다. 이른바 역주행 대형가수의 출발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었다.


김수희는 특유의 바이브레이션과 꺾는 창법으로 대중들에게 강한 호소력을 가진 음색을 선보인다. 이런 음색은 국악가 박초월 선생을 사사하며 한국적 한을 장착하고 그녀만의 아우라를 가진 목소리로 완성되게 된다. 몽환적인 눈빛의 매력적인 외모도 가수로서의 성공에 일조를 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노래에만 재능이 있지 않았다. 가수 김훈의 노래 '나를 두고 아리랑'을 작사 작곡하며 작곡가로서도 일정한 성취를 이루어 낸다. 글에도 소질이 있어 소설가로서도 활동하였다. 그녀의 데뷔곡과 같은 제목의 '너무합니다', '설' 등의 소설로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하기도 한다. 영화에도 관심이 많아 배우로서 뿐만 아니라 영화감독으로서 활약을 한다.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메가폰을 잡은 영화 '애수의 하모니카'는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하였지만 그녀의 다재다능함을 증명하는 에피소드로 회자되었다.


'너무합니다'의 성공 이후 후속곡이 없어 잠시 주춤하던 그녀의 인기는 '멍에'의 발표로 인하여 재점화된다. 녹음을 하면서 강행군을 하여 식사도 하지 못한 채 목소리를 쥐어짜느라 묘하게 바이브레이션이 되었다. 다시 부르기를 강요받았지만 녹음된 테이프를 듣던 김수희는 예술가의 본능으로서 이 흔들림이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본인과 엔지니어의 귀에 거슬리던 “그래도 내게는 소중했던” 가사 부분의 떨림을 대중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걱정도 되었지만 김수희의 시도는 멍에의 대히트로 보상받는다. 이후 잃어버린 정, 정거장, 못 잊겠어요 등의 노래가 계속 히트히면서 그녀는 인기가수로서 MBC10대가수상 등을 수상하고 커리어의 정점에 다가서게 된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인기의 정점에서 인생은 그녀에게 경고라도 하듯이 시련을 선고한다. 멍에를 부르는 과정에서 그녀가 처녀가 아니고 딸까지 낳은 유부녀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대중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지만 개인의 사생활을 솔직히 밝힌 부분이 큰 문제가 되진 않고 인기를 유지한다. 하지만 주병진 등과 함께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면서 가수 인생 최대 위기를 맞이한다. 연예인협회에서 제명을 당하고 방송 출연이 금지되는 것이다. 수사과정에서 무리한 자백 강요로 혐의를 인정한 점과 추후 수사에서 무혐의로 무죄판결을 받게 되어 복권이 된다.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 법. 인생의 시련기에 남편과의 갈등이 불행의 씨앗이 되고 만다. 결국 이혼이라는 가족사를 만나게 되고 한 딸의 어머니로서 홀로 서야 할 운명에 맞닥뜨린 그녀는 도일하여 가수로서 새로운 전기를 가지고 싶어 한다. 일본에서의 2년여의 신인 아닌 신인 생활의 서러움을 맛본 그녀는 귀국을 하고 유영건 작사 작곡의 애모가 담긴 서울 여자라는 10집 앨범을 발매한다. 1990년 발표된 이 노래는 처음에 불혹을 넘긴 한물간 여가수의 오랜만의 신곡이라는 평가와 함께 대중들의 관심을 비껴 나 묻히고 만다.


명곡의 생명력은 강하고 질기다. 그리고 그것은 시간의 힘을 이기고 피어날 때 더 강력해진다. 애모의 가능성은 노래방에서 먼저 검증된다. 사랑하는 이들의 18번이 되면서 점점 대중들에게 퍼져 나가더니 동료 가수들이 한 명 두 명 이 곡을 부르고 급기야는 김수환 추기경이 열린 음악회에서 애모를 부를 즈음에는 전 국민의 애창곡이 된 후이다. 애모는 90년대의 아이콘이던 서태지의 '하여가' 가요톱10 골든컵 수상을 5주 차에서 저지하고 5주 연속 1위로 서태지도 받지 못한 골든컵을 들어 올리며 스스로 존재가치를 입증한다. 이 노래로 김수희의 역주행 가수로서의 신화는 완성되고 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방속국 PD와 재혼 후 득남을 하는 등 가정적 안정을 이루어 가수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


1987년 발표되어 뒤늦게 유행하여 해태 타이거즈의 응원가가 되면서 전 국민의 떼창곡이 된 '남행열차'와 함께 애모는 역주행 히트곡으로서 한국 대중가요사에 영원히 빛나는 명곡의 반열에 등극한다. 가수뿐만 아니라 소설가로, 영화감독으로, 작곡가로 끊임없이 자신의 재능을 대중들에게 선보이며 때로는 실패하기도 했던 그녀. 하지만 실패했다고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시련과 좌절을 극복하고 오뚝이처럼 일어나 또다시 진정성 있게 가수와 예술가로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낸 것이다. 기획사를 운영하여 태영이, 지대현, 편승엽, 쎄쎄쎄, 신신애 등 후배가수를 배출시켜 자신의 성공을 후배들에게도 전수하였다. 이런 그녀를 존경하여 후배들은 그녀의 노래를 리메이크하는 등 그녀는 고희의 나이에도 가요계에서 존재감을 지키고 있다.


9회 말 투아웃이 되어도 야구는 끝나지 않는다. 인생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고 그녀는 노래로 대중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실패했다고 체념과 상심으로 울고 있는 그대들이여. 당신들은 패배자나 낙오자가 아니다. 포기하지 않고 시도하는 한 당신들의 승리는 단지 내일로 유보되었을 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Qzh87wgIMZg

https://www.youtube.com/watch?v=V6xoVmIe2M8

https://www.youtube.com/watch?v=TNmdMWR_T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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