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곡의 탄생, 김도향의 바보처럼 살았군요

바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현명했던 거장의 깨달음

by 하기

바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현명했던 거장의 깨달음

명곡의 탄생, 김도향의 바보처럼 살았군요


어느 날 난 낙엽 지는 소리에
갑자기 텅 빈 내 마음을 보았죠
그냥 덧없이 흘러버린 그런 세월을 느낀 거죠

저 떨어지는 낙엽처럼
그렇게 살아버린 내 인생을
예 예 예예 예예 예 예예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난 참 예예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바보처럼 바보처럼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늦어 버린 것이 아닐까
흘러버린 세월찾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좋을까


가수 김도향은 서울의 명문학교인 경기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한 재원이었다. 명문고를 나와 SKY를 졸업하고 대기업이나 고위공무원으로 입사해 입신출세하는 것이 그 당시 엘리트들의 당연한 인생 코스였다. 그의 인생 스토리를 반전시킨 계기는 집 앞에 생긴 우미관이라는 삼류 영화관이었다. 하루에 세 번 영화를 틀어주는 일타삼피의 경제성을 무기로 관객몰이를 하던 영화관에 단골손님이 된 까까머리 학생을 눈여겨보던 매표소 관리원이 그만을 위한 특별석을 마련해주어 영화관 죽돌이가 되어 영화의 세계에 빠져든다. 그때 본 1,000여 편의 영화와 동시에 그의 뇌리에 각인된 영화음악들이 이후 그의 창작과 가수 생활의 원천이 될 줄은 그 당시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한 그는 사 년 내내 영화 공부를 하고 꿈에 그리던 충무로 영화판에 뛰어든다. 막내 조연출로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던 그는 꿈을 위해 그 정도는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혈기왕성한 그에게 배고픔만은 참을 수 없었다. 영양실조에 걸려 어지러워하던 그에게 어머니는 휴식을 권했고 휴식기간 동안 장래를 생각하던 그는 홀어머니의 어려움을 자신의 꿈만을 위해서 외면할 수 없었다. 꿈과 현실의 중간에서 타협점을 모색하던 그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것이 가수의 길이었다. 학창생활과 조연출 생활 중 그에게 인기를 가져다주었던 노래를 통하여 다시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오디션을 통하여 들어간 클럽에서 팝송을 자신만의 애드리브를 가미하여 노래했다. 관객들은 좋아하였지만 그의 이런 습관을 안 좋게 보던 선배 가수가 있었다. 대스타인 가수 이미자였다. 그녀는 그의 가창력이 겉멋에 물들고 있다고 판단하고 그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그런 그녀의 충고를 선배의 귀찮은 간섭으로 여기지 않고 진실한 충고로 받아들이고 정석대로 노래하는 그를 보고 이미자는 그를 KBS의 PD에게 소개해준다. 간판 쇼 프로그램인 그랜드쇼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면서 연예인으로서 그의 앞길이 트이게 된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연기를 하고 MBC 드라마 호랑이 선생님의 주제가를 작사 작곡하고 마음껏 자신의 끼를 발휘하던 그는 군대를 제대하고 군악대 동기와 함께 투 코리안스라는 한국 최초의 소울 듀오를 결성한다. 벽오동이라는 국악을 접목한 신선한 가요로 대중들에게 인기몰이를 한다. 때마침 와우아파트 붕괴사고가 일어나며 벽오동의 가사 부분인 '와르르르르'와 '까르르르르' 등이 사건을 연상시키며 이슈화가 되어 더욱더 많은 관심을 받고 가수 생활을 이어나간다.


꽃길만 걸을 것 같았던 연예계 생활이 위기에 봉착하게 되는 데 대마초를 호기심에 몇 번 피었던 게 화가 되었다. 1976년에 사건에 휘말리지만 처벌이 가능했던 것은 1977년의 대마 관리법이었다. 불법적인 소급적용으로 재판을 받고 처벌을 받아 연예계 생활이 불가능하게 된다. 지금 같으면 인권탄압으로 정부가 비난받을 일이지만 그 당시 독재권력은 무소불위의 힘으로 저항정신이 엿보이던 청년문화의 싹을 무참히 짓밟고 만다.


방송 출연이 금지되어 생계가 막막해진 그에게 음악은 또 한 번 힘이 돼준다. 마침 활성화된 TV 광고시장이 그에게 구세주가 되어 나타난다. 광고음악을 통하여 연이어 히트작을 내면서 대기업의 의뢰를 많이 받게 된다. 세시봉의 스타 가수 윤형주와 함께 광고음악의 쌍두마차가 된 그는 줄줄이 사탕, 뽀삐 화장지, 아카시아 껌, 스크류바, 삼립호빵 등 듣기만 하면 중독되는 광고음악을 3,000여 곡 이상 만들어내며 성공가도를 달린다. 하지만 들어오는 돈만큼 자신의 영혼은 행복하지 않았다. 사무실의 창문으로 떨어지는 낙엽이 길가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김도향은 자신의 인생이 잘못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느낌에 진정성을 싣고 작사를 하고 작곡을 하여 불멸의 명곡을 만들어내고 마는 것이다.


명곡을 듣고 부르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후배 이종용과 김태화가 이 노래를 먼저 취입하여 각자의 개성으로 호응을 받지만 결국 대중들에게 가장 오래 사랑을 받은 것은 그만의 소울 취향으로 영혼을 담아 부른 김도향의 노래였다. 이 노래를 만들고 김도향은 명상과 단전호흡, 기공의 세계로 빠져들어 한동안 가수 활동과 연예계 활동을 접고 명상음악에 몰두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노래를 듣고 평생 마음의 문을 닫고 살던 노인이 말을 하는 기적을 경험하고 나서 노래의 힘을 다시 자각하게 된 그는 영혼의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는 가요의 창작을 남은 인생의 과업으로 여기고 마지막 음악여행이라는 앨범을 내고 다시 대중들의 곁으로 돌아온다.


성공과 출세의 가도에서 좌절도 하고 재기도 하며 살아낸 인생의 후반전에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지은 '바보처럼 살았군요'라는 노래는 당시에는 소리 한번 못 내고 신군부에게 최고 권력을 내주고 마는 최규하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곡으로 민중들에게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가수의 인생처럼 노래도 우여곡절을 겪으며 살아남아 이제 명곡이 되어 후배 가수들에 의하여 리메이크되고 있다. 명곡은 돈과 명예라는 명제를 지상과제로 여기며 실제로는 마음의 눈을 감고 낭떠러지로 달려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중년 남성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집착에서 벗어나 자신의 몸과 영혼을 챙기라고.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라고.


https://www.youtube.com/watch?v=r0RD6XlgZn4


https://www.youtube.com/watch?v=6VzwjnyZniA


https://www.youtube.com/watch?v=aotwWYwPhE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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